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그래, 내가 편하면 그게 내 자리인 거 같아
빵 조각 네 개가 세 사람 몫으로는 좀 적지 않을까, 하지만 요리는 엄연히 1인분, 빵만 추가해도 괜찮을까? 나는 슈타인 부인의 손에 들린 굴라시 접시를 바라보며 슈타인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서울에서 지낸 게 거의 20년이니 여러 동네서 살았지요. 바로 직전에는 상도동에 살았는데, 음, 재미가 없었어요. 동네 분위기라는 걸 느낄 수가 없었거든요. 어떤 사람이 망원동에 한 번 가보라고 하더군요. 1년 전 어느 주말에 아내와 이 동네를 걸어 다녀 봤어요. 그리고 이 동네에서 살아보기로 했지요.” 나의 왼쪽 테이블에 앉은 슈타인 교수와 동생 슈타인 씨는 벽에 등을 대고 우리 테이블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내 옆에 앉은 아내는 빵을 찢어 굴라시에 흠뻑 담근 다음, 먹으면서 이야기 하세요, 나와 앞에 앉은 박길수 형의 접시에 올려주고는, 곰곰 굴라시의 맛을 보고 다른 음식도 맛있을 게 분명해 하는 눈초리로 메뉴판을 가지러 갔다. 내 앞에 앉은 길수 형은 방금 충무로에서 끝내고 온 공연을 복기하며, 내가 뭐 한대수도 밥 딜런도 아니면서 세상을 노래해도 되는 것이냐, 더위 탓인지, 인생 탓인지, “오늘 나는 맥주만 있으면 돼.” 하며 굴라시 접시를 약간 내 쪽으로 밀었다.
내 오른쪽 테이블에는 집안 더위에 견딜 수 없어 밤마다 망원동 일대를, 특히 늦게까지 문 연 술집과 카페를 옮겨 다니며 새벽을 맞고 있다는, 밴드 '오즈'의 두 사람 동재, 혜린이 있었다. 그들도 더위 탓인지, 인생 탓인지, 우리와 그들 테이블 사이 30센티 거리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서 길수 형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슈타인 교수는 아내에게 자신의 맥주를 채워 달라고 한 뒤, 형을 만나러 베를린에서 이곳 망원동까지 온 동생을 소개했다. 동생 슈타인 씨는 베를린의 뮤지컬 극장의 홍보 담당이라 했다. 그가 홍보하는 뮤지컬이 어떤 작품인지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문 옆 벽에 붙은 포스터로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가 일하는 극장의 작품들이 사회적인 내용을 많이 담는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포스터 그림마다 날카로운 의식의 펜촉이 새겨져 있는 듯싶었다.
“연기도 그렇고, 노래도. 요즘 다 그냥 그래.” 박길수 형은 아직 공연을 복기하는 모양이었고, 그와 얼굴을 마주한 동재는, 여기서 새벽 2시에 나가면 어디서 나머지 시간을 보내야 하나, 초췌한 굽은 등으로 맥주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그러니까 모발 미네랄 검사를 해야 내 몸에 부족한 비타민이 무언지 정확하게 알고 비타민을 살 수 있어요.” 혜린은 아내에게 좋은 비타민 사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아내는 아내대로 “결국은 주인공이 돌아오게 되는데 그게 정말 집인 건가, 그런 의미를 담으려고 하는데……” 이번 음반에 들어갈 노래의 가사를 설명하고 있었지만, 더위 탓인지, 맥주 탓인지, 대화는 대화대로 잘 이어지고 있었다.
동생 슈타인 씨가 눈짓으로 반응할 때마다 슈타인 교수는 지금 이 한국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통역을 해주어야 했다. 새벽 한 시, 오늘 손님은 여기까지라 싶었는지, 슈타인 부인이 맥주 한 잔 들고 슈타인 교수 옆에 앉았다. 그때 갑작스레 생각난 듯 메뉴판을 들고 있던 아내가 “저 죄송한데요, 슈니첼 하나 해 주실 수 없나요?” 하고 물었고, 슈타인 부인은 자신의 잔을 남편에게 넘기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집을 나서면 왜 이곳에 살게 됐는지, 요새 일은 어떤지, 더위는 견딜 만한지, 별 것도 아닌 것을 물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살고 있는 거지요. 부유한 동네, 지식인, 예술가, 교수들이 모여 사는 동네, 다 좋아요. 하지만 진짜 세계는 같은 사람들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여기도 도시이지만 마을의 느낌, 네이버후드를 느낄 수가 있어요. 이 가게만 해도, 당신들처럼 단골들이 주로 오지, 지나가다 한 번 들어와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이 가게를 열며 우리가 생각한 건 그저 술만 팔아서는 안 된다는 거였어요. 전시도 있고, 음악도 있고, 그런 문화적인 만남이 작은 동네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동생 슈타인은 형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무척 궁금해 하는 눈치였지만, 형의 이야기를 동시에 형이 통역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는 나의 표정을 살피며 ‘그건 정말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는 눈짓을 보내주었다. 나는 그 눈짓이 정말 나와 같은 의미라 생각하며, 독일인들은 무표정하고 냉철해야 하는 거 아닌가, 조금 의아해 하기도 했다.
동재와 아내가 갑작스레 악기를 꺼내 튜닝을 했다. 그들이 함께하는 밴드 '신나는섬'의 노래 <빨간 구두>가 연주되고, 이게 무슨 일이냐며 놀란 슈타인 부인이 슈니첼 접시 대신 휴대폰을 들고 나와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슈타인 교수는 자가 통역의 고된 몸짓에서 벗어날 수 있고, 동생 슈타인 씨는 독일인들이 원래 어디까지 밝아질 수 있는지 매번 갱신된 표정으로 알려주었다. 누구도 앵콜을 말하지 않았지만 연주는 계속되었고, 이제 슈니첼을 잊은 슈타인 부인도 자신의 맥주잔을 들고 남편 옆에 앉았다. 길수 형은 길수 형대로, 한대수가 아니면 어때, 세상을 얘기하겠다는데, 자신의 기타 가방을 열었다.
“매주 같은 장소에서 친구들이나, 취미가 같거나 하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이야기하는 자리를 독일에서 스탐티쉬stammtisch라 해요. 술집이어도 좋고, 커피숍도 괜찮고, 카드 게임도 하고 정치 얘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해요.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유로운 자리예요. 학교에서 몇 번 시도해 봤는데 잘 안됐지요. 이 자리가 제가 생각해 오던 스탐티쉬는 아니지만, 이 가게를 열며 우리 부부가 생각했던 모습인 건 분명해요”
“내 자리가 어딜까 생각을 했지. 결국은 그래, 누굴 만나든 혼자 있든, 노래를 부르든 연기를 하든, 내가 편하면 그게 내 자리인 거 같아.” 길수 형이 은근슬쩍 기타를 들었고, 동생 슈타인 씨의 눈은 방금 전보다 더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늘어졌다.
글/사진 이주호
여행 매거진 브릭스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최근에 에세이 <도쿄적 일상>을 냈다.
그의 <도쿄적 일상>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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