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Sep 06. 2018

꿈꾸기 좋은 날

소원을 빌어 보자, 꿈꾸기 좋은 날이야. 내일도 행복할 수 있기를.

여행 매거진 BRICKS City - 꿈꾸기 좋은 날 #2




 교토를 가로지르는 가모가와鴨川는 소박하다는 형용사가 굉장히 잘 어울리는 강이다. 정지용 시인의 시 ‘압천’의 배경이 되기도 한, 윤동주 시인이 살던 방 근처를 흐르는 가모가와. 어디선가, 가모가와는 색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이 너무 맑고 투명해서 색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매일 색이 바뀌기 때문에 색이 없다고 불린다. 맑은 날에는 청명한 하늘색, 흐린 날에는 짙은 회색. 그 날의 날씨에 따라, 그 날 하늘의 기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흘러간다.


 나에게 있어 가모가와는 별 관계없는 듯하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담은 강이 되었다. 집이나 학교에서 꽤나 멀리 있기 때문에,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것처럼 힘든 날 맥주 한 캔을 사들고 강가에 앉아 노을을 보며 눈물 한 방울을 흘리는 감성적인 장면은 연출할 수 없었다. 다만, 거의 매일, 수업이 마무리된 후면 홀린 듯이 가모가와로 향했다.



 가모가와는 '다카노가와高野川'라는 강줄기와 '가모가와賀茂川' 강줄기가 만나 비로소 완전한 '가모가와'가 된다. 이 두 강줄기가 만나는 곳에는 작은 삼각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을 흔히들 '가모가와 델타' 라고 부른다. 나의 서클은 늘 가모가와 델타 구석, 다리가 지나는 바로 밑에 모였다.


 "어쿠스틱 음악의 좋은 점은 언제 어디서나 연주할 수 있다는 거야."


 교토 전체에서도 몇 없는 어쿠스틱 음악 동아리인 만큼,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악기를 꺼내들었다. 빈 강의실, 누군가의 집, 그리고 가모가와 델타. 정해진 연습일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이었지만, 종종 누군가 ‘게릴라 연습회’를 개최하여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가모가와 델타로 모이곤 했다. 모인다고 한들, 모두가 악기 하나씩을 들고 열심히 연습하는 풍경은 그다지 우리 서클과 어울리지 않았다. 몇 명은 열심히 연습을, 몇 명은 도란도란 담소를, 한 둘은 볕 좋은 강변에서 낮잠을. 각자가 편안하게 음악을 즐기는 방법이었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다. 쨍하고 뜬 햇빛을 따라 한두 명씩 가모가와에 모이더니, 어느새 스무 명 쯤 되는 멤버들이 모였다. 다음 주에 있을 라이브에서 연주할 곡을 열심히 연습하는 신입생들이 있는가 하면, 탬버린이며 카혼이며 젬베를 신나게 두들기며 주말을 만끽하는 무리도 있었다. 나는 그저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등에 짊어지고 온 우쿨렐레를 꺼내들었다. 무슨 노래를 연주해볼까 고민하며, C코드를 누른 채 나는 멍하니 줄을 퉁겼다.


 “같이 연습할래?”


 언제 왔는지, 와카바가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동기들 중 가장 늦게 동아리에 얼굴을 비춘 친구이지만, 가장 짧은 기간에 친해진 친구였다. 와카바는 자신의 키만한 기타를 꺼내들고 능숙하게 튜닝을 시작했다. 기타를 제대로 시작한 지 채 반 년이 되지 않은 그녀였지만, 짧은 새에 실력이 일취월장해 지금은 함께 라이브에 출연한다 하면 당연하게 리드기타를 담당하곤 했다. 튜닝이 끝났는지, 가볍게 줄을 훑는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노래하지?”

 “맨날 하는 노래하자.”

 “<꿈꾸기 좋은 날?>”

 “응, 난 그 노래가 딱 우리 동아리 같아서 좋더라.”


 <도라에몽>의 주제가인 <YUME日和>는 와카바와 나, 그리고 몇몇 친구들이 늘 라이브에서 부르는 곡이자 와카바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었다. 날씨 좋은 날 강가에서 부르기엔 제격인 노래다. 나는 급히 코드를 적어둔 노트를 뒤적였다. 나를 말없이 보던 와카바는 내가 노래가 적힌 페이지를 찾은 것을 확인하고, 피크로 기타를 가볍게 두드렸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기타와 우쿨렐레는 합창을 시작했다.



虹を結んで空のリボン、君の笑顔へ贈り物よ
願いをかけましょう夢日和。明日また幸せにあるように。

무지개를 엮어 하늘의 리본, 너의 웃음에게 보내는 선물이야.
소원을 빌어 보자, 꿈꾸기 좋은 날이야. 내일도 행복할 수 있기를.


 곡의 마지막은 강렬하지만 희망찬 스트로크 다섯 번으로 장식된다. 기타 현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볍게 쓸어내린 후, 소리가 잠잠해지자 와카바와 나는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웃었다. 그야말로, <꿈꾸기 좋은 날>을 부르기에 좋은 날이었다.


 “우리 다음 라이브에서도 이거 하자.”

 “당연하지, 난 졸업할 때까지 맨날 연주할 거야.”


 평화롭고, 즐겁고, 꿈꾸기 좋던 어느 토요일. 가모가와는 맑은 하늘색이었다.




글/사진 정예인

교토 도시샤대학교 문학부 3학년. 하루 일과중 시 쓰는 시간과 노래를 들으며 산책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럽 영주권·시민권 취득 후. 그리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