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롭지 않은 날들에 렌즈를 가져가기
신을 찾아 10년간 떠돌던 사내가 성자 프란체스코의 도시 아시시Assisi로 흘러왔다. 거리에서 10년을 보내고 나자 그는 신을 갈구하는 일 못지않게 목숨이란 하루 한 끼 구걸에 이르지 못하면 순식간에 천국으로 내몰린다는 사실을 잘 깨닫고 있었다. 그는 아시시의 광장과 교회 앞에 서서 ‘누가 오늘 저녁 나에게 저녁을 베풀 것인가’ 갈구했지만 그가 실제 갈구하는 게 신이라는 건 겉으로 보이지 않으므로 거지가 허다한 13세기의 골목에서 그는 빵 부스러기 하나 얻기 힘들었다. 그는 이럴 게 아니라 성스럽다는 프란체스코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사교계의 일등 호남자, 밤이면 여인의 창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던 거상의 도련님에서 나병 환자들에 입을 맞추고, 가난한 이들에게 남은 옷가지 한 벌마저 벗어주는 수도사로 변하는 데 겨우 일주일이 걸린 성인 혹은 미치광이. 프란체스코라면 저녁 한 끼는 물론 신에 이르는 길까지 알려 줄지 모른다. 그는 프란체스코가 한 줌 한 줌 벽돌을 날라 손으로 지은 작은 교회로 찾아갔다. 성인은 오늘도 탁발과 멸시, 노래와 돌팔매, 신의 길과 비웃음에 시달린 옷자락을 가지런히 모으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지난 한 해 나는 유유자적의 순간을 찾아 돌아다녔다. 브레멘 음악대의 반질반질한 동상, 한자 동맹 선원들이 묵어갔던 베르겐의 500년 된 목조 주택, 안데르센의 고향, 오로라가 지나던 북극권 마을, 긴 이야기를 지나고도, 다음의 목적지는 어딜까 하는, 남들 눈에는 영락없이 유유자적해 보일 여전한 탐색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유자적했다기에는 어쩐지 조급하고 데면데면했던 장소들이었다. 지브리 미술관이 있는 도쿄 인근 무사시노 시에서는 유유자적의 순간이 슬그머니 팔짱을 껴 오나 싶기도 했지만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이 고작 3일 뒤의 현실이었고, 멋쩍긴 하지만, 이곳에선 끝내 유유자적할 수 없을 거라는 시건방진 자조를 단골 길가에 번번이 흘리고 다니며 한 해의 나머지 시간을 채웠다.
프란체스코 형제회 수도사였던 ‘균’이 커피를 내리고 맥주를 따르는 '카페 사이'를 술집으로 여기고 찾아간 적은 없었다. 이제 막 봄이 왔나 싶은 어느 늦은 오후, 아내와 한강에나 나가볼까 싶어 커피를 사려고 ‘균’의 ‘사이’에 들렀다. 이제부터 하몽을 들여오게 됐으니 시간 날 때 술 한잔 하러 오세요. ‘균’이 말했다. 하몽이 무슨 새로운 음료일까, 어물쩍 대답하기도 뭣해, 하몽 하나 주세요, 하고 자리에 앉았다. 하몽은 돼지 넓적다리를 말린 스페인 음식으로, 스페인에선 국가 차원에서 맛과 함량을 관리하고 해마다 최고의 하몽을 뽑기도 한다는 내용을 검색하고선, 술 이름이 아니구나, 다행히도 두 개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네, 가슴을 쓸어내렸다. 벨기에 플로레페Floreffe라는 수도원에서 만든 플로레페 맥주가 있는데요, 하몽하고 같이 먹기 좋아요. 와인 한 병 가격이긴 하지만, 일반 맥주처럼 들이키며 마실 수는 없을 거예요. 와인을 마시는 것과 비슷해요. 수도사보다 맥주와 어울리는 직업이 또 어디 있다고, 가난한 이들의 형제였던 ‘균’이 말하는 그대로 끄덕끄덕 별말 없이 지갑을 내맡겼다.
10년의 여정, 프란체스코에게 뻣뻣한 빵을 얻은 거지는 꾸역꾸역 신을 찾을 기력을 되살린 뒤에 어디에서 신을 찾을 수 있나 물었다. 그러니까 10년 행려 끝에 이른 곳이 이곳이라고. 저런, 그렇다면 당신은 한 걸음도 신에 다가가지 못한 건데. 여기는 당신에게 줄 빵 부스러기마저 아까워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태어나 한 발짝도 신에 다가가지 않은 동네, 아시시가 아닌가. 애석하게도 프란체스코라고 자신 있게 어딜 가보라 이야기해 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의 수도 로마를 지나 예수가 태어난 동방, 이방의 신이 다스리는 나라 이집트까지 먼 길을 함께 다녀보기로 했다. 들판을 지나고 숲을 헤치며 프란체스코는 새들과 늑대, 온갖 짐승들에게 천국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태양을 형제 삼아 불을 자매 삼아 배고픔과 고독과 죽음의 위협을 견뎌냈다. 그렇다고 신이 특별히 어디 자주 나타나더라 알아내진 못했다.
미적지근한 맥주 한 모금 들이켜고, 빳빳한 빵 조각에 기름진 하몽 한 점을 올려 천천히 씹었다. 역시나 ‘균’의 말대로 단번에 목이 메도록 들이부을 수 없는 맥주였다. 몇 명의 잘 차려입은 여성 행인이 하몽을 먹는 사람을 포함해 카페의 사진을 찍고 지나갔다. 망원동은 1,000만의 사람들이 사는 도시의 한 귀퉁이, 비교적, 가난한 동네다. 대수롭지 않은 개인사를 사회적으로 품은 동네 풍경이 있고, 혹시나 땅값이 올랐나 시시때때로 창밖을 두리번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곳에도 더러 여행이란 게 벌어진다. 나라면 어느 날에도 렌즈를 통해 바라볼 일 없는 대수롭지 않은 풍경을 오직 렌즈를 통해서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저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다시, 유리문 밖으로 개 한 마리가 길게 자란 털로 바닥 먼지를 쓸며 지나갔다. 취기가 도는 걸까. 그것이 벼룩 묻은 유기견인지, 이국을 지나는 여행자인지, 프란체스코인지, 예수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수행자들은 바다와 사막과 돌길과 얼음 위를 걸어, 다시 신을 찾아, 아시시로 돌아왔다. 프란체스코는 그곳에서 눈멀고 뼈만 남은 추악한 몰골이 되기까지 살다가 자신의 처음 기도장소인 포르티운쿨라에서 죽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받았던 다섯 개의 상처가 자신의 몸에도 생겨났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는 살려고 발버둥 치지 않고 ‘죽음’ 형제의 품으로 힘차게 마편을 휘둘렀다.
나도 대수롭지 않은 날들에 하루 정도는 렌즈를 가져다 대 보면 어떨까? 되도록 어딘가를 가지 않으면서 며칠의 경험을, 몇 년의 경험을 이제부터 찬찬히 적어 보면 어떨까. 이곳에서 유유자적이 임하시는 기적이 임하시진 않을는지. 대체로, 여행의 감정은 오해다. 문화와 인류가 함께 발음되는 학문들의 기록은 관찰자들의 오해가 수두룩하게 덧대어진 연대기다. 해석은 오해다. 하지만 오해는 이해의 관문이다. 그래서 먼 데 사는 친구들에게도 각자 장소의 삶을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대수로울 것 없는 일들을 찍고 기록해 달라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눈앞에 펼쳐진 벽돌들, 지금껏 그래 왔듯, 무심히 자기 자리에 박혀 있는 도시 한 귀퉁이가 도시란 것의 일부이며 나의 삶을 만들어내는 전부이므로, 그저 각자 자리에서 서로의 장소들을 동경해 보자 싶었다.
프란체스코의 파계한 형제, 하몽을 자르는 ‘균’이 올리브 절임과 빵을 더 가져다주었다. 팔다 남은 자투리라 빵 모양이 엉망이지만 남은 하몽을 먹으려면 없는 것보단 나을 거예요. 반쯤 빈 맥주잔을 도로 채워주며 ‘균’이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의 삶을 전보다 세심하게 살아볼까 싶어졌다. 흐트러진 빵 조각의 세심함이, 없는 것보다, 그것보다는 월등하게, 남은 술잔을 비우는 데 보탬이 되리란 건 분명했으니까.
글/사진 이주호
여행 매거진 브릭스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최근에 에세이 <도쿄적 일상>을 냈다.
그의 <도쿄적 일상>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