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시대의 메아리
여행 매거진 BRICKS Trip
미국의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종종 작품보다 그의 삶으로 더 주목 받기도 한다. 사교계의 총아, 화려하고 값비싼 일상과 여행, 알코올 중독, 기행, 그리고 추락. 그의 삶이 그의 페르소나였던 개츠비의 삶과 닮았다 말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개츠비의 '초록 불빛'이 데이지였다면, 피츠제럴드의 '초록 불빛'은 분명 문학이었다. 그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단편 소설을 썼고,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를 포함해 네 편의 장편 소설을 완성했으며, 다섯 번째 장편을 쓰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사랑하고, 그보다 더 자주 술에 취했으나 그는 끝내 쓰는 사람이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삶을 따라 미국을 횡단한 최민석 소설가의 에세이 『피츠제럴드(아르떼, 2019)』는 피츠제럴드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환영할 작품이다. 브릭스에서는 전기문으로도, 여행기로도, 저자의 문학관으로도 읽히는 『피츠제럴드』에 주목하여 최민석 소설가와 인터뷰를 나눴다. 여전히 반향이 사라지지 않은 재즈 시대의 메아리, 그 궤적을 좇아간 『피츠제럴드』와 피츠제럴드에 관한 짧은 대담.
브릭스 어떤 작가를 아주 좋아해도 그의 인생을 따라 광활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여행까지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요, 피츠제럴드를 택하신 이유, 이 책을 쓰게 된 계기 같은 것이 있을까요?
최민석 3년 전 한동안 수입이 없었습니다. 하루에 쓸 돈을 집에 있는 책을 헌 책방에 팔아서, 해결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 피츠제럴드가 말년에 유령 시나리오 작가로 할리우드에서 일하다, 가난한 채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그 동질감은 자연스레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브릭스 책의 서문에도 쓰셨지만, 『피츠제럴드』는 작가가 태어나거나 가장 화려한 삶을 살았던 시기의 장소가 아니라 죽음을 맞았던 LA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독자로서 꽤 인상적인 구성이었는데, 그렇게 쓰신 동기가 있을까요?
최민석 애초에 피츠제럴드에게 관심을 가진 게, 그에게 몰락을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몰락한 장소부터 가고 싶었습니다. 아울러, 그가 비참하게 죽은 곳에서 이 책이 끝나길 원치 않았습니다. 화려하게 전성기를 보낸 뉴욕에서 끝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취재를 몰락의 장소인 L.A에서 시작해, 전성기의 배경인 뉴욕에서 마쳤습니다. 이렇게 하면 미국 서부에서 시작해서 동부에서 끝낼 수 있기에, 동선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이 루트가 이 책에 어울린다고 판단했습니다.
브릭스 피츠제럴드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작가가 헤밍웨이입니다. 책에도 쓰셨지만 둘은 유럽에서 가까이 지내면서도 경쟁의식이 있었던 것 같고, 인간적으로도 자기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던 것 같아요. 누가 더 좋으냐고 묻는다면, 사실 전 피츠제럴드 쪽이 더 좋습니다. 한 인간으로서도 작품으로서도 말이죠.
작가님도 그러실 거라고 넘겨짚으면서 여쭤봅니다. 자신의 계급을 뛰어넘는 데 오랜 시간 집착했고, 그래서 충동적이고 자기파괴적이며 피해의식도 강한 이 작가의 매력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친구였다면 저도 헤밍웨이처럼 평생 험담하길 주저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이 사람이요.
최민석 만약 제가 피츠제럴드와 같은 시대에 태어났고, 어찌어찌하여 그와 친구가 됐다면, 아마 저는 피츠제럴드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을 것 같아요. 가끔씩 얼굴을 보거나, 안부를 주고받는 정도의 사이가 됐지 않을까 싶어요. 아시다시피, 피츠제럴드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주변 인물들에게 실수를 자주 했습니다. 저는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두길 원하고, 갈등을 회피하는 유형의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피츠제럴드 같은 사람과 친해지기 어려운 타입입니다. 그럼에도, 종종 이런 인물들과 엮입니다. 아시다시피, 생은 맘대로 되지 않고, 인간관계는 이래저래 얽히고설켜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죠. 저는 이런 이들과 대개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아마 피츠제럴드와 관계를 맺었다면, 그 역시 ‘애증의 관계’가 됐겠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인물들이 제일 많이 생각이 납니다. 아. 매력이 뭐냐고 물으셨죠.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관심이 가고, 신경이 쓰입니다. 이런 것도 매력에 해당한다면, ‘마음이 자석에처럼 끌리는 게’ 매력이라 해두죠.
브릭스 『위대한 개츠비』를 ‘계급’이라는 키워드로 읽으시고, 이를 작가의 삶을 따라가는 여행에도 반영하신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 코티지 클럽에서 학생회장을 만난 에피소드나 플라자호텔 팜코트에서 불청객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 에피소드도 그렇구요. 읽으면서 작가님이 몸소 희생하여 냉정한 계급의 벽을 독자에게 간접체험하게 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어 웃기면서도 한동안 괜한 박탈감 같은 것도 느꼈습니다. 책에 다 쓰지 못한, 취재기간 동안 겪은 비슷한 에피소드가 또 있을까요?
최민석 상당히 많습니다. 일단 미국 사회는 ‘프라이버시’가 상당히 중요하기에, 대부분의 취재지에서 거절을 당했습니다. 여기에는 ‘계급적 공고성’ 혹은 ‘배타성’도 한몫 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줄곧 상류층 사회의 진입을 바랐기에, 그를 취재하기 위해선 회원제로 운영되는 클럽, 고급 호텔, 배타적인 식당 등을 자주 가야했습니다. 비용도 많이 들었지만, 그것보다 더 신경 쓰였던 건, 철저한 백인 커뮤니티에 동양인 이방인이 나타났을 때의 시선이었습니다. 가장 일차적이고 묵시적인 차별은 ‘절대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자주 겪었지만, 그걸 일일이 담으면 미국 사회에 대한 불만을 풀어놓는 책 밖에 되지 않기에 쓰지 않았습니다. 독자들이 불쾌해지는 것도 바라지 않았고요. 아무튼, 제가 느낀 점은 ‘이런 정서가 곳곳에 깔려 있으니 트럼프가 당선됐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브릭스 피츠제럴드가 쓴 장편 중 가장 좋아하시는 작품은 아무래도 『위대한 개츠비』이신 것 같은데요, 혹시 그의 단편 중 가장 좋아하시는 작품은 무엇이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최민석 「분별 있는 일」입니다.
이 소설에는 대부분의 연인이 겪는 이별 후의 재회 장면이 나옵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청혼을 거절당한 남자는 이제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해 여자 앞에 다시 나타납니다. 그런데, 남자는 어리둥절해집니다. 과거에 자신을 위축시킬 만큼 커보였던 여자의 집이 어쩐지 작고 낡아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남자가 성공하며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자, 자신을 둘러싼 주변 세계가 축소된 것입니다. 과거에 자신을 둘러쌓던 모든 것들이 작고 초라해 보입니다. 과거 연인의 집이 작아 보인다는 것을 메타포입니다. 예상했다시피, 자신에게 종교 같았던 과거의 연인은 이제 자신에게 실연의 상처를 안긴 존재이자, 과거에는 실패했기에 현재에는 성취해야할 대상이자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는 업무적으로 다시 사귀자고 말하고, 또 거절을 당합니다. 그러자, 남자는 여자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성공했는지 떠벌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둘은 알 수 없는 공기에 이끌려 키스를 하죠. 예전에도 둘은 4월에 키스를 했습니다. 다시 키스를 하는 지금도 4월입니다. 하지만, 키스의 느낌은 다릅니다. 남자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예전의 그 4월은 지나갔다. 그때의 4월은, 과거의 그 4월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이죠.
결국, 이 소설은 계급과 취향이 달라진 사람이 과거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브릭스 소설가이시지만, 예전에 어떤 에세이에서 에세이를 쓰기 위해 소설을 쓰신다고 하신(농담이신진 몰라도)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지금까지 내신 에세이와는 조금 다르게 한 작가의 인생과 작품을 따라 가는 작품이었지요. 『피츠제럴드』에서도 웃음이 나오는 부분이 꽤 많긴 했는데요, 작가님 특유의 위트와 유머를 많이 참으셨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에세이 쓰기와 다른 점이 있었을까요?
최민석 초고에는 제 개성을 좀 담아봤지만, ‘가급적이면 저자의 개성을 없앴으면 좋겠다’는 편집자의 의견을 받고, 이를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이 책은 시리즈 중 한 편이기에, 제 책에만 저자의 개성이 두드러지면 곤란할 것 같았습니다. 이 시리즈의 저자 중엔 교수도, 기자도, 연구자도 , 작가도 있습니다. 작가 중에는 서정적인 문체로 쓰는 이도, 건조하게 쓰는 이도, 예민한 감상으로 쓰는 이도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저자의 글이 하나의 시리즈로 조화를 이루려면, 각자의 개성을 억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이 책에는 제 개성을 담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브릭스 지금 독자들에게 피츠제럴드를 읽어야 할 이유, 『피츠제럴드』를 읽어야 할 이유를 한 마디씩 부탁드려요.
최민석 당연한 말이지만, 『피츠제럴드』를 읽어야 할 의무 같은 건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도 궁금하시다면, 피츠제럴드가 ‘계급 문제’에 관심을 가진 작가라는 점을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마크 트웨인과 허먼 멜빌도 계급에 관심을 가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인종 문제에 국한됐습니다. 그러니 피츠제럴드는 거의 최초로, 거의 유일하게, 계급을 문학적 주제로 삼은 작가입니다. 사실 저는 그가 처한 192-30년대 미국의 상황과 현재 한국 사회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깁니다. 우리는 ‘쉬쉬’해왔지만, 한국 사회 역시 계급 사회입니다. 피츠제럴드가 제기 했던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기에, 저에게는 그의 생과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저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품고 있다면, 『피츠제럴드』는 한 번 펼쳐볼만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릭스 예전에 저희 여행 매거진 브릭스에 「미국보다 망원동」이란 글을 기고하시며 미국의 도시와 망원동의 시스템(?)을 비교해 주셨는데요, 그때로부터도 2년이 흐른 지금도 역시 미국보단 망원동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최민석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니, 양해바랍니다. 절대 미국 사회에 불만이 있거나, 미국을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사실 저는 미국에 갈 때마다 불편함을 느낍니다. 저는 소식을 즐기는데, 미국에 가면 필요이상으로 음식을 많이 주기에 당혹스럽습니다. 음식을 남기면 죄 짓는 것 같고, 다 먹으면 소화가 안 돼 너무 불편합니다. 그렇다고 여행자가 매번 요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동시에 미국은 뉴욕 같은 몇몇 도시를 빼고는, 차가 없으면 다닐 수가 없습니다. 아까 하던 말로 돌아가자면, 소화도 안 됐는데 차를 타고 몇 시간을 운전하려니 이 역시 난처한 일입니다. 게다가 L.A에서는 차가 없으면 다닐 수 없는데, 중심가에는 주차할 데가 없습니다. 주차를 하려면 때론 한 시간에 40달러를 내야 합니다. 이러니 ‘미국보다 망원동’이 편하다고 쓴 것입니다. 아, 그래도 운동화는 나이키를 신고, 노트북은 ‘맥북’을 씁니다(매우 튼튼합니다). 가만 보자. 집에 미제가 꽤 있네요. 그러니, 저를 ‘반미 주의자’로 오해는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냥 본질적으로 저에게 시니컬한 기질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브릭스 최근 소설 집필 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향후 소설 발간 일정을 살짝 알려주세요.
최민석 작년에 쓰던 게 있었는데, 성에 안 차서 버렸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올해는 망한 것 같은데, 낙담하진 않으려 합니다. 이러다가도 어느 날 소재와 영감이 혜성처럼 제 안에 떨어지면, 그날부터 당장 소설을 쓸지 모르니까요. 소설가는 이토록 불확실하게 삽니다.
* 최민석. 소설가. 2010년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2012년에는 오늘의작가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능력자』 『쿨한 여자』 『풍의 역사』, 소설집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 에세이 『베를린 일기』 『꽈배기의 맛』 『꽈배기의 멋』 『고민과 소설가』 등이 있다.
『피츠제럴드 - 미국 문학의 꺼지지 않는 '초록 불빛'』, 최민석 지음
arte(아르테) 발간 / 값 1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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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브릭스 편집장 신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