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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Jun 29. 2017

Salty Varanasi #1

그곳은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곳이다.

#1


 때때로 색다른 경험을 선택하게 된다사실대부분은 그러한 선택이 색다른 상황으로 귀결될지 예상하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내리는 것이기에 어떠한 결정(結晶)을 맺든 후회도 미련도 없이 만족하는 편이 홀가분하다삶에 누군가가 흘러들어오고 또 누군가는 잠시 맺혀 있다 증발해 버리곤 하는데 그건 나의 선택이 아니다해가 지면 달이 뜨는 것처럼 누군가가 뜨고 누군가가 진다


 내가 바라나시인도에 가게 된 것도 달이 뜨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간절히 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는 그곳에 존재했고그곳을 보게 되었으며그곳을 열망하게 되었다


 강가를 따라 걷다 보면 100m에 하나꼴로 가트(Ghat)1)를 본다바라나시에는 70개가 넘는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가트가 존재한다어떤 가트는 신의 이름을 갖고 있고 어떤 가트는 사람의 이름을 기념한다강가에 가득한 건 보트와 사람과 벌레들이다길에 살고 있는 개도 많고 지붕을 뛰어다니는 원숭이도 종종 보이지만 무엇보다 빈 보트와 흙자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2


 “이 와인 정말 맛있는 것 같아이런 와인이 있다니.” 


 새벽 세 시보름달이 보이는 커다란 시계 밑 테라스에 앉은 우리는 미래도 과거도 그리고 현재도 없는 사람들처럼 포트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리스본의 달은 크고 밝았으며 28번 트램은 더위에 지친 우리에게 잠시의 휴식을 주곤 했다알파마Alfama를 헤매고 다니다 보니 어딘가에서 파두Fado가 흘러나왔고 결국 우린그곳에 머물며 그들의 노래를 듣고 듣고 또 들었다그날의 차분했던 공기와 하늘뿌연 연기가 가득했던 골목길은 아마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그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난 여전한 나로그렇게 살아내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그 순간이.


포르투.



#3


 그와 나는 너무 달랐다그리고 너무 닮았다그는 나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고 나도 그에게 어떠한 존재였을 것이다영원일 것 같았던 우리의 인연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석달의 시간으로 줄어들었다하지만 첫 만남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계획했던 포르투갈 여행을 우린놓을 수가 없었다헤어진 연인이지만 남보다는 나은 우리였기에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함께였지만 달리각자였지만 같이. 2010년 8월의 무더운 여름날의 기억.


 그는 내게 바라나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호주에서 벌어 온 돈을 전부 다 들고 인도로 간 거야타들어 가는어쩌면 타다 만 것일지도 모르겠어시신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어갠지스 강에 띄운 배에서 맥주를 마셨는데알고 보니 불법이었어그리고 수식어처럼 언제나 붙이던 이 말.


 “거긴 가 봐야만 알 수 있는 곳이야넌 절대 못 갈 거야너무 지저분하고 끔찍해서.”



#4


 “나 바라나시에 다녀왔어좋던데생각보다 훨씬 좋았어왜 네가 그렇게 바라나시를 얘기했는지 알 것 같아.”


 “위험한 건 없었어동행인이 인도를 잘 아는 사람이라서 아주 편하게 잘 다녀왔어아침저녁으로 강가에 띄운 보트에 앉아 크고 작은 화장터를 순회하고 새벽부터 옴 나마시바야Om Namah Shivaya를 외치며 수영하는 사람들도 보고그렇게잘 지내다 왔어타들어 가는 시신을 보는 건 정말 묘한 경험이더라냄새뜨거운 불의 기운슬픔과 기쁨이 감도는 묘한 분위기.”


 “좋다기보다는 뭔가 영적인갓 들어온 시신에 갠지스 강물을 떠서 먹이는 것 같은 행위탑을 쌓듯 정갈하게 쌓여있는 나무들시신을 치장했던 꽃을 먹고 있는 소들그리고 펑하는 소리그게 뇌가 팽창하며 터지는 소리라며무서울 것 같았는데 인상적이었어곳곳에서 맡을 수 있는 독특한 냄새도 난 이상하게 좋더라화장터 냄새제사 지내면서 쓰는 향냄새들도.”



 오랜만이야잘 지내생각나서 메시지 했어행복해 보이네보기 좋다같은 안부는 전하지 않았다그저 바라나시에서 보고 느낀 감정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 그였기에 수다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아냐요즘은 인도 정부에서 관리한대전기로 태우는 화장터도 일부러 만들어 줬는데 사람들이 거긴 안 쓴다더라그리고 장마철이 아니어서 강물에 떠다니는 시신은 보지 못했어.”


 내 이야기를 듣고 바라나시를 회상하는 그에게선 일상적인 평온함이 느껴졌다그 사람은 내가 부럽다고 했지만사실 난 평범한 일상의 그가 부러웠다.



#5


 모처럼 리슬링 와인 한 병을 열어 몇 모금 홀짝거린다수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해포도의 시큼하고 싱싱한 냄새가 코와 혀를 자극한다당도와 산미가 풍부한 리슬링 와인과는 달리 묵직했던 포트 와인이 떠오른다그리고 그날의 기억들이 은은한 포도 향기처럼 내 안에 가득 번진다.


 문 닫기 직전 마트에서 산 싸구려 포트 와인과 두툼한 소고기바닷가에 즐비했던 해산물 레스토랑한 움큼 거슬러준 동전으로 인해 신경질적으로 변해버렸던 내 모습구석에 있던 와이너리들바다 향 짙은 작은 도시포르투Porto.


포르투의 식당


 곧 도래할 (영원한이별의 냄새에 지나치게 취했던 우리는 더욱더 신나게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그날의 기억에 그 사람은 남지 않았다이십 대의 나웃고 있던 나파두를 들으며 감동하는 나포르투갈 남쪽 어느 바닷가에 앉아 멍하게 있는 나해산물 가득한 시장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나만이 사진에 남겨져 있다누군가 함께 있었지만 나의 기억은 그 누군가를 이미지워버렸다흐릿한 형태조차 없이 그 사람은 완전히 지워졌다.

그러나 그 한 마디넌 절대로 인도에 갈 수 없을 거라는 말만은 잊히지 않았다.



#6


 인도는 내 상상으로는 그려내기 불가능한 나라였다구글 검색으로도 가늠할 수 없었고인도 이야기를 연재 중인 웹툰을 봐도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지의 나라였다바라나시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남의 눈과 남의 글을 아무리 보고 떠올려도 상상 이상일 것이라는 그 사람의 말처럼 내 두 눈으로 직접 봐야 아여기가 인도구나여기가 바라나시구나하고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랬다현실의 바라나시는 이미지와 텍스트에 갇혀 있는 것과는 다른 냄새로 가득했다많은 사람의 냄새몸에서 나는 냄새에 섞인 땀 냄새각자의 취향대로 고른 향의 냄새온갖 냄새가 한 데 섞여 땅 위를 떠다녔다지금도 인도를 떠올리면 모호한 체취가 코끝에 맺힌다.


 향은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려고 피우는 거라던데그래서 그런가뭔가에 홀린 듯인도의 향은 화장터의 무거운 공기와 함께 나의 영과 혼을 뒤흔들었다하지만 흔들린 마음은 분주한 발걸음에 밟혀 차마 땅 위로 피어오르진 못했다맡아보지 않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냄새바라나시의 향은 매캐한 현실을 그대로 마주 보게 했다나와 같은 이방인들만이 맡을 수 있었을 그 냄새.


 어딜 가든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현실이 되는 곳난 절대로 인도에 갈 수 없을 거라는 그의 말은 틀렸을지 몰라도이 말은 맞았다


 그곳은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곳이다.



1) 가트ghat : 육지에서 강이나 호수 등으로 이어진 계단.



2편으로 계속.







글/사진(2~6) 별나

클래식 작곡 전공, 빌보드 코리아 아나운서, 예술 강사를 거쳐 이젠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선 (우아한) 몽상가. 수전 손택을 닮고 싶고, 그보단 소박하게 전 세계를 산책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시를 쓰고 소설을 읽고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것 이상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때론, 몽상의 나래가 현실의 결보다 나을 때가 있다. 아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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