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riter. 덕원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마법 소녀로 통하는 아일릿! 모두가 그녀들을 마법 소녀로 지칭하지만, 사실상 공식적으로 마법 소녀임을 선언한 적은 없었다. 그 때문에 멤버들의 정체가 정말 마법 소녀인지 아니면 소망에 불과한 것인지, 팬들의 추측만이 난무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 미니 3집 《bomb》을 통해 현실 소녀 아일릿이 마법 소녀로 완전히 변신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이들의 마법 소녀 서사가 처음 공식적인 베일을 벗은 것이다. 아일릿이 생각하는 마법 소녀는 어떤 존재인지, 이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살펴보며, 데뷔 이래 펼쳐온 마법 소녀의 흔적을 찾아가 보고자 한다.
‘아일릿은 마법 소녀다!’라는 인상을 각인 시켜준 것은 데뷔 앨범이다. 앞서 대략적인 팀 콘셉트를 설명하자면, 아일릿은 크게 ‘SUPER ME’, ‘REAL ME’ 두 개의 세계관을 가져간다. 여기서 ‘SUPER ME’는 아일릿의 상상 그리고 초월적 소녀로서 멤버들의 모습이 그려지며, ‘REAL ME’ 현실 소녀인 멤버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는다. 데뷔 앨범 《SUPER REAL ME》는 현실 소녀 아일릿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하고 발랄한 상상을 담은 앨범으로, 두 세계관의 이미지가 동시에 표현된다. 그러나 시각적 요소들에서 와 닿는 직감은 ‘SUPER ME’에 가깝다고 느낄 것이다.
https://youtu.be/Vk5-c_v4gMU?si=oaCDtSTfzFAAEbFf
그 이유는 타이틀곡 〈Magnetic〉에서 보이는 이미지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공주풍의 의상, 파스텔 색감의 몽환적이고 아기자기한 배경, 전설의 동물 유니콘의 반복된 등장 등 뮤직비디오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는 상상 속 소녀들에 가까운 모습이다. 더하여 멤버들이 염력을 사용하는 장면과 공주풍 의상이 가득한 방에서 변신하는 모습, 달빛 아래서 춤추는 장면은 이들이 마법 소녀라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실제로 아일릿이 큰 인기를 끌었던 요인에 90년대 마법소녀물 무드를 빌려온 것이 꼽힌다. 이에 따라 팬들은 세일러문, 달빛천사 등 고전 만화에 아일릿의 콘셉트를 대입하며, 모티브가 된 작품을 찾는 일에 열의를 다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드나 클리셰를 차용했을 뿐, 이때까지만 해도 공식적으로 마법 소녀라는 키워드가 언급된 적은 없다. 그 때문에 멤버들이 마법 소녀라는 가설보다는, 마법 소녀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으며, 그처럼 되고 싶은 현실 소녀들로 보는 게 더 신빙성 있다. 아일릿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기반으로 하는 팀이다. 즉 이들의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가 마법 소녀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멤버들이 침대 위에서 잠든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뮤직비디오와, 수록곡 〈Midnight Fiction〉의 가사인 “하루의 끝 침대 위로 쓰러져 잠들기는 아쉬워”, “달빛도 잠든 사이 시작된 나의 Story 끝없이 펼쳐지는 Midnight Fiction”은 앞선 모든 스토리가 멤버들의 상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내비친다.
그렇다면 아일릿은 왜 마법 소녀를 꿈꾸는 것일까? 아일릿은 내가 보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팀이다. 게다가 나의 진짜 이야기가 곧 최고의 이야기라고 믿으며, 세상을 구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마법소녀물의 문법을 차용하는 것은 10대 여학생들의 마음속 히어로는 마법 소녀라는 지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0대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마주하면, 자신에게도 마법이 생기길 바라는 순수한 상상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해, 이 같은 꿈속 장면들이 연출됐다고 볼 수 있다. 아일릿의 음악에서 사랑이 중요한 키워드인 것 또한 10대에게 사랑은 처음으로 마주한 불가항력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마법 소녀로서 아일릿의 정체보다, 마법 소녀를 마음에 품고 있는 멤버들이 이를 통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앞선 내용은 《bomb》이 발매되기 전 작성한 것으로, 필자의 개인적 견해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번에 발매된 《bomb》은 아일릿이 재해석한 마법 소녀의 모습이 담겨 있는 앨범으로, 자신들에게 마법이 어떤 의미인지 멤버들이 직접 들려준다.
아일릿은 이번 앨범을 통해 진정한 마법 소녀로 거듭나게 된다.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더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의 OST 〈우아한 탈주〉를 샘플링한 타이틀곡과, “꿈실냐옹”, “둠칫냐옹” 마법 주문을 연상하는 가사 등 음악적 요소에서도 마법소녀미를 공연히 표출한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현실 소녀들이 마법 소녀가 되었다는 지점이다. 마법 소녀를 절대적인 존재로 봤을 때, 아일릿은 처음부터 그리 강한 존재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마법소녀물에서 주인공들은 평범한 학생인 동시에 마법의 힘 또한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아일릿 또한 평범한 여학생이었지만, 마침내 마법 소녀가 되어 무한한 잠재력을 펼치게 된다. 다만 만화 속 주인공들과 다른 점은 이들이 지닌 마법은 물리적 힘이 아니며, ‘자신의 가능성을 믿는 것’ 내면의 힘이라는 사실이다.
https://youtu.be/xRU1XXHIpIc?si=Mg7WZS3yfwOIvH6-
아일릿의 마법 소녀 서사는 1번 트랙 〈little monster〉의 뮤직비디오이자, 동시에 《bomb》의 브랜드 필름인 영상에서 나타난다. 영상은 어딘가에 갇혀 우울해 보이는 멤버들 사이, 모든 마법봉을 회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는 마법 소녀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었지만, 마법 따윈 존재치 않다는 현실과 마주함으로써 동심을 잃어버린 모습이다. 그리고 더 이상 마법 소녀를 상상하지 않게 된 멤버들의 마음은 우울한 감정만이 남게 된다.
그러나 멤버들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괴물들이 젤리로 변신하며 상황은 반전된다. 젤리들은 얼굴만 빼꼼 내민 채 갇혀 있는 아일릿을 찾아가고, 멤버들은 이를 삼켜 버린다. 그리고 젤리를 삼킨 멤버들의 표정은 이내 밝아진다. 이후 모든 멤버가 젤리를 다 먹자, 갇혀 있던 공간이 부서지고 마법 소녀로 변신한 채 하늘을 날아오른다. 일단 이 장면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little monster〉의 메시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little monster〉는 내 마음속 나를 괴롭히는 불안, 우울 등의 스트레스를 괴물로 표현한 곡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해치워 먹고 이에 벗어나겠다는 멤버들의 당찬 의지를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괴물은 멤버들 마음속 자리 잡은 스트레스로, 젤리로 변신한 괴물을 삼키는 장면은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멤버들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멤버들은 젤리를 먹은 이후 어떻게 마법 소녀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앞서 멤버들은 마법봉을 빼앗기는데, 마법을 부리는 엉뚱한 상상을 통해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가능성을 꿈꿀 수 있었던 만큼, 이를 빼앗긴 멤버들은 희망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뒤이어 등장하는 장면에서 멤버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여전히 마법봉이 봉인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멤버들에게 마법의 힘이 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우리가 어릴 적 상상하던, 모든 것을 다 이뤄주는 절대적인 힘이 아닐 뿐이다. 젤리를 삼킴으로써 내면의 어두움을 극복하고 한층 성장한 멤버들은 이를 통해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고 자기 자신을 믿어주는 것’, 이가 진짜 마법의 힘임을 시사한다. 아일릿은 진정한 마법 소녀란 불안함, 현실의 벽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것이라고 재정의했으며, 이러한 힘은 누구에게나 내재해 있다고 말한다. 만일 네가 이를 잘 극복하고 성장하고 있다면, 그런 너야말로 진짜 마법소녀라고 아일릿은 전한다.
그리고 마법 소녀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 멤버들은 자신의 세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세계까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브랜드 필름 영상 속 멤버들이 각자의 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Magnetic〉부터 〈Cherish (My Love)〉에 이르기까지 아일릿은 자신의 감정만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Cherish (My Love)〉의 가사 중 일부인 “빛이 나는 이 설렘은 못 참지 협조해줘 you gotta”, “절대 끝까지 지켜! 내 감정” 등에서도 이가 잘 나타난다. 《bomb》의 타이틀곡인 〈빌려온 고양이 (Do the Dance)〉에서도 자신의 감정에 최선을 다하는 당찬 모습은 그대로이지만,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려는 멤버들의 의지 또한 나타난다. 줄곧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아가는 듯한 멤버들이었지만, 사람이 붐비는 도심을 거닐고 대관람차를 타기도 한다. 뮤직비디오 첫 장면으로 멤버 원희는 좋아하는 상대에게 어디를 가는지 질문하고, 상대는 페스티벌을 간다고 대답한다. 필자가 느끼기에 멤버들이 지도를 보며 길을 찾는 것을 보아, 상대의 세계를 경험하고자 그가 있을 만한 곳들을 여정했다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마법 소녀와 같은 힘이 자신의 내면 안에 내재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멤버들은, 이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현실 소녀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났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지금부터 펼쳐질 이야기가 아일릿이 대중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진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니메이션 브금 같은 사랑스러운 음악, 만화 속 주인공들이 입을 법한 키라키라한 의상, 변신 장면을 연상케 하는 포인트 안무, 이 모든 것들이 곧 아일릿을 대표하는 정체성으로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일각에서는 같은 반에 있을 법한 현실 10대를 보여주고자 한 의도와 거리가 먼 비주얼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마법 소녀란 단지 멤버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용기를 불어넣는 존재임을 알게 된 지금, 그 나이대의 순수함을 노래하는 아일릿을 마냥 비현실적이라 치부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무엇이든 될 너의 가능성을 믿고 당차게 살아가라’라는 메시지는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가령 마법 소녀를 히어로라 생각지 않더라도, 아일릿의 음악은 소녀들의 긍정 힘을 느낄 수 있는, 한 번쯤 꺼내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 엉뚱함과 발랄함으로 무장한 멤버들이 앞으로 어떤 마법 같은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 이 글은 아이돌레 웹진 소유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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