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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씨 Aug 12. 2024

내 모든 힘줄이 항변할 때.

습관의 결과물


어제 그제 이틀간 다운되어 움직이기 싫었다. 소파에  누워 폰을 들고 글을 읽거나 쓰거나 그것도 지루하면 유튜브 영상을 보며 지냈다. 장시간 누운 자세로 폰을 들고 있었더니 팔이 아프다. 앗 안돼!


휴대폰의 패악 중 하나다. 책이었을 땐 무거워서라도 엎드려서도 보고 옆으로 누워서 보고도 했었다. 폰은 집중하다 보면 같은 자세로 두세 시간이 훅 간다.


팔을 심장보다 높이 든 자세를 유지하면 팔이 아픈 걸로 끝나지 않는다. 젊었을 때는 팔이 아프면 쉬면 끝이었다. 평생 젊을 수는 없다. 4년 전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


그즈음 몇 가지가 겹쳤다. 매일 밤늦도록 침대에 누운 채로 서너 시간씩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중요한 것도 아닌 이런저런 기사를 찾아 읽는 게 취미였다. 낮에는 집 이곳저곳 수리하느라 날린 먼지를 쓸고 닦는 시간이 많았는데 노동처럼 고된 느낌이었다. 시간이 되는 낮엔 종종 운동 삼아 마당에 나가 배드민턴도 쳤다.


배드민턴은 운동량에선 으뜸이다. 뛰어야지 받아쳐야지 웃긴 장면이 많이 연출돼서 웃느라 폐활량도 는다(?) ㅋㅋ. 문제는 늘 쓰는 팔만 쓰는 것이다. 평생 써서 고장 날 때도 됐는데 배드민턴이 불씨를 지폈는지도 모른다.


오른쪽 손목과 팔뚝에 기분 나쁜 통증이 감지되었다. 점점 심해지더니 눈물 날 정도의 통증이 되어 병원을 찾았다.


손목터널증후군과 테니스엘보우란다. 손목과 팔뚝의 힘줄이 좁아지고 염증이 생겨 힘줄 속 신경을 건드리는 증세다. 손을 많이 쓰면 나타나는 병이라 아픈 팔을 최대한 쉬게 해야 한다.


의사가 촉진한다고 퍼니본(funny bone)을 꾹 눌렀다. 다들 알지 그 뾰족한 통증. 하마터면 의사를 후려칠 뻔했다. 그 감각이 남아 더욱 심해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잠들었다가도 매트리스에 팔이 닿으면 잠이 깼다. 어쩔 줄 모르겠는 통증이었다.


소염진통제와 보조 기구가 처방되었다. 손목과 팔 관절을 구부리지 못하게 고정하는 기구다. 잘 때만 사용하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팔을 곧게 펴고 정자세로 자라고 의사가 신신당부했다.


오른팔이 아파서 병원을 갔는데 이때부터 온몸의 감각이 모든 통증을 포착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왼쪽 손목도 왼팔도 아프기 시작했다. 어깨도 발가락 관절도 아팠다.


결국 양손과 양팔에 보조기구를 차고 꼼짝없이 정자세로 누워 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뒤척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가려운 곳이 생기면 가족을 부르던지 모든 기구를 애써 풀고 긁고 다시 끼우던지 결단을 해야 한다.


젓가락을 쥘 수 없어 포크를 썼다. 스테인리스는 무거워 나무로 된 숟가락과 포크를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젓가락을 사용하는데 그 많은 힘줄이 필요한지 몰랐다. 찌릿찌릿 전기가 흐르며 어느 힘줄인지 알려 주었다. 양치는 전동칫솔을 쓰고 그나마 덜 아픈 왼손으로 어찌어찌했다. 생수병뚜껑을 맨손으로 여는 건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웠다.


집안에 전동 자동이란 타이틀이 붙은 소품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병 따는 기구. 전동 캔따개. 전동 채소 짜개. 전동 채소 다지기 등등등. 기구의 도움 없인 물을 마실 수도 오이를 채 썰 수도 나물을 무쳐 먹을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손잡이가 위로 달린 식칼은 듣도 보도 못했었다. 도마 위에서 칼을 사용할 때면 구조적으로 손목이 조금 구부러지는데 그것조차 어려운 손목터널 증후군 환자용 식칼이다.


두 달째 통증은 그대로다. 개선이 안되자 의사는 아예 팔을 쓰지 못하게 한 달 정도 깁스를 하자고 했다. 한여름이었다. 끔찍하다. 싫다. 깁스를 하면 쓰지 않은 근육이 소실된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힘줄도 약한데 근육까지 없앨 수는 없다.


보조 기구와 진통제에 의지한 채 계절이 변해 가을이 되었다.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류머티즘 통증 전문 병원으로 나를 떠넘기다시피 보냈다.


류머티즘 검사를 받았다. 다행인 건지 아닌 건지 류머티즘은 아니었다. 이즈음 삶의 질이 바닥을 쳤다. 통증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모든 움직임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류머티즘 통증 전문의가 스테로이드와 진통제 겸 우울증 약을 처방하겠다고 했다. 거부했다. 난 갱년기를 거치며 골감소증(골다공증 전 단계)으로 훅 진행된 케이스다. 후유증이 무서워 홀몬치료를 안 한 댓가였다. 골다공증에 스테로이드는 독이다. 우울증 약은 경험이 없어 두려웠다.


빈 손으로 집에 왔다. 통증은 나를 아삭아삭 갉아먹었다. 우는 날이 늘었다. 이 모든 불편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막연히 죽고 싶었다. 최악이었다.


한 달 후 재진날. 썩어 문드러진 내 얼굴을 본 의사가 토 달지 말라고 경고했다. 의사 앞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다. 의사가 실컷 울라고 위로해 주었다. 얌전히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우울증 약을 받았다. 내 고집을 꺾어 준 그 의사에게 감사한다.  


다음 날 통증이 반으로 줄었다. 숨이 쉬어졌다.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자 불현듯 콜라겐이 떠올랐다. 먹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마존에서 필이 꽂히는 대로 제품을 주문했다.


콜라겐을 복용하고 일주일쯤 되자 통증이 훨씬 약해졌다. 통상 의사들이 묻는다. 통증 스케일 1부터 10까지 중 몇이냐고. 10이었다가  9였다가 6이었다가 3쯤 되었다. (수정한다. 말기암 등 중증의 고통을 견뎌내는 분들을 응원한다.)


통증이 확 개선되자 진통제를 끊었다. 처방된 진통제 겸 우울증 약은 한 번 복용했다. 진통효과는 무의미했고 멍하니 나른한 상태가 되었는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난 술도 싫어한다.


청명하게 모든 걸 컨트롤할 수 있는 최상의 각성 상태를 난 좋아한다. 그래서 내 인생에 커피는 반드시 있어야 했다. 슬프게도 카페인은 골다공증에 나쁘다. 기어코 하루에 딱 한잔으로 타협했다.


또 한 달 후 진료 날. 덜 나른하게 약 용량을 낮춰 주겠단다. 사양(?)했다. 필요치도 않았다. 통증이 개선되면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고 삶이 돌아오고 있었다.


조금 남아 있는 통증엔 몸이 적응했다. 동선을 예상해 가며 천천히 손을 쓰면 일상생활도 거의 다 할 수 있다. 제일 늦도록 안된 건 젓가락 사용이었다. 젓가락을 다시 쓸 수 있을 때까지 3년이 걸렸다. 스테인리스 수저를 쓰니 다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조금 이상한 점을 감지하지 않았을까? 통상적인 병원 치료 과정이 다름을. 맞다. 코로나가 극성이던 2000년 하필 미국에 갇혀 버렸다. 비행기를 타는 게 더 무서웠던 그 시절 꼼짝없이 미국병원을 다녔다.


다신 안된다. 몸을 일으켰다. 정신 차리자.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나이 들자 나의 몸은 내가 어떤 습관을 가졌는지 가감 없이 보여 준다. 뿌린 대로 결과물을 보고 있다. 지금이라도 이것저것 나쁜 습관을 고쳐보는 중이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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