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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Jul 25. 2017

Salty Varanasi #2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어? 글쎄, 어떻게든 살아내겠지.

#7


 동 트기 전 흐릿한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새벽 다섯 시 즈음,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시간. 해 뜨는 걸 보기 위해 보트를 타야하고, 그 보트를 타기 위해선 90도 각도의 계단 67개 정도를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내가 머문 호텔은 바라나시에서 손꼽히는 컨디션(즉, 에어컨)을 가진 곳이었다. 하지만 4층이었다. 엘리베이터는 물론 없다.)


 질펀한 흙에 발이 빠지지 않게 조심스레 걸어 선착장에 도착하면 우리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노 저을 준비를 마친 철수 씨(한국사람 같은 인도사람이며, 노를 저어 바라나시 투어를 진행한다)가 우릴 보고 씩 웃는다. 투박하게 생긴 보트의 끝자락에 앉자 세상의 종말이 올 것 같은 적막함 그리고 스산한 고요함이 느껴진다. 흐린 강물에 둥둥 뜬 보트에 앉아 철수 씨의 설명을 듣다 보면 어제도 오늘 같고, 엊그제도 오늘 같다. 신기한 건, 들어도 들어도 흥미롭다는 것.



 그렇게 동틀 녘 보트 투어를 하고 67계단을 다시 기어올라 침대에 몸을 눕힌다. 늦은 저녁잠에 드는 것처럼 노곤하게 눈이 감긴다. 그렇게 두세 시간 잠을 더 청하자 허기를 참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다. 열 시쯤, 아침을 먹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골목에는 강아지 네 마리가 눈도 못 뜬 채 자고 있다. (도착한 날부터 밟지 않게 조심해야 했던 그 강아지들은 떠나는 날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며 자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 벽에는 뱀이 든 항아리를 보여주며 구걸하는 할머니 집시, 사리를 갖춰 입고 향과 꽃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는 여성들이 무리 지어 있다. 곳곳에 있는 사원은 짓뭉개진 샛노란 꽃들과 집시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들, 그들이 내미는 손들의 분주함은 상관없다는 듯 고고하고 호화롭게 꾸며져 있다.




#8


 그 사람은 새빨간 불에 휩싸인 채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허공을 향한 두 눈은 점점 빛을 상실했고 타들어간 장기들은 처음부터 형태가 없던 것처럼 갈비뼈 속으로 녹아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들은 그들이 흰 암소를 대할 때와 비슷하게 성스러운 것을 바라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타들어가는 죽은 몸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반짝였고, 바람이 불어 재가 날리면 절로 눈꺼풀을 깜빡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길에 휩싸여 허공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눈동자는 누구도 보호해 주지 못했다. 뜨거운 열에 눈꺼풀이 가장 먼저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첫날,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바라본 시신들은 죽음이 두려움이 아닌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우리는 사람이 끝도 없이 죽고 태어나고 살아간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죽음은 멀리 있는 환영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도에 사는, 그리고 환생을 믿는 이들에게 죽음은 그저 현상일 뿐이고 죽음으로 인해 완전한 안식(혹은 천국)에 들어간다고 믿는다.


 만약, 화장당하지 못하고 갠지스 강에 뿌려지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환생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어떠한 모습으로 환생하게 될지 모르기에 (소, 쥐, 불가촉천민 등등) 어떻게든 바라나시를 흘러가는 갠지스 강에 뿌려지길 원한다. 현생은 고난의 연속일 뿐, 다시 같은 생을 이어갈 수는 없기 때문에, 아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시바신과 강가신이 만나는 갠지스에 뿌려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지켜보는 나, 나의 눈으로 본 그들의 삶은 완벽했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해내고 있었기에….



#9


 며칠 동안 같은 골목을 다녔지만 결코 같지 않았던 골목 언저리에서 마주한 자그마한 가게에는 날짜가 지난 것 같은 초콜릿과 포장이 벗겨진 히말라야 크림, 조금 달라 보이는 코카콜라가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매일 아침 짜이와 함께 먹던 빠를지 크래커 하나와 너무나 맛있는 피지(애플사이다)를 집어 들고 나가려던 찰나, 주인 아저씨 뒤에 놓인 독특한 패키지가 눈에 띄었다. 오밀조밀하게 정리되어 있는 오각형 케이스를 건네받아 냄새를 맡아봤더니 알 수 없는 묘한 향이 났다. 불을 붙이면 또 다를까? 꽤 큰돈(우리나라 돈으로 천원이 조금 넘는)을 주고 향을 샀다. 사제들이 제사를 지낼 때 피운다는 Incense Stick, 아가르바티Agarbatti였다. 우연히 만난 이 향은 사던 순간엔 미처 알지 못했지만, 이후 펼쳐질 내 인도 여행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10


 해가 진 뒤 분주하게 호텔을 나서느라 미처 커튼을 치지 않았던 건 어마어마한 실수였다. 흰 시트와 이불에 수백 마리의 날벌레들이 내려앉아 있었다. 마치 흰 파도를 만난 동양인들의 정수리를 아주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벌레들을 쫓아내고 털어내고 죽이고 치우느라 어찌나 힘들었던지. 그래도 벌레들은 곳곳에서 우릴 지켜보고 있었다. 시원하지도 덥지도 않던 그 공간에서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창문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해가 진 뒤에 외출할 때는 반드시 불을 꺼야만 했다. 그래도 화장실 틈에 기어든 벌레들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향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가르바티 스틱은 화장실 틈과 침대 구석에 끼워두면 금세 상상할 수 없는 향을 내뿜으며 고상한 자태를 뽐내곤 했다. 물론, 날아다니는 벌레들도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인도 사람처럼 태연하게 향을 꽂으며 나도 모르게 그 향에 중독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골목길 어디에서나 뿜어져 나오는 각기 다른 향 중 아가르바티향을 단번에 알아맞힐 수 있을 만큼 나는 향과 가까워졌다.




#11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어?


 글쎄, 어떻게든 살아내겠지.


 우리가 했던 게 사랑일까? 우리가 하고 있는 게 정말, 사랑일까? 


 붉은 와인에 취해 잠들어 있는 사람의 발그레한 볼에 대고 혼자 중얼거렸던 말들. 한 낯선 인생의 죽음 앞에서 다시금 돌이켜본다.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소유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만나고 있다고,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여기는 것. 


 한참을 내달린 뒤 차오르는 숨을 삼키며 뒤돌아보았을 때, 달려온 흔적은 남아 있지 않고 기억도 소멸한 채 달아오른 호흡만 느껴지는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목표가 있어서 달린다고 생각했건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목표가 아니었던 순간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사랑을 하기 위해 사랑을 시작했던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무의미했었는지, 붉은 노을 밑 희미하게 번지는 연기 앞에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해맑은 기억은, 사실, 환상에 불과했다.




#12


 인도, 그것도 바라나시에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하는 질문은 하나같이 비슷하다. 냄새 안 났어? 더럽지 않아? 뭘 먹었어? 아니면 그저, 바라나시라니… 어땠어? 아니, 거길 대체 왜 간 거야?


 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미리 생각해 놓은 듯 이렇게 대답한다. 바라나시? 내가 가본 곳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곳이었어. 어쩌면 그 여행은 내 인생의 한 쪽에서 반드시 치러내야 할 의식처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해. 거기서 맡았던 온갖 향들, 아침이면 의식처럼 사원을 찾아가 향을 피우고 꽃을 바치는 그들의 발자국, 곳곳에 번지던 죽음의 기운, 그리고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던 역동적인 삶의 냄새까지…. 세상에서 맡을 수 있는 모든 냄새를 그곳에서 맡을 수 있었어. 그리고 그 냄새들이 난, 너무나 좋았어. 좋다라는 말이 어울리진 않지만. 바라나시 골목길에서 뿜어져 나오던 삶의 냄새와 질펀한 바닥의 느낌이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아. 그리고 무엇보다 연기와 죽음, 향과 기름이 뒤섞인 그들의 삶이 또 보고 싶어. 그래서 또 가게 될 것 같아.




#13


 “처음에 인도에 가게 된 동기가 뭔가?” 


 내가 불쑥 물었다.


 “우연히였죠. 적어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몇 년 간의 유럽 생활 끝에 치러야만 했던 필연적인 결과였던 것 같아요. 그동안 저한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돌이켜 보면 결국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마치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인도에 간 건 쉬고 싶어서였어요. 너무 공부만 파다 보니까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졌죠. 세계 일주 유람선에 갑판원으로 취직했어요. 동양으로 갔다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해서 뉴욕으로 향하는 배였죠. 미국에 못 간 지 5년이나 돼서 고국이 몹시 그리웠어요. 그리고 의기소침해 있었죠.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오래전에 시카고에서 처음 선생님을 뵀을 때, 저는 정말 아는 게 없었잖아요. 그런데 유럽에서 수많은 책을 읽고 많은 것을 봤는데도, 제가 찾는 것에 조금도 가까이 가지 못한 것 같았거든요.”


-서머싯 몸, <면도날> 중 발췌








글/사진 별나

클래식 작곡 전공, 빌보드 코리아 아나운서, 예술 강사를 거쳐 이젠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선 (우아한) 몽상가. 수전 손택을 닮고 싶고, 그보단 소박하게 전 세계를 산책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시를 쓰고 소설을 읽고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것 이상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때론, 몽상의 나래가 현실의 결보다 나을 때가 있다. 아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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