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RITER 블루
최근 Y2K 감성을 제대로 터뜨린 그룹이 있다. ‘인공호흡’, 영어 단어가 의미하는 그대로 음악과 매력으로 가요계에 새 숨을 불어넣겠다는 포부 아래 데뷔한 ‘키스오브라이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소형 기획사에서 데뷔하여 활동한 지 약 8개월밖에 되지 않은 이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2000년대 초 핫걸 컨셉으로 정체성을 확립 중인 키스오브라이프(이하 키오프)는 지난 3일 개최한 쇼케이스에서 "이효리, 보아 선배님이 롤모델이어서 영감을 많이 받았고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에서도 영감을 얻어 우리만의 색깔로 소화했다"라며 4대 기획사(JYP, YG, SM, HYBE)가 정형화시킨 음악 스타일이 아닌 독자적인 컨셉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대형 기획사에서 데뷔하는 아이돌과 달리 중소형 기획사에서 데뷔하는 아이돌의 흥행은 실력과 반비례한다. 멤버들의 실력이 아무리 좋다 한들 회사의 자본력과 차별성 있는 기획력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대중들에게 눈에 띌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대형 기획사의 독식이 이어지고 있는 현시점에, 키오프는 중소 아이돌의 틀을 깬 장본인이 되었다. 이들의 기획사인 S2 엔터테인먼트의 소속 아티스트는 키오프 한 그룹일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키오프는 흔히 말하는 '중소돌'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높은 음악 퀄리티를 선보이며 현재 활동 중인 싱글 앨범 ‘Midas Touch’는 빌보드 차트 200에 진입하며 대중성을 입증했다. 이에 치열한 가요계 속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키오프가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지 3가지로 나누어 정리해보겠다.
https://youtu.be/l_niySJQFLY?si=Iz5ayerE2ENG73sB
먼저, 키오프의 내적 요소를 알아보자. 보통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이 데뷔할 때는 사전 프로모션이 진행되거나 음원을 선공개하는 식으로 새 그룹의 탄생을 알린다. 키오프가 데뷔하던 순간을 떠올렸을 때, '프로듀스 101과 아이돌 학교 출신 이해인이 제작하는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이 가장 먼저 기억났다. 아이돌 오디션 출신의 근황이 아이돌 제작이라니. 지금까지 이런 사례는 없었던 만큼, K팝 팬들의 흥미를 끌기 딱 좋은 소식이었다. 더군다나 그 그룹에 이해인과 함께 아이돌 학교에 출연했던 나띠가 데뷔한다는 소식까지 더해져 소형 기획사 아이돌의 시작이었음에도 데뷔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키오프의 본격 데뷔 프로모션과 동시에 이해인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키오프에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업로드했다. 키오프 캐스팅 과정도 매우 흥미로웠는데, 이해인은 아이돌 그룹을 만들기 위해 아이돌학교에 같이 출연하며 친해진 나띠를 영입했고, 나띠를 통해 더블랙 레이블 연습생 출신의 쥴리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S2 엔터 산하에 있는 AURA 엔터의 작곡가이자 이해인의 절친이었던 아도라와 함께 작곡가 신분으로 있던 벨과 S2 엔터에서 발굴한 인재 하늘까지 모여 ‘키스오브라이프’라는 그룹이 시작되었다.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이었던 나띠와 쥴리, 데뷔 전 르세라핌의 'UNFORGIVEN' 작곡가로 이름을 알린 벨 그리고 에이스 연습생이었던 막내 하늘. 총 4명으로 구성된 키오프는 ‘다인원 노포지션’이 대다수인 4세대 아이돌과는 달리 포지션이 확실한 상태에서 데뷔했다는 차별점도 존재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키오프의 데뷔 앨범인 'KISS OF LIFE'에는 네 멤버의 솔로 곡이 수록되어 있다. 중소 아이돌의 데뷔 앨범에 멤버 개개인의 곡을 수록하는 건 사실상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대중성을 잡아야 성공에 가까워지는 현 K팝 흐름과 달리, 이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음악으로 보여주는 길을 택했다. 힙합 베이스의 쫀득한 랩을 선보인 쥴리의 'Kitty Cat', 팝 기반의 곡으로 가창력을 선보인 벨의 'Countdown', 막내다운 귀엽고 엉뚱한 하늘의 'Play Love Games', 그리고 Y2K 그 자체가 되어버린 나띠의 'Sugacoat'. 그중에서도 데뷔 이전부터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과 솔로 활동으로 인지도를 쌓아온 나띠의 솔로 곡이 화제가 되었다. 뮤직비디오의 배경부터 감각적인 비트가 만나 듣는 이들을 2000년대로 데려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 곡을 듣기 전만 해도 나띠에게 Y2K 컨셉이 이렇게나 잘 어울릴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기획사가 바라보는 멤버들의 특색이 살아 있는 솔로 곡을 통해, 대중들에게 각자 어떠한 매력을 가졌는지 알려주는 ‘친절한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뿐만 아니라 데뷔 과정을 통해 부여된 ‘리얼 서사’가 있었기에 더더욱 ‘괴물 신인’이라는 타이틀 아래 가요계에 새 숨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 유추해 본다.
확실한 컨셉과 무난한 시작. 그러나 여기서 멈추기엔 키오프의 잠재된 매력이 너무나 많다. 특히, 2023년 연말 시상식은 키오프를 빼면 섭섭할 정도. ‘연말 시상식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라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다.
https://youtu.be/5C2YqvRFbDc?si=aEjLh2PeB7YdLdgf
키오프를 대중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던 첫 번째 시상식은 바로 멜론 뮤직 어워드 무대이다. 키오프의 두 번째 앨범인 ‘BAD NEWS’를 선보였는데, 악동 컨셉답게 경찰로 연상되는 댄서들과 그 사이에 수갑, 폭탄 등의 소품과 함께 멤버들이 등장하는 식의 인트로 구성을 주어 ‘BAD NEWS’ 뮤직비디오의 연장선다운 무대를 꾸몄다. 라이브로 무대를 이어나가는 여유 있는 모습이 신인 같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키오프는 자신들을 대중들에게 어필해나갔다.
무대 후반부에서는 쥴리가 자작 랩을 선보여 반전을 주었다. 쥴리가 랩 하는 장면을 보고 놀란 타 그룹의 리액션 영상도 함께 화제가 될 정도로 키오프의 무대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데뷔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그룹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실력 있는 키오프의 무대는 2023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 해당 영상은 250만 회를 돌파했으며, 여전히 키오프를 칭찬하는 댓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https://youtu.be/OjqMwY0Cj-o?si=Kb2HG6JWp6jvTaGe
두 번째로 인상 깊은 시상식은 서울가요대상이었다. 키오프는 이곳에서 멤버별 솔로 곡을 선보였다. 신인 아이돌이 시상식에서 솔로 곡을 부르는 것이 이례적인 사례인 만큼, 키오프는 개개인의 실력을 확실하게 어필했다. 특히, 나띠는 자신의 솔로 곡 ‘Sugacoat’를 태국어와 영어 버전으로 부르며 인기에 보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이어지는 ‘BAD NEWS’ 무대는 아프로 장르로 편곡했다. 연말 시상식 특성상 짧은 기간에 같은 곡으로 여러 무대를 하는 만큼 자칫 듣는 이들에게 뻔함을 안겨줄 수 있는데, 서울가요대상에서 키오프는 아예 예상하지 못한 아프로 장르로 해석해 한층 더 새로운 매력을 보여줬다. 특히, 무대 중반부터 특수 로프를 활용해 신나는 댄스 브레이크를 완성했다. 해당 파트에서의 쥴리를 폭룡적인 댄스 직캠은 300만 회가 넘을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다소 아쉬운 음향과 협소한 무대로 연출의 한계가 있을 수 있었음에도 무대를 꽉 차게 만드는 이들의 무대는 계속해서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가졌다.
https://youtu.be/F5VtkQF05zA?si=wBK47dS0vAl1PHlH
마지막으로 볼 시상식은 2023 서클차트 무대이다. 이번에는 락 기반 인트로로 시작했다. 같은 노래를 선보여도 매번 색다른 변주를 주는 이들의 무대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중간에 댄스 배틀을 하는 듯한 흐름을 이어가 해외 시상식을 보는 듯한 스케일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한, 이전 시상식에서 보여주지 않은 대규모 메가크루 퍼포먼스를 통해 더욱 꽉 차는 무대를 만들어냈다. 매 시상식이 처음인데도 처음 같지 않은 무대 실력을 보여주며 라이브를 이어나가는 이들 덕분에 보는 이들도 자연스레 응원하게 되었다.
이처럼 키오프는 매번 새로운 무대 연출을 통해 자신들의 스펙트럼을 어필했다. 키오프의 정체성은 실력이고 실력은 곧 무대를 통해 증명됐다. 2023년 데뷔한 타 신인 아이돌의 무대와 비교해 보아도 확연한 퀄리티 차이가 날 정도로 키오프 무대는 심혈을 기울인 티가 났다. S2 엔터의 기획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멤버들의 실력이 있었기에 단번에 가요계에 괴물 신인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 중소 기획사라는 한계에 부딪히는 것이 아닌 오히려 시상식 무대를 기회로 삼아 대중들에게 그룹을 알리는 전략은 라이브 무대가 고팠던 대중들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덕분에 공연 맛집으로 소문난 키오프는 이번 여름 워터밤 서울 속초, HAVE A NICE TRIP 페스티벌 등 대형 페스티벌 라인업에 등장하며 다양한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돌의 성공 요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이다. 아이돌의 실력과 무대 장악력이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우선 노래가 좋아야 그 이상의 것을 찾아보기 때문이다. 필자가 서두에서 짧게 언급했던 것처럼, 키오프는 나띠의 솔로 곡인 ‘Sugacoat’의 흥행을 발판으로 삼아 이번 앨범 ‘Midas Touch’에서는 대놓고 Y2K를 겨냥했다. K팝이 Y2K를 해석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키오프의 보컬 스타일은 해외 팝 아티스트의 2000년대 무대를 떠올리게 하는 방향성을 가졌다. 그러나 그 시절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닌 댄스팝으로 엮어 재해석했다. 특히, 중간 훅 부분은 애니콜 광고가 생각나는 듯한 비트와 털기 춤을 선보이며 키오프만의 정체성을 확립했으며 후반부 가사에 숨겨진 멤버들의 솔로 곡 제목은 팬들 사이에서 이스터 에그로 여겨져 재미있는 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키오프가 잘하는 장르이자 K팝이 앞으로 주목할 흐름을 파악한 덕에 이번 노래는 팬들뿐만 아니라 대중들 사이에서도 자주 듣는 음원이 되었다. Y2K 컨셉은 자칫하면 남의 옷을 입은 듯한 어색함을 줄 수도 있지만, 잘 해석하면 듣는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새로움을 선사할 수 있는 강점을 가졌다. 그렇기에 데뷔 초부터 2000년대 감성의 R&B와 팝을 주 장르로 선보이는 키오프의 앞으로의 음악 또한 궁금해진다.
키오프의 사례로 보아 K팝 시장에서 ‘중소 아이돌’이 흥행하기 어렵다는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음악 차트에서 한 번에 순위권으로 오르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입소문 타는 것은 금방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만의 정체성과 실력을 겸비한 그룹이라면 대중들은 그들을 응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라이브 실력이 강조되는 오늘날 대중들은 실력 있는 아이돌을 찾아 나선다. 이러한 시점에 키오프는 아직 보여줄 것도, 어필할 것도 많은 그룹이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1년이 되지 않는 시기 동안 탄탄히 입지를 굳혀온 키오프에게도 1위의 순간이 와 실력을 한 번 더 증명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어떨까. 데뷔부터 지금까지의 상승 곡선을 그려 나가는 키오프는 앞으로의 방향성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더 많은 대중이 ‘키스오브라이프’에 주목할 때까지 K팝에 불어넣을 새로운 호흡을 기대해 본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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