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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Oct 12. 2016

보통의 여행, 특별한 일상

그게 가능한 일이기는 한 것인지

 LIFE, 삶이란 단어를 붙이면서 무게가 두 배는 늘어났다. 심오한 성찰이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통찰, 마음을 울리는 진정성 같은 게 담겨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최초의 부담이 가시고 나자 삶이란 주제로 매거진의 꼭지를 채운다는 게 뭐 그리 어렵기만 하겠느냐는, 만약 삶이 그렇게 무거운 일이었다면 나부터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가진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여행 중이거나 누군가의 여행지에서 아예 살아버리기로 작정한 필진들에게 "당신의 삶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본다면,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어디서든 똑같겠지요. 형태가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단히 붙들려 질질 끌려가고는 있는데, 내 멱살을 잡고 있는 손이 다름 아닌 내 손이라는 게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라는 얘깁니다." 자기 멱살을 잡고 앞으로 끌려가는 시늉을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상상하자 그것참 우스꽝스럽구나 싶다가 한편으론 좀 쓸쓸하기도 했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삶을 바라보면 꼭 그런 모습일 것만 같았다.



 갑자기 바위에 벼락이 쳐서 새겨진 계명도 아닌데 '보통의 여행, 특별한 일상'이란 기치를 자주 반복해서 썼다. 메일로 날아든 필진들의 원고를 읽고 편집할 때마다 이 사람은 여행 중에 이런 일을 겪었구나(재밌네), 이 사람의 일상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구나(부럽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라는 간단한 감사 인사로는 전해지지 않을 감상문을 마음 한 편에 적어두곤 했다. 첫 호엔 몰랐지만, 두 번째, 세 번째 호를 지나면서 그게 꽤 묵직한 덩어리로 쌓였다. 이쯤 되자 매거진의 방향이 '보통의 여행, 특별한 일상'이란 말과 아귀가 딱 들어맞진 않는다는 걸 눈치채긴 했다. 그러나 억지로 밀어 넣는다고 해서 그렇게 보기 흉한 것도 아니었다. 필진들의 여행과 일상이 개개가 아닌 하나의 매거진, 하나의 이름 아래 묶여서 제시되자 갑자기 뭐라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아졌다. 그게 '보통의 여행, 특별한 일상'이든 '초라한 여행, 화려한 일상'이든 뭐라도, 무슨 표현이라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유연한 덩치가 되었다. 우리가 사는 방식엔 공통점이 거의 없지만, 저마다 뭔가를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즐기고 슬퍼하고 동경하고 갈망한다는 핵심엔 변함이 없었다. 이국적인 풍경과 길 위에서 만난 흥미로운 인물을 읽으면서 우리 삶의 다양성과 관통성을 동시에 체험하는 일. 그게 지금까지 네 번의 제호를 내면서 결산한, 편집자의 감상이었다.


 끝없이 타인의 삶에 호기심이 생기는 이유가 서로 같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서로 다르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강사와 멘토를 자청하는 수많은 이들이 삶은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외치고는 있는데, 도대체 그 주체성이 뭔지, 아니 그건 차치하고서라도, 어쨌든 혼자 살 순 없으니까 다른 누군가의 삶을 필연적으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지레짐작할 뿐이다. 그러다 보면 비교도 하고 질투나 동정도 하고 위안으로 삼거나 체념하기도 할 텐데 그게 다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면 얼마간 안심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부러우면 지는 거라니까, 여행 매거진답게 여행에 한해서는, 누구 하나 마음 상하지 않도록 '보통의 여행, 특별한 일상'을 계속 꿈꿔봐야겠다.




여행 매거진 BRICKS는 현재 웹진 형태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브런치의 '매거진 BRICKS Life'에는 정규 호에 싣지 못한 편집자의 이야기, 여행과 무관할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이야기, 가끔은 인터뷰 비슷한 사는 이야기를 올려보고자 합니다.




글 베르고트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정작 자신은 무엇을 써야 하나 고민 중.

https://brunch.co.kr/@bergo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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