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낡고 불편한 질문들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런 낡고 어려운 책을 읽어?"
해묵은 고전(古典)을 추천할 때마다 으레 돌아오는 반문이다. 맞는 말이다. 수백 년 전, 전혀 다른 사회를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는 당장 내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우리에게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유튜브 숏폼의 15초도 길게 느껴지는 시대에,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책은 시대착오적인 유물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고전을 읽는 행위는 이 시대의 속도에 맞서려는 가장 비효율적인 저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낡음'과 '느림'이야말로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단언한다. 시간은 단순히 모든 것을 낡게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장 본질적인 것만을 남기는 무자비한 필터이기도 하다. 수많은 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잊히는 가운데, 고전이 수백 년의 풍파를 견디고 살아남은 것은 그것이 사랑, 질투, 야망, 죽음, 존엄과 같이 결코 변치 않는 '인간의 조건'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전은 과거를 비추는 창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고전은 우리에게 친절한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거울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에 "정말 그럴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존재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국가'를 읽는 것은 기원전 아테네의 정치 체제를 배우기 위함이 아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2,400년의 질문 앞에,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사회의 정의를 다시 한번 되묻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읽으며 한 늙은 왕의 비극에 전율하는 것은, 그 눈물이 결국 '나는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서늘한 자기 성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질문과 마주하는 과정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마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굳어버린 근육을 억지로 움직이는 것처럼 삐걱거린다. 나 역시 처음 '죄와 벌'을 읽었을 때, 주인공의 열띤 독백을 따라가다 몇 번이나 책을 덮어야 했다. 그러나 그 고통스러운 독서의 끝에서,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이라는 거대한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했던 그 순간의 전율은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우리는 고전의 '언어' 그 자체와도 씨름해야 한다.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몇 번이고 되읽어야 하는 수고로움은,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무게와 의미의 층위를 깨닫게 한다. 빠르고 효율적인 소통만이 미덕이 된 시대에, 이 느리고 비효율적인 읽기야말로 생각의 근육을 단련하고 자신의 언어를 가다듬는 가장 확실한 훈련이다.
결국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체로 걸러진 인류 최고의 지성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때로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한 대화 끝에, 우리는 '정답' 대신 평생을 품고 살아갈 '나만의 질문' 하나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가장 단단한 닻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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