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노아
지난 2022년 케이팝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단연 ‘4세대 걸그룹’의 활약이다. 전 아이즈원 멤버들의 탄탄한 팬덤층을 기반으로 인지도를 확보한 아이브와 르세라핌부터, 케이팝 덕후들의 니즈를 제대로 저격한 전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비주얼 디렉터 민희진이 야심차게 내놓은 뉴진스까지. 이들은 정식으로 데뷔하기도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으며, 데뷔 후에도 뚜렷한 음악적 색깔과 다양한 매력으로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은 바 있다. 특히 아이브의 경우, 연말 시상식에서 신인상과 대상을 동시에 휩쓸고 있으니 이들을 주목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2022년 케이팝 키워드로 4세대 걸그룹만을 꼽았다면 당신은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 바로 ‘2세대 아이돌’의 부활이 또 다른 키워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서는 2022년 앨범 발매나 스페셜 무대 등을 통해 재결합한 아이돌들을 살펴보고, 왜 이것이 작년의 주요 케이팝 트렌드 중 하나가 되었는지에 대해 분석해보고자 한다.
선물 같은 공식 앨범과 함께 돌아온 그룹 - 소녀시대, 카라
먼저 데뷔 15주년을 맞아 5년만에 완전체로 컴백한 소녀시대가 있다. 소녀시대는 2007년 8월 5일 데뷔해 ‘Gee’, ‘소원을 말해봐’와 같은 히트곡을 쏟아내며 명실상부 ‘국민 걸그룹’으로 자리잡았고, 2017년 전속계약이 만료되며 단체 활동이 멈춘 후에도 여전히 가요계의 레전드로 남았다. 멤버들의 개인 활동이 매우 활발하고 소속사도 각기 다르기에 모두가 함께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이들은 오랫동안 기다려준 팬덤 ‘소원’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모든 것을 해냈다고 한다.
정규 7집 <FOREVER 1>의 타이틀곡 ‘FOREVER 1’의 뮤직비디오는 공개 직후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 7위에 올랐으며, 2023년 1월 25일 기준 무려 5456만뷰를 기록하고 있다. 앨범 초동은 약 18만장으로, 2세대 걸그룹 중 초동 10만장을 넘긴 걸그룹은 소녀시대가 유일하다. 음원 역시 멜론 차트 TOP100 23위 진입과 최고 순위 5위라는 높은 기록을 남기며 현역 걸그룹들과 맞먹을 정도의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외에도 단독 리얼리티 프로그램 <소시탐탐>을 촬영하고 음악방송, 예능, 라디오에도 출연하는 등 단순 음원 발매에만 그치지 않고 왕성히 활동하기까지 하며 ‘역시 소녀시대’라는 반응을 얻었다.
2007년 3월 29일 데뷔해 역시 데뷔 15주년을 맞은 카라도 7년만에 뭉쳤다. ‘Pretty Girl’, ‘미스터’, ‘STEP’ 등 숱한 명곡을 남기며 2세대 대표 걸그룹으로 자리잡은 카라는 2014년 멤버 니콜과 강지영의 탈퇴 후 허영지를 영입하며 활동을 재개했으나 2016년 해체했다. 이로써 카라의 단체 활동에는 종지부가 찍힌 듯했지만, 작년 여름 니콜이 완전체 컴백을 언급하며 이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탈퇴했던 두 멤버가 다시 돌아오고, 지금은 함께할 수 없는 멤버 구하라의 빈자리는 그대로 남겨두며 새롭게 재편되었다. 6인조가 된 카라는 2022년 11월 29일 스페셜 앨범 <MOVE AGAIN>을 발매했고, 같은 날 ‘2022 마마 어워즈’에서 역대 히트곡 메들리와 함께 최초로 타이틀곡 ‘When I Move’의 무대를 선보이며 여전히 카라가 건재함을 알렸다. 일본의 한류를 이끌었던 대표 걸그룹 답게 12월에는 일본 앨범 발매와 방송 활동도 이어나갔다.
‘When I Move’는 멜론 차트 TOP100 최고 순위 12위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발매 당일 역대 카라 타이틀곡 10곡이 모두 함께 멜론 일간 차트에 진입하기도 했다. 컴백 활동의 동영상들은 거의 전부가 유튜브 인기 급상승 차트에 들어갔다. 또한 1주간 음악 방송 활동을 진행했고, 뮤직뱅크에서는 9년만에 1위를 수상하는 쾌거도 이뤘다. 이외에도 카라는 ‘아는형님’, 유튜브 ‘문명특급’을 비롯한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팬덤 카밀리아를 위한 선물을 아낌없이 주고 갔다.
특별 무대를 통해 감동을 선사한 그룹 - 투애니원, 씨스타
비밀리에 완전체 무대를 준비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던 투애니원도 빠질 수 없다. 2009년 5월 17일 데뷔했던 투애니원은 걸크러쉬 컨셉을 처음으로 시도하며 걸그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타이틀곡 중 알려지지 않은 노래가 거의 없을 정도로 대중성을 꽉 잡고 있던 이들은 2016년 11월 25일 공식적으로 해체했고, 디지털 싱글 <안녕>을 마지막으로 남기며 떠났다. 해체 이후에도 돈독한 우정을 뽐내며 꾸준히 재결합을 원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투애니원은 2022년 4월 17일에 드디어 완전체로 다시 만났다. 그것도 무려 최대 규모의 뮤직 페스티벌로 손꼽히는 미국의 ‘코첼라 페스티벌’에서였다. 솔로로 코첼라 페스티벌에 초청됐던 CL이 팬들을 위해 나머지 멤버들을 초대하고 무대를 기획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6년만에 뭉쳐 ‘내가 제일 잘 나가’를 공연한 투애니원은 현역 시절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완벽하게 곡을 소화해내며 정식 재결합에 대한 많은 팬들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들의 영원한 ‘썸머퀸’ 씨스타도 다시한번 모였다. 2010년 9월 4일 데뷔해 ‘건강미’와 ‘실력파’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대중들에게 기존 걸그룹과는 차별화된 이미지를 쌓은 씨스타는 발매하는 노래마다 히트를 치며 음원 강자로 손꼽혔다. 이후 2017년 5월 23일 공식 해체를 알렸고, 마지막 싱글 ‘LONELY’를 발표하며 활동을 마무리했다. 별다른 사건 사고도 없었고, 높은 인기도 여전한 상황에서의 해체였기에 팬들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이 아쉬움에 응답하듯, 이들은 2022년 7월 22일 완전체로 무대 위에 다시 올랐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마지막 방송이었던 600회에서 히트곡 메들리 무대를 선보인 것이다. 5년 전과 다름없는 기량으로 여름의 무더위를 단번에 날려버린 씨스타의 무대는 대중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으며, 무대 비하인드 영상이 인기 급상승 차트에 랭크되기도 했다.
2세대 아이돌이 무대 위로 소환된 이유
이외에도 2019년에는 데뷔 10주년을 맞아 레인보우가 컴백했고 2021년에는 2AM이 7년만에, 티아라가 4년만에 완전체로 컴백했다. 2020년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이 기획한 숨듣명 콘서트에서도 일회성이긴 하나 나인뮤지스, 유키스, 틴탑, SS501이 특별한 단체 무대를 꾸몄다. 이렇게 오랜만에 무대 위로 돌아온 아이돌들은 이들의 팬덤뿐만 아니라 케이팝 덕후들에게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었다. 무엇보다도, 2022년에 정식으로 앨범을 발매한 소녀시대와 카라는 음원이나 음반 성적도 4세대 걸그룹과 비교했을 때 전혀 뒤쳐지지 않을 정도의 막강한 파워를 자랑한다. 그렇다면 왜 특히 최근 들어 2세대 아이돌의 재결합이 많이 이루어지고, 또 좋은 성과까지 거두게 된 것일까?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번째 이유는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그때의 케이팝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2세대 아이돌의 노래는 우리가 ‘진짜’ 추억하는 케이팝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의 연말 스페셜 무대를 보면 주로 H.O.T나 젝스키스 같은 1세대 아이돌의 노래를 커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1세대 아이돌을 잘 모르는 세대가 현재 케이팝 팬덤의 주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방송사가 팬들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이를 고려했을 때 2세대 아이돌은 우리가 직접 경험했기에 향수를 느낄 수밖에 없는 대상이 되며, 해체 후 충분한 시간이 흐른 바로 지금 재결합의 적절한 시기를 맞이한 것이다.
또한, 2세대 아이돌이 가졌던 대중성은 4세대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정도의 것이다. 뉴진스의 ‘Hype boy’가 아무리 유명하다 하더라도 카라의 ‘미스터’와 소녀시대의 ‘Gee’에 견줄 수 있을까? 물론 미디어가 활성화되며 변화한 시대적 상황도 함께 고려해야 하겠지만, 보이그룹 걸그룹 가릴 것 없이 멜론 차트인을 하고 어른들마저도 멤버들의 이름과 얼굴을 외우던 그 시대가 다시 오긴 힘들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2세대 아이돌은 옛날의 모습을 잃지 않은 채 다같이 즐길 수 있는 무대를 선사하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추억을 소환한다. 이들은 우리의 무의식 중에 존재하던, 다같이 케이팝을 향유하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한다. 자주 얼굴을 보고 노래를 들으며 자연스레 쌓인 높은 호감도는 덤이다.
마지막으로, 신인이 보여줄 수 없는 성숙함도 하나의 매력이다. 아이돌의 전성기는 매우 짧고, 대부분 데뷔 직후 혹은 데뷔 2~3년차에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데뷔 초창기의 모습에서 오는 새로움이 아이돌의 인기를 끄는 주된 요인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무대 경험이 많은 아이돌의 노련함을 찾게 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빠르게 교체되는 신인 아이돌들을 파악해야 한다는 피로감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2세대 아이돌의 익숙함은 오히려 하나의 셀링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다만 2세대 아이돌의 재결합의 특이점은 보이그룹보다 걸그룹의 재결합이 눈에 띈다는 것인데, 걸그룹의 평균 활동 수명이 보이그룹보다 짧다는 특성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걸그룹은 그룹이 해체되거나, 그룹은 유지하더라도 멤버들이 소속사가 달라 다시 모이기 쉽지 않은 경우가 보이그룹보다 많기 때문이다. 2세대 보이그룹의 멤버들 중 사건사고와 관련된 인물이 많아 복귀가 힘든 것도 아마 한몫을 했을 것이다.
사실 이미 해체나 재계약 불발을 경험한 아이돌 그룹의 재결합은 많은 어려움을 동반하는 일이다. 활동의 성공이 무조건 보장되는 것도 아니며, 그룹으로 묶여있던 때보다도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세대 아이돌이 <무한도전>의 ‘토토가 프로젝트’를 통해 뭉치게 되었고, 2세대 아이돌은 더 나아가 자신들의 의지로 재결합하여 앨범을 발매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소녀시대와 카라가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이전 세대 아이돌의 재결합은 2022년만의 트렌드로 남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활발히 이뤄지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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