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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돌레 매거진 Feb 21. 2019

에이핑크, The New Era

'몰라요'에서 '%%(응응)'까지 에이핑크의 변천사

사진 출처: 에이핑크 공식 계정

 걸그룹의 컨셉에도 대세가 있다. 언젠가는 청순, 또 언젠가는 섹시였고 지금은 아마도 걸크러쉬일 테다. 걸그룹 컨셉의 대세가 격변하는 흐름 속에서도 에이핑크는 데뷔 초창기부터 뚝심 있게 정석적인 청순 컨셉을 내놓아 왔다. 언제나 에이핑크는 90년대 청순 걸그룹의 계보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았다. ‘Hush’와 같이 약간의 변주를 준 곡을 제외하고는 템포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언제나 미묘하게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사운드의 음악과 함께, 그들은 청순한 소녀와 숙녀의 경계선 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에이핑크라는 그룹의 정체성과 이들의 음악은 너무나 한결 같았기에 내게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노래는 언제나 듣기 좋았던 것과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어느 시점부터 특별히 에이핑크의 활동에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커리어 면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던 ‘LUV’(2014)의 전성기를 지나 ‘Remember’(2015), ‘내가 설렐 수 있게’(2016), ‘Five’(2017) 등 분명 노래는 좋았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는데도 걸그룹 에이핑크로서 이들이 어떤 미래를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 의문과 더불어, 멤버 개개인의 활동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데뷔할 때부터 변함없이 비주얼 아이콘으로 주목 받은 손나은과 솔로 앨범을 낸 정은지, 그리고 나머지 멤버들도 예능과 드라마 등을 통해 꾸준히 예능인으로서 끼를 인정받으며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그러는 와중에 새로운 세대의 걸그룹은 새 시대의 청순함을 내밀어 인기를 끌었다. 러블리즈의 아련한 청순함, 여자친구의 일본 감성의 청순함 등 청순함도 점차 다양한 갈래가 나뉘면서, 한 차례 전성기를 지나온 에이핑크의 정석적인 청순함은 그 힘을 잃는 것 같아보였다.


사진 출처: 에이핑크 공식 계정

 하지만 2018년, 에이핑크는 ‘1도 없어’를 발표하며 이들을 따라다니던 ‘청순돌’이라는 수식어와 이별했다. 비주얼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이들의 변화는 대단했다. 강렬한 색감의 뮤직비디오에서 이전과 다른 분위기의 비주얼을 선보였고 음악적으로는 사운드와 가사 모두 지금까지의 에이핑크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응응)’ 발표는 전성기를 이미 떠나보낸 그룹의 행보에 의문을 던지던 나 같은 대중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개인적으로 에이핑크의 이번 두 앨범 활동에서 가장 변화가 와 닿았던 부분은 ‘몰라요’, ‘LUV’, ‘Remember’ 등에서 존댓말 또는 친절한 어투의 상냥한 가사를 고수하던 이들이 '반말'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고작 반말 가사를 쓴 게 대단한 변화라고 말할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냥하고 친절한 ‘소녀’에서 적어도 자신의 이야기를 강하게 노래하는 여성으로의 변화라고 바라본다면 어떨까. 최근의 에이핑크에게 이보다 더 의미 있는 변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제목에서부터 이들의 변화는 단적으로 표현된다. ‘1도 없어’, ‘%%(응응)’과 같은 제목은 이전의 에이핑크의 음악적 색채를 떠올리면 상당히 충격적이다. 생각해보면, 지난 곡들은 제목부터 상당히 친절했다.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는 8년차 에이핑크가 약간은 과도한 ‘인싸’ 제목을 택한 건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가장 세련된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2014년 무렵, 이들의 반복되는 청순 컨셉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도 존재했다. (이미지 고착을 넘어서 : 에이핑크의 오늘 (2), 아이돌로지, 2014.03.31. - 참조) 하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아이돌에게 고비라고 여겨지는 데뷔 7년차인 2017년까지, 같은 시기에 데뷔한 그룹이 노선을 틀고 활동이 뜸해지는 동안에도 자신들의 이미지를 지켰고, 그래서 어쩌면 그룹도 지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8년차에 이들은 새로운 길을 택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11년에 데뷔한 9년차 걸그룹 에이핑크는 이미 새로운 궤도 위에 올라서 있다.

사진 출처: 에이핑크 트위터 공식 계정

 이번 활동곡 ‘%%’의 안무 영상에는 남주의 춤을 언급하는 댓글이 유독 많이 달렸다. 남주의 춤 실력을 향한 외국 팬들의 주접 댓글을 굳이 가져오지 않아도 영상을 보면 그의 춤이 눈에 띈다. 이들이 갑작스레 보여준 컨셉 변화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능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에이핑크의 아티스트적 능력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이들의 예능 또는 드라마에서의 모습이나 ‘손나 예쁜’ 손나은 등으로만 이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 번 각인된 아이돌의 이미지는 웬만큼 부지런한 대중과 웬만큼 부지런한 아이돌이 아니라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들이 작년부터 작심한 듯 보여준 부지런한 변화 앞에서는 아무리 게으른 대중이라도 눈길이 가지 않기 어렵다. 일단 ‘1도 없어’와 ‘%%’의 안무 영상을 보기를 추천한다. 이 영상을 통해 나는 남주와 보미의 춤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야 알았는데 이들의 앨범에는 자작곡의 수도 적지 않았고 정은지는 솔로 앨범의 프로듀싱에 참여했다. 이들 개개인의 능력은 여전히 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


 지난 연말, 뮤직뱅크의 연말 정산에서 ‘1도 없어’를 공연하는 에이핑크를 설명하는 자막에는 이런 문장이 쓰였다. ‘<뮤직뱅크> 역사상 8년 차 걸그룹이 1위에 오른 것은 소녀시대 이후 최초의 일이다.’ 이 문장이 주는 울림이 유독 크게 와 닿는 건 장수하는 ‘걸그룹’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분명 대단한 커리어를 쌓아온 걸그룹이 존재했다. 하지만 걸그룹의 대단한 커리어와 롱런은 별개였다. 에이핑크의 ‘LUV’가 걸그룹 단일곡 최다 1위였고 걸그룹으로서 최초로 5번의 국내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의 인기가요 1위는 9년차 이상 걸그룹의 지상파 음악방송 1위로서 역대 3번째였다. 사족 한 문장만 덧붙이자면, 소속사의 ‘언플’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이들이 걸그룹으로서 이루어낸 커리어는 더욱 찬양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이들의 행보가 현 시점의 많은 걸그룹과 그들의 팬에게 자극이 되었으면 한다. 미국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의 K-POP 산업 한 편에서 9년차 걸그룹으로서 자신들의 커리어를 개척해나가는 에이핑크의 존재도 K-POP 역사에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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