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영화'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

'재미있는 영화'라는 숭고한 저항

by cozyoff

"솔직히 나는 저 영화가 왜 대단한지 잘 모르겠어."


영화제 수상, 평론가들의 만점 세례. 그 눈부신 권위 앞에서 '모르겠다'는 정직한 감상은 왠지 부끄러운 고백이 된다. 블록버스터에 열광했던 기억은 유치한 취향처럼 느껴지고, 난해한 영화 앞에서의 침묵은 지성의 부족을 증명하는 듯하다. 이 보이지 않는 위계 속에서 우리는 묻는다. 정말로, '어려운' 영화는 더 '뛰어난' 예술인가?


어쩌면 예술 영화는,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고평가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평가'라는 단어가 불편하게 들렸다면, 당신은 분명 한번쯤 두 부류의 작품 사이에서 고민해 본 사람일 것이다. 대중과의 소통보다 감독 자신의 미학적 탐구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예술 영화의 세계에서, 그 외로운 항해는 때로 소수의 관객에게만 해독 가능한 암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예술 영화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 낯선 길 위에서의 감상은 때로 불편하고 지루할 수 있다. 뚜렷한 서사도, 명쾌한 결론도 없이 던져지는 이미지들 앞에서 길을 잃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불친절함을 견디고 스크린과 씨름하는 과정의 끝에서, 우리는 감독이 던져놓은 질문이 결국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가 아니라, "이 이미지를 통해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라는,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IMDB제공, 잉마르 베리만 <페르소나>, 데이비드 린치 <멀홀랜드 드라이브>


여기까지의 논의는 타당하고, 또 우아하다. 하지만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안전한 결론에 만족하지 못하는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과연 영화의 위대함이, 고독하고 개인적인 자기 성찰에만 있는 것일까? 나는 가장 경이로운 영화적 성취는 그 고독을 넘어, 수많은 타인의 심장을 하나의 리듬으로 뛰게 만드는 '재미있는 오락 영화'에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오락'은 주관적이라 말하지만, 그 개인의 취향조차 거대한 사회적 욕망의 반영이다. 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문화권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재미있다'고 느끼는 어떤 패턴, 즉 '클리셰'가 존재하는 것일까? 예술 영화가 '낯섦'이라는 비옥한 땅에서 시작한다면, 오락 영화는 바로 이 '클리셰'라는 척박한 땅 위에서, 기어코 새로운 꽃을 피워내야만 한다. 관객이 이미 수백 번은 봐서 닳고 닳아버린 그 뻔한 길 위에서 말이다.


마블 스튜디오 제공,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바로 이 지점에서, 최고의 오락 영화는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을 행한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의 규칙 안에서, 모두가 예측하는 바로 그 순간에,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단 하나의 감동을 창조해낸다. <탑건: 매버릭>이 그 낡은 영웅 서사로 우리를 다시 열광하게 만들었듯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그 필연적인 승리의 공식을 배신하며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듯이. 이것은 낯선 새로움을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잔인한 싸움이다. 익숙함이라는 중력을 거스르면서, 보편적인 감동이라는 목적지에 착륙해야 하는, 가장 위대한 종류의 예술이다.


더 나아가, 오락 영화의 가장 위대한 성취는, 어쩌면 그 서사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 그 자체에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의 삶은 종종 부조리한 농담처럼, 인과관계가 끊어진 파편들의 나열일 때가 많다. 나의 선한 의지는 최악의 결과로 돌아오고, 악한 자는 이유 없이 번성하며, 모든 것은 '우연'이라는 폭군의 지배 아래에 놓여있다. 바로 이 존재론적 혼돈 속에서, 잘 만든 오락 영화는 우리에게 단 두 시간 동안의 완벽한 '질서'를 선물한다.모든 복선은 반드시 회수되고, 모든 행동은 명확한 결과로 이어지며, 모든 갈등은 필연적인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이것은 일종의 '인과(因果)의 물리학'이 지배하는 세계다. 예술 영화가 종종 현실의 혼돈을 그대로 반영하며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면, 오락 영화는 '정의로운 인과관계'가 지배하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세계를 창조하여 우리를 위로한다. 우리가 '뻔하다'고 비웃는 그 클리셰야말로, 혼돈의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걱정 마, 이 세계는 아직 이해 가능하고, 너의 행동은 의미가 있어"라고 속삭여주는 가장 절실한 존재론적 위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재미'야말로 이 분열된 시대의 가장 숭고한 저항일지도 모른다.

난해한 예술이 각자의 고독한 내면으로 침잠하게 할 때, 잘 만든 '재미'는 피부색도, 이념도, 계급도 다른 수백 명의 낯선 사람들을 어두운 극장 안에 모아, 같은 순간에 함께 숨죽이고, 함께 웃고, 함께 울게 만든다.

그것은 '나'를 넘어 '우리'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공명의 순간이야말로,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절실한 구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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