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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씨 Sep 14. 2024

나 늙은 거 맞지

배려와 참견의 경계


늦은 오전 북악산을 가려고 마을버스를 탔을 때였다.

처음 타 보는 노선이다. 한적할 시간인데 승객이 꽤 많았다. 버스가 아파트 사잇길로 가파른 지형을 구불구불 올라갔다. 몇몇 젊은이들이 서 있었다. 학생일 거 같다. 옷차림은 깔끔했고 얼굴은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출중하다. 나름 자기 학업에 충실한 부류로 보였다.

그러나 표정은 하나같이 일부러 만든 것 같은 무표정이었는데 평온하면서도 파리한 긴장감이 돌았다. 자기 영역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처럼 보였다. 몸은 이리저리 한 번씩 쏠리는 버스에 매우 익숙해 보였다.

갑자기 왜 그들의 표정을 읽고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말을 시키면 첫 반응이 ‘귀찮아’ 일 것만 같은 분위기였는데 그 버스 안에 서 있던 모든 젊은이들이 같은 표정이어서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짜증하곤 달랐다.

하긴 요즘 많은 이들의 표정이 그렇긴 하다. 바늘로 찔러도 피도 안 날 것 같은…

나도 젊어서 많이 들었던 소리다.

긴장하고 살았었다… 쏠리는 버스에 탄 것처럼.




늘 젊은이 속에서 사회생활을 했지만 그것도 한참 전 이야기고 이젠 젊은이들의 생각을 모르겠을 때가 훨씬 많다. 처음엔 같은 생각을 해보려 애도 써봤다. 이만큼 적응했다 싶으면 저들은 더 멀리 달아나 있었다. 이젠 이해하려고 시도하지 않게 된 지도 꽤 됐다. 그들은 그들의 그라운드에서 놀도록 두는 게 꼰대 취급을 덜 받는 방법일 게다. 그렇게 굳게 마음먹고 살건만 그래도 역시 늙은이 오지랖이 나올 때가 있다.


지난봄이었다.

지하철역에서 집으로 걷는 길이었다.

앞에는 같은 방향으로 걷는 20대 초반 여인이 있었다. 연청색 청바지와 흰 블라우스를 깔끔하게 입고 복장과 잘 어울리는 에코백을 멨다. 뒤에서 보니 운동화끈이 풀려 땅을 쓸고 있었다. 운동화도 관리를 잘하는지 새것인지 하얗고 깔끔했다. 땅에 끌린 끈 부분만 더러워 대비가 강했다. 양쪽 운동화 끈이 완전히 풀려 아슬아슬하게 밟을 듯 말 듯 걷고 있었다. 끈을 밟고 넘어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옆에 서게 됐다. 얼굴은 희고 반듯했다. 끈이 풀렸다고 알려주었다. 그 여인이 고개를 돌려 잠깐 나를 보더니 곧바로 다시 고개를 돌려 신호등을 주시했다. 자기 운동화를 한 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0.5초의 눈빛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무런 감정을 싣지 않은 평온하다 못한 무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나를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며 조롱하는 듯했다. 소리도 없었는데 말이 들렸다.

“ 웬 참견?”

………………


“그냥요...”, “괜찮아요.”,  “패션이에요.”

많이 양보해서 “남이사(ㅋ)! “

말하기 싫으면 그런 게 아니라고 손을 저을 수도 있는데.

자기들의 세상을 이해 못 하는 늙은이를 이해시키려는 아주 작은 시도조차 불필요함으로 여기는 듯한 이 어린 여인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파란불이 켜졌고 그 어린 여인은 지금까지와 같은 속도와 보폭으로 길을 건너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다. 댕~~ 소리가 울렸다.

‘무인도에서 살던가… ’ 자기 방어를 해본다.

그러다 다시 생각을 고쳐 먹는다. 안전이고 뭐고 참견 말자고 다시 주문을 건다.


(이중적 의미의 망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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