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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Oct 13. 2016

페르난다 할머니의 식사 초대

할머니의 낙은 와인과 퀴즈쇼, 그리고 주말 식자 자리였다

여행 매거진 BRICKS City - 아직 피렌체를 걷고 있다 #1


 겨울에 토마토는 너무 비쌌다. 마트에 갈 때마다 토마토를 집었다 놨다 하며 결국은 사지 못하고 돌아서곤 했다. 어느덧 계절이 바뀌어 거리에 벚꽃이 흩날리고 외투가 얇아지더니, 현관 앞에 날아든 마트 전단지에서도 토마토가 제 몸값을 내렸다. 그 길로 남편과 함께 마트에 달려갔다. 잘 익은 토마토를 여러 개 집어 저울 위에 올려도 겁이 나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 빨간 토마토를 큼지막하게 잘라 접시 위에 놓았다. 그래도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어 샐러리 한줄기를 얇게 썰어 색을 더했다. 거기에 소금 약간, 발사믹 비네거, 그리고 올리브 오일을 둥글게 뿌려놓았다. 순식간에 샐러드 한 접시가 완성됐다.

 여기에 시금치 페스토를 바른 빵과 버섯을 썰어 넣은 스크램블 에그를 곁들인다. 휴일에 어울리는 느지막한 아침식사, 나는 토마토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마침내 기나긴 겨울을 지나 그렇게 돌아온 순간이었다. 입 안 가득 산뜻하고 개운하게 퍼지는 토마토 과즙, 곧이어 따라오는 올리브 오일의 깊은 향미. 토마토가 뜨거운 태양을 상기시킨다면 올리브 오일은 나를 토스카나의 어딘지 모를 지역으로 데려온 듯 했다. 순식간에 이탈리아, 토스카나, 거기에서도 피렌체에 있던 시간 속으로 빠져 들어가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피렌체 요리 유학 시절 나는 페르난다 할머니의 집에서 머물렀다. 봄이라 말하기엔 아직 이른 3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이 층 집이었고, 마치 꼭 그래야 한다는 듯 내 방은 이 층에 있었다. 할머니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여자의 체형과는 거리가 먼 작은 체구였다. 그녀의 주위엔 항상 그녀가 태운 담배 냄새가 떠돌아다니며 공기를 어지럽혔다. 가끔은 그 냄새가 그녀가 내는 인기척보다 먼저 다가와 집안 어딘가에 있는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



 매일 피렌체 국립대학의 비서실로 정시 출퇴근을 하며 규칙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그녀에게도 몇 가지 인생의 낙이 있었다. 늘 식탁 한 모퉁이에 놓여 있는 와인과 그녀 전용의 작은 잔, 그리고 저녁 8시마다 다이닝 룸에 있는 티비에서 펼쳐지는 퀴즈 프로그램. 와인 병 마개는 늘 같은 걸 썼는데, 피렌체 기념품 가게에서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피노키오 인형이 달린 것이었다. 그녀는 식사 시간마다 전용 잔에 와인을 따라 마시며 자신도 퀴즈 프로그램에 참가한 양 열성적으로 퀴즈의 답을 맞히고는 했다. 그 다음으로 그녀를 기쁘게 하는 건 매주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과 지인들을 불러 모아 함께하는 주말 식사 자리였다. 손수 차린 음식을 마음과 시간이 맞는 사람들과 나눠 먹으며 그녀는 지나간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이 시간에 초대 받는 이들은 대체로 페르난다 할머니의 친구인 마리아 할머니와 정원사 다니엘레, 피렌체 대학교에서 와인을 공부 중인 유학생, 그리고 할머니 집에 세를 들어 살던 나였다.



 피노키오 와인 마개가 뽑히면 식사가 시작된다. 안티파스토, 프리모 피아띠, 세꼰도 피아띠 그리고 디저트가 차례로 등장하고, 정오에 시작해 오후 3시에서 4시까지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식사 초대가 있기 며칠 전이면 그녀는 서재에 있는 꽤 많은 양의 오래된 레시피 책 중 몇 권을 골라 그날을 위한 요리를 골랐다. 나는 1인용 소파에 앉아 레시피 책을 보고 있는 그녀에게 돌아오는 주말 점심 요리에 관해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거나 그녀를 따라 다른 레시피 책 몇 권을 꺼내 보는 것을 좋아했다. 페르난다 할머니는 계절에 어울리는 요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봄에는 싱그러운 녹색의 채소를 잔뜩 넣어서 요리를 해야 해. 봄에 나는 아스파라거스는 절대 빠질 수 없겠지.” 예컨대 그렇게, 식탁 위에 계절을 올릴 수 있다는 듯, 레시피 안에는 그녀만의 규칙과 철학이 담겨 있었다.



Part II로 계속.




글 마르가레타Margareta

꽃이 좋고 요리가 좋다. 식탁 위에 뭔가를 올려놓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다이닝 잡지 ‘바앤다이닝’에서 마케터로 근무했고, inspired by jojo에서 플로리스트로도 일했다. 요즘은 가야할 곳이 많기 때문에 거기서 꼭 가고 싶은 곳을 고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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