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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립 Dec 25. 2020

사람 간의 거리

 공연을 보러 갈 때는 꼬박꼬박 예매를 해야 하는 성격이다.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보수적 성향 때문이다. 그런데도 항상 줄을 서야 한다는게 불만이었다. 부지런히 예매를 하고 자리도 지정했는데 왜 다시 줄을 서서 티켓을 받아야 할까. 기다리는 시간이 지겹고 싫어서는 아니었다. 줄을 서서 기다릴 때만큼은 피할 수 없는, 타인과의 접촉이 싫어서였다.  


 예약을 받지 않는 맛집에 줄을 설 때도 마찬가지다. 보통 나는 앞 사람과의 거리를 최소한 반 미터는 두는 편이다. 문제는 뒷사람과의 거리를 조절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등에 와서 부딛히기도 하고 콧바람이나 몸의 열기가 느껴질 만큼 가까이 붙기도 하는데 어찌할 방도가 없다. 아예 선을 넘어 발 뒷꿈치라도 건드려주면 다행이다. 그걸 구실로 기분나쁜 표정을 지으며 뒤를 살짝 쳐다보면 최소한 오 분 정도는 나와의 거리를 바람이 통할 만큼은 유지해 준다.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휩쓸게 되고 나서야, 사람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거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내 옆의 타인이 전염병의 숙주일수도 있다는 의심이 비로소 서로를 멀리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씁쓸하다. 사람의 온기가 닿는 주변의 빈 공간은 언제나 그의 것이라는 존중의 개념이 아니라, 저 놈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공포가 그 근원이라는 것이. 이 위기가 극복된 후에도 사람들은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두려움이 기억에 남아 한 발 물러서게 할 것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낯선 이의 수다가 공격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서로의 공간이 두려움이 아닌 배려심으로 채워지려면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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