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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Apr 24. 2018

완만열차에 관한 고찰

어르신들은 아직도 종이로 된 시간표 책을 들고 다니며 여행한다.

여행 매거진 BRICKS Trip 떠나 있지만 떠난다 #2


 돗토리현(鳥取県) 사카이미나토(境港) 역에서 요나고(米子) 행 완만(ワンマン) 열차를 탔다. 앞으로 몇 개의 역을 거치고 거쳐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히로시마 현(広島県)의 후쿠야마(福山)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처음엔 완만열차? 뭐 완만하게 잘 달려서 완만열차인가 싶었다. 하지만 원 맨(One-man)의 일본식 발음이었던 것. 즉 완만열차란, 운전사 한 명이 운임수수와 안전 확인 등 모든 것을 수행하는 방식의 열차이다. 번잡한 도시가 아닌, 한마디로 시골 변두리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열차 수송량이 적은 구간에서 인건비 절감을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일본식 영어 발음이란……. 솔직히 들을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완만열차


 대부분의 완만열차는 1~2량 정도로 소규모이고, 어떤 열차는 엘리베이터처럼 버튼을 눌러야만 문이 열리고 닫힌다. 이런 조그맣고 어딘가 그리운 느낌을 풍기는 열차에 에어컨이 있을 리가. 여름이 되면 천장에 달린 선풍기들이 전동 소리를 내며 땀을 식혀준다.


 완만열차는 대부분이 로컬, 완행열차이다. (간혹 급행도 있다) 즉, 각 역을 정차한다. 따라서 쾌속이나 특급열차로 3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이 한 량짜리 보통열차로는 많게는 7시간씩 걸리기도 한다. 특히 현에서 현으로 이동할 때에는 거리가 멀어 곧바로 목적지까지 직통으로 가는 열차는 없기 때문에 갈아타고 또 갈아타고 하다 보면 하루가 다 날아가 버린다. 다시 말하면 24시간의 대부분을 열차에서 보내는 셈이다. 


열차 안 선풍기. 은근히 시원하다


 이렇게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다가 열차도 많이 없어서 청춘 티켓으로 여행을 할 때는 미리 열차 시간을 알아보고 다음 열차를 놓치지 않게, 조금은 시간에 쫓겨야 하는 귀찮음이 요구된다. 실제로 다음 열차까지의 배차 간격이 고작 5분인 경우도 있어, 내리자마자 헐레벌떡 뛰어서 가까스로 탄 적도 있었다. 요즘은 시대가 발달해 스마트폰으로 열차 시간을 조회할 수 있지만, 나이 있으신 어르신들은 아직도 종이로 된 시간표 책을 들고 다니면서 여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금은 별개의 이야기이지만 일본에는 철도 마니아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남자의 경우 테츠(鉄), 여자의 경우 테츠코(鉄子)라 부른다. 이 사람들이 있어 열차 시간표 책은 여전히 베스트셀러일지도 모른다.


고서점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열차 시간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는다. Walter Beasley의 Remember when.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다. 이 익숙한 멜로디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열차에 오르기 전,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가만히 창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문득 그리운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져 오다가도 이내 의식의 흐름은 지난 며칠간의 여행을 되짚고 있었다.


열차여행의 매력 중 하나




글/사진 미도리

‘앞으로의 삶에 후회를 남기지 말자’ 라는 생각에 돌연, 평소 동경하던 도시인 도쿄에의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여행하며, 산책하며, 사진 찍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37mid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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