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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Oct 01. 2018

철봉을 하려던 것도 감자를 먹으려던 것도 아니었지만

남편의 고향 삿포로에 가다.

여행 매거진 BRICKS City - 바다, 온천, 대나무의 벳푸 #3





두 살 무렵의 G. 삿포로 맥주 공장에서 도보 30여분 떨어진 주택가에서 20여 년간 살았던 삿포로보이. 맥주 주량은 아주 약함.


 "에, 삿,뽀,로라는 곳인데요…."


 일본 어디에서 왔냐는 독일인 호스트의 질문에 G는 조금 자신 없는 목소리로 고향이름을 한자 한자 발음했다.


 “오우, 사포로! 비어beer!”


 삿포로 맥주의 명성은 본고장 독일에까지 닿아있구나, 내 고향 예산의 특산물 사과보다 G쪽의 맥주가 역시나 국제적으로 통하는군 정도가 8년 전 뉴질랜드의 농가 식탁에서 삿포로에 대해 느낀 감상이었다.


 시간이 흘러 우린 결혼이란 걸 했고, 어찌어찌하여 규슈에 살며 둘 다 직업훈련학교의 학생이 되었으며, 기록적으로 덥다는 2018년 여름에 방학을 맞이했다.




 삿포로는 이번이 나에게 세 번째다. 3년 전 5월, G의 부모님을 만나 다짜고짜 결혼하겠다고 말하러 갔을 땐 홋카이도가 긴 겨울에서 천천히 깨어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공원에 갔는데 추워서 입술이 새파래졌다. 이렇게 겨울이 긴데 사람들이 잘도 맥주를 마시는 구나, 위스키나 보드카가 절대적으로 더 어울릴 듯 했다. 다음 방문은 올해 초로 그야말로 긴 계절, 긴 동굴인 겨울의 한가운데였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무채색의 옷을 껴입고 능숙한 걸음으로 언 눈길을 스쳐지나갔다. 도로의 정지선 등은 눈으로 감춰져버렸고, 겨울용 타이어로 무장한 자동차들이 정지신호판으로 대충의 질서를 유지하며 기어나가고 있었다. 겨울 대 왕국, 추위 대 마왕 삿포로는, 그리고 홋카이도는 이 난리 통 같은 여름에도 그 각 잡힌 서늘함을 유지하고 있을까.


식량 자급률 238% 홋카이도의 여름


 삿포로라는 지명은 맥주와 함께 기억되었지만 홋카이도의 특산물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 열 가지 정도 나열해 보세요! 라는 질문이 던져졌을 때, 망설일 여지없이 좌르르 쏟아져 나올 정도이다. 크게 해산물(게, 성게, 오징어, 연어), 유제품(우유, 버터, 치즈. 그리고 아이스크림!), 농산물(밀, 감자, 양파, 옥수수) 등이며 이곳 토박이 G는 홋카이도의 식량 자급률이 무려 238%(언제 적 통계인진 모르겠지만)라고 자부한다. 후쿠오카 발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홋카이도의 7월은 그 누구보다도 푸르렀다. 녹음이 무성하고 매미 울음소리로 빼곡한 규슈의 여름과는 다른 상쾌함. 오랫동안 걸쳐왔던 무거운 코트를 벗고 태양의 강렬함을 단순히 있는 그대로 기뻐하며 누워있는 녹색 평지들. 미지근한 바람 한 점마저도 아쉬운 여름밤을 견뎌왔던 우리에게 그 풍경은 완벽해보였다. 마음속에서 샴페인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 건배! (이왕이면 홋카이도 한정판 ‘삿포로 클래식’으로!)


 우린 삿포로 본가의 시원한 지하실 방에 짐을 풀고 그야말로 저장용 감자가 된 것처럼 서늘하게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떠나왔지만 떠나기로 했다. 어디로? 잘은 모르겠지만 동쪽으로. 어머니께서 빌려주신 경차에 침낭과 물병 등을 욱여넣고 풍경의 어딘가에 스며들기로 했다.


 G의 아버지의 고향은 동쪽 오호츠크 해와 가까운 ‘비호로’라는 마을이다. G의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에서 고등학생 때까지 살다가 대학을 마치고 결혼 하고나서는 쭉 지금의 삿포로 동구 주택가에서 삶을 꾸려오셨다. G가 고등학생일 때, 아버지, G, 남동생 셋이 아버지의 고향에 갔다 오는 여행을 했다.


 "결국 살았던 집은 없어졌더라고. 아버지가 다녔던 학교에 가서 철봉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셋이 라멘을 먹었을 뿐이야."


 아들들이 철봉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왠지 길고 안쓰러웠을 장면을 떠올렸지만 G는 의외로 좋은 추억이었다 했다. 옆집에 살았던 이웃이 그 옛날을 기억하고 반가워하며 집에서 차를 대접했다고 한다. 우린 가도 가도 편의점은커녕 자동차 한대 보이지 않는 도로를 스쳐지나가며 홋카이도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G의 말에 따르면 (자신을 포함해서) 홋카이도의 진짜 명물은 사람이라고 한다. 겉마음, 속마음, 예의 등을 따지는 전형적인 일본 사람들과 홋카이도 도민道民들은 다르다. 그 이유는 광대한 자연 속에서 살아남아야하기 때문에 자질구레한 것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란다.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시식코너의 시식도 화끈하다. 겨울의 눈이며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곰을 생각하면 자, 대충 잘라놨으니 모두들 힘내서 맛을 봐! 하는 느낌이다. 음식 또한 화려한 연출 없이 감자면 감자, 옥수수면 옥수수, 신선하고 맛있는 재료를 간단히 조리해 내놓는 식이라는데…, 가다가 거짓말처럼 삶은 감자를 파는 거친 느낌의 가게를 발견했다.


즐거웠던 감자가게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북아메리카 인디언처럼 얼굴이 크고 머리를 묶은 가게주인이 휙 눈을 마주친다. 농장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으로 전국으로 운송 가능한 감자박스가 가격별로 입구에 늘어서있다. 메뉴는 굽거나 삶거나 끓인 감자나 옥수수가 대부분인데 카운터 옆에 각각 샘플이 놓여있는 것이 재미있다. 가격도 100엔에서 200엔 정도이니 자연식 분식집이라고 해야 할까. 우린 감자 빵과 구운 옥수수, 찬 멜론을 주문했다. 좌식테이블의 옆 통유리로 비치는 풍경은 빈 도로와 역시 텅 빈 하늘. 인디언을 닮은 아저씨가 신중한 자세로 옥수수를 그릴에 굴리고 있고 그 뒤 주방에선 작은 볼륨으로 밥 딜런이 흘러나온다. 계산은 나중에, 접시를 카운터에 갖다 주는 것은 두 번 귀찮은 일이 되므로 그대로 두시오라는 소소한 가게의 룰이 여기저기 보인다.


 "엄청 단도직입적이네?"


 내가 속삭이자 G가


 "그래도 옆에 커플이 접시 갖다 주니까 시크하게 아리가토 고자이마스하던데. 내 룰은 이런데 알아서 따르던지 말던지 하는 식인거지."


 이 특이한 가게는 그 외에도 마시는 물은 셀프, 손 씻는 곳은 여기 등 거친 손 글씨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이 주인이 생각날 때마다 써 붙인 것 같다. 말하는 걸 무척 귀찮아 하나보다 싶은데 다른 손님이 감자배송에 대해 묻자 수확시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을 보니 친절한 구석이 있다. 삶은 감자처럼 심플하고 따뜻한 아저씨잖아, 구수하게 구워져 나온 옥수수를 뜯어먹으며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우린 가게를 나와 동쪽으로 동쪽으로 차를 돌려 저녁이 다 되어서야 라우스라는 어촌마을에 도착했다.


다시마와 갈매기의 동네, 라우스


 라우스는 1980년부터 20여 년간 제작된 티비 드라마 <북쪽 나라에서>의 주인공이 빚더미를 피해 잠적한 쓸쓸한 동네이다. 유명한 것이라곤 그 쓸쓸한 로케이션이었다는 사실과 다시마인데 우리가 도착했을 땐 온 하늘을 갈매기가 점령하고 있었다. 「무진기행」에서 무진의 명물이 안개였듯이 라우스의 명물은 갈매기인 듯하다. 마을의 특산물가게에서 갈매기 대신 다시마를 세 봉지 샀다. 뭔가 해산물을 먹어봐야할 것 같아 들어간 가게 안에는 동네의 할아버지들이 모여 모두 라멘을 들이키고 있었다. 우린 차 안에서 밤을 나기로 하고 그 대신 해산물덮밥을 주문했다. 라멘을 후루룩 거리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해보니 어부가 아닐까싶다. <북쪽 나라에서>의 주인공은 라우스에서 어떤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데 남편과 별거 중인 여자였다. 그녀의 시아버지가 큰 배를 타고 나가 며칠을 돌아오지 않다가 『노인과 바다』의 노인처럼 큰 생선을 잡아 언 바다를 걸어 돌아오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 할아버지들도 그럼… 이런 생각을 하며 식당을 나왔다. 마을 중심가는 손바닥만 했는데 낡은 호텔이 하나,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민박집이 조금씩 보이는 게 십여 년 전의 제주도 같다. 하지만 중년의 캠핑카 족들이 마을의 공용주차장에 진을 치고 있는 걸 보아 관광업이 마을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진 않을 듯싶다. 경제발전에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 우리도 운전석과 조수석을 뒤로 젖히고 침낭을 깔았다. 홋카이도 여행이라면 여름의 청량한 별 하늘이라 생각했지만 이날따라 밤이 되어 갑자기 날이 흐려졌고 모기가 윙윙거려 황급히 창문을 올렸다.


 "있잖아, 나 이 다시마랑 갈매기밖에 없는 마을이 꽤 마음에 들어."


 본 것도 먹은 것도 별로 인상적이지 않은 이 마을의 황량한 바다색이며 무거운 구름이 왠지 모르게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G가 옛날 아버지의 고향에 가서 철봉을 했던 추억 같은 것일까.


 굵은 선처럼 곧게 뻗은 도로를 달려 무작정 동쪽으로 나아갔던 여행. 무지막지한 녹색 밭들과 텅 비기도 화려하기도 한 하늘, 오호츠크해의 깊은 파란색, 쿨한 듯 따뜻한 사람들. 홋카이도의 여름은 해묵은 마음의 주름을 펴 주었다. 다시 한 번 삶은 감자를 먹으며 갈매기가 많은 동네로 향하는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규슈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무엇을 위하여 또 한 번 건배를 중얼거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무엇은 홋카이도의 단순함, 그 호쾌함이지 싶다. 자, 어쨌든 건배!


가끔은 넋이 나가는 하늘


가끔 경운기를 만나는 도로




글/사진 윤민영

한국에서의 별명은 차쿠리. 일본에선 미-짱. 규슈 오이타현의 벳푸에서 바다가 환히 보이는 아파트에 산다. 대나무가방을 들고 대나무공예를 배우러 다닌다. 대나무가 있는 마당에서 댓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벗삼아 슥슥 작업하면서 늙어가고 싶다. 조선 시대 장인들처럼 편안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인생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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