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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Nov 01. 2019

『제 왼편에 서지 말아 주세요』

금호동 책방 '프루스트의 서재'에서 꼽은 이 계절의 책

여행 매거진 BRICKS Life

책과 책방 특집호 - 이 계절의 책 #1





책방 프루스트의 서재에서 고른 이 계절의 책 : 『제 왼편에 서지 말아 주세요』, 김슬기 지음



 어릴 적에 한쪽 안면이 마비된 적이 있다. 언덕에서 내려오는 배달 자전거에 치여서 정신을 잃었다고 들었다. 그 사고의 후유증으로 일시적인 마비 증상이 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환자용 카트에 누워 어딘가로 실려 가는 중이었다. 천장이 하얀 복도를 지나고 있었는데 도중에 까무룩 의식을 잃었던 모양이다. 이후의 기억은 여러 명의 환자가 있는 일반 병실이었다. 아마 한 달 넘게 입원했던 것 같다. 큰 사고였다고 했는데 지금 기억하는 아픔은 매일 주사를 맞았던 때뿐이었다. 아홉 살 때 일이라 특별히 아픈 부위가 생각나지 않는다. 매일 맛없는 죽을 먹고 링거를 꽂은 채 누워있는 것이 하루의 전부였다.


 병원 생활이 지루하고 답답할 즈음이 돼서야 퇴원이 가까워졌다. 링거도 빼고 혼자서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래봤자 내가 주로 간 곳은 병원의 1층 휴게실이었다. 매우 큰 병원이었는데 한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와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었다. 주로 거기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가 밥을 먹을 시간이면 병실로 돌아갔다.


 병실은 4층인가 5층이었는데 항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녔다. 엘리베이터 내부는 사방이 모두 거울로 되어 있어서 그제야 내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병원 이름이 푸른색 줄무늬 모양으로 들어간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색하여 웃었는데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한쪽 입 꼬리만 올라간 기묘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도 신기해서 웃음이 났다. 큰일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얼른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컸는지 이러한 사실을 엄마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얼굴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니까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옆 병실에 있는 또래의 여자 아이였다. 답답한 마음에 병실 복도에 자주 나와서 서성였는데 그때마다 그 아이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 애는 환자가 아니었기에 늘 예쁜 옷을 입고 있었다. 아마 가족의 누군가가 입원한 모양이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옷 때문에 나에게는 예쁜 아이로 기억된다.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얼굴이 익숙해지니 자연스럽게 웃음이 났다. 웃음이 날 때마다 한 쪽만 묘하게 일그러지는 입이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보니 입 꼬리를 자연스럽게 감추기 위해 혀를 같은 방향으로 내밀었다. 일본의 제과회사 캐릭터 ‘페코’와 닮은꼴이었다. 가까이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아니니 처음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치게 될까봐 걱정은 됐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그 애가 있는지 살피고 탔다.


 휴게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영화를 잠깐 보고 병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병실이 몇 호인지 기억해 두지 않아서 대충 짐작되는 층을 누르고 병실을 찾아갔다. 문이 열리고 늘 가는 방향으로 병실을 찾았는데 내가 쓰는 병실이 아니었다. 한 층 더 내려가야만 했다. 바로 아래층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자 문이 열렸다. 그러자 그 아이가 눈앞에 있었다. 순간 당황해서 내리지 못하고 단 둘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휴게실을 향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굉장히 느리게 느껴졌다. 아무 말도 못하다가 어색한 웃음이 났다. 살짝 고개를 돌렸던 것 같은데 사방에 거울이 있으니 감출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말없이 보던 아이가 처음으로 한 마디를 건넸다.


 “넌 왜 웃을 때 자꾸 혀를 내미는 거니?”


 얼굴이 점점 붉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채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다. 그때부터 모든 사람에게 웃음이 날 때 고개를 돌리거나 최대한 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아이는 이후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밖을 잘 나가지 않기도 했지만 퇴원할 동안 그 아이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면 마비는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리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가끔 두근거리는 사람을 만나면 고개를 돌리고 혀를 내밀고 싶어지는 기분이 든다.





글/사진 박성민

까만 고양이 까순이가 있는 책방을 서재처럼 쓰며 글도 씁니다. 

서울 금호동 프루스트의 서재

https://www.instagram.com/library_of_pro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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