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영원
지난 1월 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는 ‘제38회 골든디스크 어워즈 with 만디리’가 개최되었다. 음반 및 음원 대상 등이 발표되는 가운데, 이날 디지털 음원 본상 수상자에는 뉴진스, 르세라핌, 아이브, 박재정, 세븐틴, 부석순이 호명되었다. 특이한 점은, 세븐틴과 부석순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케이팝러 독자들이라면 다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부석순은 세븐틴의 멤버인 ‘부’승관(승관), 이’석’민(도겸), 권’순’영(호시)로 이루어진 유닛 그룹이다. 이들은 올해 그룹 세븐틴으로서 [FML] 앨범을 내며 <손오공>으로 활동하였지만, <파이팅 해야지>를 흥행시키며 부석순으로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살았던 이 세 명의 멤버는, 바로 이 골든디스크 시상식 무대에서도 역시나 ‘일 냈다’.
이날 부석순의 무대는 시작부터 엄청난 반응을 끌어냈다. 웅장하게 무대에 오른 직후,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를 리믹스한 버전의 전주가 흘러나오자 이 노래를 아는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말 그대로 전율을 느꼈다. <그대에게>는 드라마 삽입곡으로도, 스포츠 팀 응원가로도, 치어리딩 단골 노래로도 쓰이며 부석순의 주요 팬층인 90년대생, 넓게 보면 00년대생에게까지 널리 익숙한 곡이기 때문이다. <그대에게>라는 제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노래를 틀게되면 전주를 듣자마자 ‘아~ 이 노래~!’라고 할 만큼 유명한 곡을 대담하게 리믹스한 것은, 그들의 짙은 청춘의 패기가 새어나오는 선택이었다. <거침없이>와 <파이팅 해야지>가 모두 에너지 넘치고 파이팅 가득한 곡이라는 점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듯, 부석순은 충만한 패기와 동적인 열감으로 청춘에게 응원을 전하는 그룹이다. 이런 그룹이 전주만 들어도 벅차오르는 <그대에게>를 섞어, 한 층 에너제틱해진 <파이팅 해야지>에 맞추어 응원단 컨셉의 힘찬 안무를 시작했다. 현장 뿐 아니라, 안방 1열에서 시상식을 감상하던 이들에게도 짜릿한 순간이었다.
부석순은 시작부분 뿐만 아니라, 무대가 진행되는 내내 계속해서 방긋 웃는 얼굴로 재치 있으면서도 신나는 무대를 꾸며 갔다. 원래 곡인 <파이팅 해야지>를 한층 더 극적인 느낌으로 변형한 멜로디 라인과 함께 ‘우리의 청춘은 바로 지금이다! 올해도 힘차게 파이팅 해야지!’라는 희망 가득한 멘트를 외치기도 했다. 금색의 치어리딩 폼폼 도구를 들고 흔들며 더욱 시원시원하게 뻗어내는 댄서들의 동작 속에서도 이러한 역동성은 진하게 전해져 왔다. 새해 시기의 ‘골든’디스크에 맞는, 시원하면서도 뜨거운 열망이 동시에 느껴지는 무대를 꾸민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2절 후렴이 끝날 무렵, 무대에는 갑작스럽게 또다른 히든 카드가 등장했다. 바로 세븐틴의 막내 디노의 부캐, ‘피철인’씨다. 피철인을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피철인은 세븐틴의 자체 컨텐츠 <고잉세븐틴>의 세상의 이일언일이 편에서 처음 등장한 동네 오지랖 아저씨 컨셉의 캐릭터이다. 디노는 모든 동네 사정에 한 마디씩 ‘피처링(피철인과 발음이 유사)’으로 참견을 건드는 아저씨 연기를 사실적이면서도 웃기게끔 너무나 완벽히 소화해냈다. 덕분에 피철인은 비호감 속성의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이후 <고잉세븐틴>의 전원우일기 시리즈, 경음악의 신 시리즈에서도 꾸준히 등장하였다. 부석순 무대에서의 피철인의 등장은 다른 세븐틴 멤버들이 몰랐을 정도로 깜짝 이벤트였는데, 이에 피철인이 무대에 등장하자 세븐틴의 형 라인 멤버인 에스쿱스와 우지가 자리에서 깜짝 놀라는 모습이 잡히기도 했다.
웃기면서도 감동을 준다. 재미 있으면서도 위로가 된다. 이는 부석순의 모토이자, 정체성이다. 피철인 역시도 이 명제에 완전히 부합하는 래핑을 선보였다. 꽤나 웃긴 첫 등장에 강렬한 인상을 느끼기도 잠시, 피철인의 구수한 랩을 경청하다 보면 점점 힘이 되는 말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아직 무대를 찾아보지 못했거나 랩 가사를 전부 듣지 못한 사람을 위해, 아래 피처링 가사 전문을 첨부한다.
솔직히 힘을 내기엔 많이 지친거 다 안다
사는게 그렇잖아
뜻대로 되는게 별로 없잖아
이게 맞나맞나 고민할 시간에 건강을 더 챙겨
충분히 잘하고 있어
청춘은 지금 여기 있어
시끄럽게 평가 비교 어쩌구저쩌구 떠들어봤자
내 인생 내가 멋들어지게 만들지
정과 사랑으로 힘 좀 내보자고
우리의 하루는 숙제가 아니라 축제니까
사랑의 눈빛
래핑의 마지막, ‘사랑의 눈빛’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고잉세븐틴>에서 파생된 피철인의 밈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 밈은 자세한 설명을 듣는 것보단 상술한 <고잉세븐틴> 피철인 등장 회차를 시청하며 직접 알아보는 편이 더 재미있을 것이다. 밈을 이해하고 난 이후에는 이 무대가 더욱 웃기고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은 덤. 레전드 애드리브였던 ‘사랑의 눈빛’을 쏴 주고, 마무리 엔딩 포즈까지 알차게 부석순을 도와 무대를 꾸민 디노를 보고 관객은 물론이고, 세븐틴의 다른 멤버들까지 반응은 말 그대로 초토화되었다.
꾹꾹 눌러담은 희망을 발산하여 연초부터 우리에게 밝은 에너지를 전해준 부석순. 덕분에 쾌청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해 본다. 과연 이들의 다음 활동이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나에게 희망 가득한 손길을 내밀어줄 그 날을 손 꼽아 기다려 보겠다. 그리고 또한 그들에게도 힘찬 희망과 행복이, 그들이 발산해온 에너지의 총량만큼 한아름 안겨지길 기도한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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