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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Feb 09. 2017

오후로お風呂의 추억

일본에서 찾았던 온천의 추억

여행 매거진 BRICKS City - 국경 너머 설국 #2


‘날개가 있으나 날지 않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입니까?’
- 가끔, 날개가 있는 것을 잊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처음 조사를 했을 때의 일이다. 후쿠시마의 작은 간이역 인근에서 계획에 없는 일박一泊을 하게 되었다. 책자에 없는 곳이라 역장에게 민숙民宿할 만한 곳을 물어보았더니 어딘가 전화를 걸어 역 앞의 집을 소개해주었다. 주인은 여든을 훌쩍 넘긴 할머니로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기대했던 깔끔하고 정결한 일본인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집이었다. 아주 오래됐고 그만큼의 세월의 때도 끼어있었다. 저녁을 하고 돌아오니 할머니는 TV를 틀어놓고 식사를 하고 계시다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셨다. 깊은 욕조에 물이 채워져 있었는데 타월을 건네며 연신 안을 가리키셨다. 샤워야 알아서 하면 되는 것을 목욕물까지 받아두신 것도 황송한데다, 나는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한국인이라 거듭 사양하며 할머니 하신 후에 하겠다는 의사를 손짓으로 표시하였지만 기어코 나를 욕실로 밀어 넣으셨다. 욕조에는 물이 가득 담겨 ‘유레카’ 정도의 수위였는데 알 수 없는 부유물과 머리카락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할머니가 눈이 어두워 못 보시는 게다.’ 생각되어, 아깝지만 물을 모두 비우고 대청소를 하였다. 반짝반짝 광이 나는 것 같아 스스로도 대견하여 ‘덕분에 목욕 잘 했습니다. 제가 청소도 했어요.’ 라며 할머니에게 보여드렸더니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할머니는 머릿수건을 두르고서 이제나저제나 당신 차례만을 기다렸던 것으로 보였는데 텅 빈 욕조를 보고는 갑자기 노발대발하여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할머니 목욕물을 받아두었어야 했나?’ 어안이 벙벙한 나에게 다시금 목소리를 높이다가는 한숨을 쉬더니 올라가서 자라는 손짓을 하였다.


눈 오는 날의 온천


 다음 날, 아침을 드시고 계신 할머니에게 안녕히 주무셨냐며, 이제 떠난다 하였더니 밥을 먹으라 손짓하였다. 조식이 포함 안 된 것이라 사양하였으나 목욕을 강권하셨던 것처럼 권하여서 마주 앉아 식사를 마쳤다. 감사를 표하고 식대를 드리자, 할머니는 어쩐지 노여움이 풀리셨는지 돈을 돌려주시며 “가와이”라고 하셨다.


 후쿠시마 조사 후, 니가타의 직조 공방을 살피고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여름 끝이어도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꽤 으슬으슬했는데 마침 물을 받아두었다며 목욕을 권하였다. 나는 ‘욕조에 물을 받아두는’ 일본인의 한결같은 친절함에 민망함과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욕실에 들었다. 욕조는 향이 나는 나무로 짜여 있었고 혼자 쓰기에는 넓고 두 명은 족히 들어갈 정사각형의 고급 욕조였다. 뜨거운 물이 가득 담겨 있어 숙박비에 비해 과한데다 낭비가 아닌가 싶으면서도 노곤한 몸을 녹인 후 마개를 뽑아 물을 뺐다.


 거실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후쿠시마 할머니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가족끼리 목욕물을 공유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일본은 덥기도 하거니와 습도도 높아 목욕을 자주 한다고는 들었다. 욕조에 물을 받아두고 가족이 각자 샤워를 마치면 받아둔 물에 몸을 담가 반신욕을 한다는 것이었다. 대개 아버지가 먼저 하고,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한 후 물을 빼고 뒷정리를 한다고 한다. 나는 아차 싶어 부부에게 사과를 하였으나 가끔 외국인들이 이런 실수를 한다며 그들은 웃어넘겼다.


 이 문화엔 아직도 적응을 못하고 있지만 가끔씩 나는 할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곳, 니가타 어느 산중의 온천에는 한 마리 새가 날개를 적셔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


 추운 겨울의 뜨거운 온천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마성魔性의 힘을 지니고 있다. 친구들에게 농담으로, 설국의 겨울을 나기 위해 ‘1일 1사케, 1주 1온천’을 하겠노라 말하였다. 마침 조사지 다음 역인 무이카마치六日町1)에는 온천여관이 몰려있다. 온천 료칸 하면 떠오르는 고급스런 느낌은 없지만 매주 온천을 돌아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였다. 시작은 무이카마치로 해서 점차 반경을 넓혀가기로 하였다. 주로 조사가 없는 주말을 이용하여, 공중목욕탕 온천에도 가보고 료칸 온천도 이용하였다.


 트렁크를 끌고 온 첫 날, 선생님의 배려로 유명한 온천 료칸 ‘코시지소우越路莊’에 묵었다. 온천의 원류原流가 시작되는 곳이었는데 천정이 높아서인지 공기가 차가워 자꾸 탕에 들어가게 되었다.


 공중公衆 온천인 ‘유라리아湯らりあ’는 자판기로 입욕권을 사고 샴푸 등도 구입할 수 있다. 네 명이 옹기종기 붙어 앉을 정도의 작은 공간이라 당황스러웠으나 온천원류가 흘러 물이 뜨겁고 몸이 풀려 400엔의 저렴한 맛에 이용할 만 했다. 몸이 가뿐해지는 것이 매주 온천을 한다면 언젠가는 날아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음엔 료칸 온천이면서 방문객에도 열린 온천 ‘호테루 키노메사카ほてる木の芽坂’를 갔는데 기대에 미치진 못했지만 몸이 점차로 훈훈해 오는 느낌을 받았다. 네 번째는 스키 리조트 온천 ‘무이카 온센むいか温泉’으로 마침 진눈깨비가 하염없이 내렸던 날이라 창밖을 바라보며 입욕入浴을 즐기다 나오니 어느새 몸이 후끈해졌다.


ほてる木の芽坂의 사케바


 마지막은, 식사를 하면 입욕료가 반값인 료칸 온천 ‘사카도조坂戶城’로 메인탕 외에 미니 약초탕이 있고 매달 약초가 바뀌었다. 료칸은 낡은 건물로 낭만적인 느낌은 없었다. 그러나 맛난 밥을 먹고 온천을 하거나 온천을 하고 배를 채우는 만족감은 설명하기 어려워 외관상 기대에 못 미치는 느낌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약초탕은 일인용으로 과한 듯하나 엄마와 딸이 함께하기에 적당한 원형으로, 수온이 알맞아 꽤 마음에 들었다. ‘이번엔 덮밥을 먹었으니 다음엔 소바를 먹어야겠군’ 하며 돌아가는 밖은 추웠으나 몸은 뼈 속까지 시원하였다.


 무이카마치六日町 이후론 여행객으로 붐비는 에치고유자와 및 인근 지역으로 온천탐방을 넓혀갔다. 사케를 부었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간 유자와 역의 온천 ‘폰슈칸 사케부로酒風呂’는 접근성 외의 매력은 없었으나 어쩐지 피부가 매끈해진 느낌을 받았다. 유자와는 스키와 온천 리조트가 집중적으로 조성되어 고즈넉하거나 낭만적이거나 최신설비에 넓은 온천을 갖춘 곳 등 모두의 기호를 맞출 수 있는데 나는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에게 살짝 물어 ‘물’이 가장 좋은 곳과 ‘경관’이 좋은 곳을 추천 받았다.


 ‘물’이 좋다는 곳은 설국의 집필지 타카한 옆에 위치한 고민가풍의 오래된 온천 ‘야마노유山の湯’로 야스나리도 여기서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원천源泉’이라고 할 때는 온천 원류에 어떠한 것도 첨가하지 않은 탕이라는 말인데 이곳이 그러하였다. 작은 내부에는 대여섯 명이 들어가면 비좁을 작은 탕이 하나 있을 뿐이었고 의자는 네 개만 놓였을 정도로 작았다. 무엇보다 샤워기가 없어 온수, 냉수를 따로 받아 머리를 감아야 하는 불편함에 놀랐다. 탕은 끊임없이 물이 받아져 흘러넘치고 사람이 들고 날 때 조금씩 더 넘쳤다. 은근하고 후끈하고 따끈한 물은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몸 안에 감돌아 마지막에는 나의 몸 안에 이러한 훈훈한 기운과 열기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가 되었다. 온천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식지 않는 온기와 여운이 가득하였다. 이곳의 지인은 일 년 쿠폰을 끊어놓고 온천이 쉬는 날만 제하고 온 가족이 저녁 후 매일 목욕을 하고 따숩게 하루를 마친다니 무척 부러운 일이다.


 다음 달엔 깊은 산중 ‘마츠노야마松の山’를 가 볼 생각이다. 어쩌면 눈 속의 새를 만날 수도 있을까.





1) 무이카마치六日町의 온천지는 국민보건지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낭만적 온천여행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고시히카리 밥과 사케를 곁들인 소박한 방문에 적당하다.




글/사진 겨울베짱이

방방곡곡 베 짜는 조사를 하거나 직접 베 짜는 것을 즐깁니다. 눈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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