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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미령 Jan 05. 2022

육아를 하며 '나'를 찾아가는 시간

회사를 벗어나 '나'와 마주하는 번뇌의 시간들



나는 두 아이를 낳고 평범한 엄마가 되었다.






퇴사를 결정하고 퇴사처리가 되었다.

나는 자유인이 되었다.



한 동안은 친했던 동료들의 sns 계정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열어보지 않았다. 부러울까 봐, 혹은 내가 선택한 결정이 후회될까 봐 말이다.


퇴사를 하느냐 마느냐 고민하는 시간 동안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나 자신과 싸워왔기에 퇴사를 하고 나서도 '아-후회된다.'라는 격한 순간은 오지 않았다. 다행히-  





소속감이 필요했다.

회사에서는 메신저로 먼저 말도 잘 걸고, 직원들과도 그리 잘 지내던 나였는데.

회사 밖에서의 사교성은 제로, 아니 마이너스 수준이었다.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나면 엄마들을 만나게 되는데 정말 "안녕하세요" 인사만 하고 바쁜 척 집으로 돌아가기 바쁜 나의 모습.




왜일까?




회사 안에서는 그동안 내가 쌓아온 시간들, 내가 일하고 있는 모습을 기반으로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굳이 나의 사생활과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였다.

아이들 엄마와의 관계는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사실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서로 오픈해야 하는 것인지 나는 그런 관계가 꽤나 어려웠다. 내가 이렇게 폐쇄적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



연년생 아이 둘을 케어하기에도 바빴다.

내 이야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육아 이야기도 하며 커피 한 잔 하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 내가 모르는 사람과 관계를 0에서부터 쌓아간다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나도 처음 알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나의 마음을 내어줄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여전히 나는 새로 알게 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편이다. 아이 키우는 엄마라고 해서 무조건 다 같은 마음일 수 없는 것이고, 엄마이기 이전에 모두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에 알아가는 과정이 여전히 부담스럽다.






타인과의 접촉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나'를 향한 마음의 시선이 잦아졌다.



육아를 하는 나의 모습, 아이들과 놀이를 하고 소통하면서 이 작고 작은 '우주'가 확장되고 커 가는 모습을 보며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함도 배웠다. 그리고 아이 둘을 양육하며 종종 아이들이 내 말을 듣지 않고(나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더욱 짓궂은 장난을 하게 되면 소리도 지르고 혼내주는 과정에서 나의 감정선이 무너질 때면 '내 존재의 하찮음'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감정이 널뛰기를 할 때면, 아이들을 재우고 식탁에 앉아 육아서를 펼쳐 들고 한 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면서 굳이 맥주 한 잔을 해보기도 했다. 맥주 마시며 육아서 읽는 엄마라니, 지금 생각해도 귀엽지만. 그렇게도 나는 나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채워보려 노력했다. 나를 위해, 나의 존재를 부단히 긍정하며.











나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에 [육아 강의, 부모교육]이 있으면 먼 거리라도 신청해서 직접 찾아가서 강의도 들었다. 잠시 잠깐이라도 나는 그 시간을 통해 위로받고 성장하는 느낌이 들어 너무 좋았다. 그렇게 육아서에 파묻혀 지내는 시간도 있었다.




<엄마표 교육>에 빠져 많은 맘 카페에 가입하고 활동하기도 했다.


아주 적극적인 활동은 아니었지만, 내가 발을 담그고 있고 내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어서 나는 열정 육아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기에는 좋았다. 불안감이 높은 나를 위한 처방전이었다. 매주 활동한 내역들을 인증하여 올리는 부지런함을 없었지만, 그 커뮤니티 안에서 육아를 하며 교육에 열정인 엄마들의 모습을 보며 '다 비슷하구나.' 하며 위로를 받을 때도 있었고, 정말 부지런히 모든 것을 해내는 엄마를 보며 '나도 저렇게 해봐야겠다.' 하며 자극을 받기도 했다. 내 돈 내고 가입하고 교육적인 목표를 달성하기보다는 '저 사람도 아이가 둘이라서 이번 주는 인증을 못했구나. 나도 그런데.'라는 마음의 위로를 더 크게 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간접적으로 듣고 보며 엄마의 시간을 위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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