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riter. 차이트
아이돌 업계에서 내놓는 결과물들이 전반적으로 상향평준화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문적인 영역에 대한 디테일을 알수록 케이팝 산업의 결과물에 더욱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안무를 하나하나 뜯어보는 것이 의미 있는 경우가 이렇게 의미 있는 것은 아마 케이팝이 상업예술이라서 보는 순기능일 것이다. 전체 그림을 만드는 작은 동작들 하나하나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깊이 뜯어보고 음미하는 재미만큼은 확실하다.
그 중에서도 안무는 주목도가 가장 높은 영역이다. 춤은 커버하는 사람도 정말 많고 특유의 역동성으로 보컬보다 주목도를 확실히 가져갈 수 밖에 없다. 눈길을 끌기 쉽다는 뜻이다. 툴을 복잡하게 익히고 따라해야하는 뮤직비디오보다 구현하기도 쉽다. 준비물이라곤 몸 하나 뿐이다. 춤 공연에서 전해지는 육체적 에너지를 느껴봤다면 그 때만 받는 진한 감동도 춤이 쉽게 잊히지 않는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케이팝에서 인상적인 군무를 남긴 그룹을 말한다면 세븐틴이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HOME;RUN〉에서 복고적인 수트를 빼 입은 채 일사불란한 동선이동과 대형 변화가 가진 화려함에 눈길을 어떻게 뺏기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외에도 무언가를 형상화하는 식의 만화적 연출도 자주 쓴다. 지금부터 말할 〈Fallin’ Flower〉가 대표적이다. 다인원이 시간차를 두고 나무 뿌리부터 줄기까지 꽃이 차례로 만발하는 순간을 묘사하거나,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그려낸다. 브릿지에서 순간 멈춘 반주와 함께 나오는 준의 아카펠라는 단연 이 노래의 백미다. 겹겹이 쌓인 꽃잎이 활짝 열릴 때 중심부에서 아카펠라를 소화하는 모습이란... 극적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런 감정적 낙차를 십분 활용하고 일반적으로 ‘보기 예쁜’ 동작들이 포진한 구성은 대중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단순히 그들의 퍼포먼스를 ‘한 편의 그림이나 영화가 떠오르는 이미지다’라고만 하긴 좀 충분치 않다. 보이그룹 특유의 파워풀한 동작이 구석구석 나오다가도 걸그룹도 울고 갈(?) 수준의 박자 쪼개기와 디테일까지 온 몸 구석구석 알차게 쓴다. 이 정도의 퍼포먼스를 지향하는 보이그룹의 존재는 매우 귀중하다. 예를 들면 그냥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구현할 때도 손을 좌우로만 꺾지 않는다. 좌우로 한 번 흔들었으면 그 다음으로는 앞뒤로도 꺾으며 이미지의 방향 축을 비튼다. 살랑거리는 꽃잎의 옆모습과 앞모습을 보여준다는 느낌이다. 손에 모인 꽃잎을 바닥으로 뿌리는(2절에서는 떨어지는 꽃잎을 움켜쥐는) 손을 표현해내는 안무도 있다. 이런 모든 일들이 후렴 직전의 단 3초 정도만에 지나가 버린다. 인트로에서도 바이올린이 끝나고 디에잇의 보컬이 1절을 열 때 나머지 멤버들이 주먹 쥔 한 손을 들고 있다가 그냥 버리지 않는다. 꽃잎이 차례로 펴지듯 부드럽게 손가락을 순서대로 편 후 바닥에 내려놓는다. 이 때 손가락이 펴지는 박자가 보컬이 뱉는 음절 수[마/이/오/치/루] (한국어 버전은 [(떨)어/지/는/꽃/잎]이다.)에 딱 맞아떨어진다는 점까지 알아챈다면 당신은 진정한 캐럿이다.
이미지 구현에 주는 변주가 신선하다 못해 화려하지만, 기준점이 되는 박자도 시시각각 달라진다. 1절 Verse에서 1, 3번 박자 카운트(혹은 킥 리듬)에 맞추다가도 Pre-chorus 직전 원우, 우지의 메기고 받는 파트 때 나머지 인원이 진행하는 군무 박자가 꽤 변칙적이다. [유라리/_라리]로 엇박 타는 원우의 보컬에 편승했다가 이후 다시 4/4 정박 카운트로 주축을 옮긴다.
더보이즈(THE BOYZ)의 <MAVERICK>은 세븐틴의 퍼포먼스 못지 않은 디테일의 향연이다. 하지만 디테일이 절도 있는 아이솔레이션 위주로 들어갔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이는 질감은 확연히 다르다. 인트로(좌측 사진)에서 센터인 큐 뒤에 뭉친 멤버들이 외부를 향해 방사형으로 각자 시선을 던졌다 내부로 다시 깔끔하게 돌아오는 동작이 더보이즈 식의 디테일이다. 1절 Pre-Chorus 현재 가창 파트에서도 비슷한 연출이 있다. 현재를 제외한 양옆 모두가 손을 얼굴에 대고 고개만 센터 방향을 향해 90도 돌린다.(우측 사진) 이런 식의 신체 사용으로 이루어진 디테일은 아무래도 무빙이 깔끔하고 옹골차다는 인상을 준다.
위 두 그룹이 디테일로 승부했다면 NCT127의 안무는 타이밍나 모양을 맞추는 문제보다 동작 자체의 난도가 높은 것이 포인트다. 앞의 두 그룹보다 높은 자유도를 추구해도 하체에 많은 힘과 감각이 필요한 동작 위주다. 이런 부분에서 안무가와 멤버들 모두가 칭찬받아 마땅하다 생각한다. 인트로를 포함해 내내 곡의 중심을 잡는 〈영웅(英雄); Kick It)〉 속 훅(Hook) 일부( ‘Shimmy Shimmy Shimmy 불이 붙네’ ) 구간은 ‘과라과라(Gwara Gwara)’ 동작이 들어간다.(위 세 사진 모두 해당 동작-혹은 연결한 응용동작에 해당한다.)
보이는 바와 같이 동작 특징 상 무게중심이 한 쪽으로만 실릴 수 밖에 없다. 이 때 다시 상체를 포함한 몸 전체를 앞으로 확 숙이면서 백스텝을 밟아 무게중심을 전방 중앙에 무겁게 던진다. 편중된 무게중심을 활용할 거라는 예상을 가볍게 깬다. 1절 Verse에서 해찬, 정우의 페어 안무로도 잠깐 나온다. 3절에서는 전원이 이 동작을 반절만 진행하다 살짝 슬로우를 걸면서 다른 무빙으로 응용해낸다. 다리와 어깨를 안쪽으로 오므려서 상체를 이완한 느낌으로 바닥에 가까이 온 몸을 축 떨어뜨리는 텍스처(3번째 사진)가 돋보이는 구간이었다.
이 외에도 좀처럼 하체를 가만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난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한 발로만 뛰어 이동하거나, 킥 동작으로 차거나, 양발 뒤꿈치를 모두 들고 진행하는 스텝이 너무도 많다. 이후 쟈니-재현의 짤막한 래핑 뒤 플로어까지 내려가 하체를 베이스 킥 리듬에 맞춰 표현하는 구간도 있다.
콘셉츄얼한 노래이므로 NCT127 노래 중에서도 유달리 난도가 높은 것이 이 하나 뿐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질주(2 Baddies)〉 후렴에서도 잘 보면 양발에 힘의 받침점이 각각 앞꿈치, 뒷꿈치로 다르게 작용하는 크랩 스텝을 쓴다. 〈삐그덕(Walk)〉은 올드스쿨 힙합에 충실한 질감으로는 이미 두 말하면 입 아프고, 〈Lemonade〉는 한 발로 서고 턴 도는 구간이 후렴에 많다. 스텝 기본기가 없으면 제대로 소화하기도 어렵다. 쉴 틈도 주지 않고 빽빽하게 배치된 안무에 그저 이 안무를 소화하는 이들이 경탄스러울 뿐이다. 보통 상체를 쓰는 안무보다 하체를 쓰는 안무가 될 수록 절대적인 난도가 올라가기 마련인데 이를 통해 NCT127이 보이그룹 안에서도 하체 사용을 많이 지향함을 알 수 있다.
X1(엑스원)의 〈FLASH〉는 공연자의 소화력이 아쉬워 많은 걸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서 보이는 ‘대중형 보이그룹’에 기본적으로 소구되는 안무 지향점이 부각되는지라 이를 위주로 이야기를 풀고자 한다. 선적인 어필이 되는 동작 위주로 직관적으로 기억하기 쉬운 모양이나 인상을 남기도록 짠 것은 이들이 워너원의 동성 후배그룹이라는 점에서 연결점이 좀 있어보인다. 실제로 비슷한 텃팅이나 아이솔레이션 위주로 진행하는 동작이 있어 더더욱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느낌이다.
락킹이나 팝핀, 텃팅, 아이솔레이션 등만으로 난해하지 않은 무빙을 만들어 가장 ‘대중적 인상’에 맞는 그림을 그린다. 플래시라이트를 형상화한 포인트 손 안무와, 몸의 박스(box)에 정확하게 맞춘 포징으로 단순하면서도 각진 모양의 대형을 어필한다.
적당한 밀도에 간단한 동작들로 구성해도 눈에 띄는 것은, 웨이브나 롤링을 코어에 지속적으로 약간씩 주면서도 정지된 상태에서 약간의 텍스처차이를 어필하도록 짜인 부분이다. 특히 몸의 웨이브나 롤링으로 입체감을 살짝씩 주는 방식은 안무 담당팀인 비비트리핀(BB Trippin’)이 자주 안무를 맡던 에이티즈에게서도 종종 보이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1절 Verse 우석 가창 파트에서, 센터에 선 그의 뒤로 후열 5명이 좌우로 갈라져 각기 다른 방식으로 웨이브를 주는 부분이 그렇다. 5명을 좌우로 양분해 각각 상체(김요한/한승우/강민희), 하체(손동표/차준호)로 웨이브를 주고 무게중심을 다르게 흘러 넘기는 점이 신선한 포인트다.
에이티즈보다 훨씬 다인원이고 슬림한 체형이 많다는 그룹 특징과 어우러지게끔 평소보다 몸을 수직, 수평 축으로 쭉쭉 펼치는 동작이 많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동작들을 여유 있게 넣고 박자를 늘려서 화면을 굳이 꽉꽉 채우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위 조승연의 랩 파트처럼 민망할 만큼 박자가 노는 구석도 있는 것 같다. 살릴 만한 플로우나 라임, 사운드가 있었음에도 대부분 특기할 만한 동작 없이 제스처링과 애티튜드로만 처리하는 게 전부라 조금 놀라기는 했다. 어쨌든 놀리는 박자가 타 안무팀 대비 상대적으로 많은 비비트리핀의 특징은, 엑스원이 향후 활동을 지속했다면 어떤 식으로 결과물이 나왔을지 기대감을 좀 갖게도 한다. 사실 원래 안무가 좀 더 복잡한 버전으로 있었고 이를 수정해서 나온 것이 지금의 안무라고 들은 바가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수정 이전을 더 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비비트리핀 팀의 드문 다인원 군무 제작이라는 특징과 합쳐져 색다른 안무를 더 많이 낳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쉽다.
이 다음에는 (어쩌면 보이그룹보다 더 알려져 있을지 모를)걸그룹의 신선한 육체적 소구점과 대형이 보이는 안무를 소개해보는 것으로 돌아오려 한다. 남성과 여성의 육체적인 미가 타고나기를 다르니 이를 표현하는 방식 역시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걸그룹(아이돌)이라는 형태로 코레오그래피가 드러날 때에는 보이그룹과는 어떤 부분에서 다르게 승부처를 가져가려 하는지를 중점으로 읽는 것도 감상 포인트라고 미리 귀띔한다.
* 이 글은 아이돌레 웹진 소유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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