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직장인으로 15년 이상을 살면서 나는 늘 상처받는 것에 예민했다. 점점 시니어가 될 수록 상처받았다는 말 자체가 남사스러워 매번 회피했지만 결국 맞는 것 같다. 다만 때마침 주어진 경력의 공백기에 그동안 미뤄 몰아둔 생각들을 하염없이 하고 있노라니, 조금 부끄럽지만 이런 상처의 이력들을 제대로 직면하고 정리해 앞으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1. 거절당했을 때 상처받지 않을 용기: 거절당한 것은 '나의 제안'이지 '나 자신'이 아니다
패기만장한 주니어에서 일은 잘하지만 싸가지없고(ㅠㅠ) 날 서있던 중니어 땐 나의 제안이 조직에서 거절당하는 것에 굉장히 민감했다. 그땐 내가 해당 영역의 전문가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200명 조직에서 큰 돈 굴리며 전략 수립을 위한 리서치 업무를 나 혼자 하고, 사장단 경영진에게 직접 보고를 하고, 주변에서 나를 전문가로 인정해 주는 것 같았던 시절, 내 제안이 거절당하거나 보고에서 깨지면 상처받았다. 일=나 자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 대부분 '나 자신을 거절하는' 것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경력이 좀 더 단단해지고 아는 것이 많아지면서 나의 생각과 판단에 자신감을 갖게 되자 대부분 해소되었다. 자신이 있는 만큼 업무상 나의 제안을 좀 더 아래, 옆, 위의 사람들에게 핵심만 전달할 수 있게 됐고 피칭 성공율도 높아졌다. 팀장이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내 팀원들에게 언제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빠르게 바뀌는 업무 트렌드에서 나와 우리 팀이 놓치는 것이 없도록, 흘리는 아이디어가 없도록, 그리고 모두가 각자의 업무에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얼마나 합리적인가'에 기반해 팀원이 제안한 것을 나는 받아들이기도 하고 받아들이지 않기도 했지만 그건 그 제안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지 그 제안을 한 팀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 또한, 나의 제안이 업무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지 나 자체가 거절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임원이 되자 사내보단 파트너사나 고객사에게 거절당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지만 나는 생각보다 객관적으로 사고하고 쿨할(?) 수 있었다)
2. 나의 바보같음에 상처받지 않을 용기: 바보같음이 나의 가치가 될 수 있다
15년 간 꾸준히 들은 '자기 회사도 아닌데 너무 열심히 한다'는 나에 대한 업무 평가에 이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8년차 쯤 되었을 때, 새 보스로 맞게 된 외국인 임원은 부임하자마자 기존에 자리잡은 많은 시스템을 없애거나 개편했다. 강력한 비용 절감 조치와 더불어 몇 년 간 본사에서 겨우 전세계 지법인에 정착시킨 KPI 시스템과 지수를 폐지하고 나에게 새로운 KPI 개발 및 지법인 적용을 지시했다. 새로 만든 리서치 methodology와 KPI 시스템을 가지고 해외 출장을 갔는데, 현지 법인과의 회의와 소통이 참 힘들었다. 어떻게든 설득해 시범 적용까지 시키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녹초가 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지시는 조직의 성격 변경과 리더십 교체에 따른 새로운 거버넌스 적용이 주된 목적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의 나는 바보같아서 그저 열심히 했다. 애초에 가시밭길 프로젝트였는데, 나는 받은 지시를 어떻게든 성공시키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지 않았던 다른 팀원들이 오히려 스마트했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스타트업들에서 신규 업무를 바닥부터 세팅할 때도, 매출을 내는 과정이 외로웠을 때도 '좀 힘들지만 어떻게든 되게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렇게 돌밭을 일구고 화전을 하고 씨앗을 뿌렸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밭 일구기에 지쳐 떠나고 나중에 뒤를 돌아보면 씁쓸함만 남았다. 내가 영악하지 못해서 스스로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았다.
얼마 전, 한 기업의 대표인 지인을 만나 말했다. "저는 앞으로 제 리소스를 선택과 집중해서 쓰려고요", 그러자 그가 정색하며 "네가 누구보다 열심히 해서 어떻게든 성과를 만들어 오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 사람에게 쓰인 것이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라"고 했다. 스스로를 몰아가던 시점에 들은 말이라 울림이 있었는데, 관점을 바꿔 생각해 보니 내가 바보같았기 때문에 나는 주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 더 다양한 경력을 쌓아 지금의 커리어를 구축할 수 있었다. 나같은(?) 사람들도 주변에 많이 남았다.
인생에서 가장 존경하는 우리 부장님(지금은 상무님이다)에게, "부사장님께서 제게 기회를 주셔서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모든 지법인 대상으로 발표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을 때 부장님은 한동안 날 신기하게 쳐다보시더니 "그건 일을 시킨 건데 기회를 주셨다고 표현하는 애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다른 '나'를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나의 바보같음은 시도하길 두려워하지 않았던 여러 경험과 성공과 실패와 상처와 자기부정을 거쳐, 성숙함과 함께 나와 화해할 준비를 시작한 것 같다.
3. 나의 미숙함에 상처받지 않을 용기: 걔는 걔고 나는 나다
삼국지 안에서 내 롤모델은 언제나 조조였다. 목적 중심 사고에 리더십도 뛰어나고 전략과 실행까지 지휘하면서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다소 불합리하지만(?) 냉정하기까지. 대학생 때 특별히 공부했던 일본사에선 오다 노부나가에 열광했다. 흑백요리사2에선 요리괴물을 응원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단 한 번도 조조나 오다 노부나가일 수 없었다. 성격이 섬세하고 예민하기 때문이다. 내가 책임지는 팀원들의 마음과 상황을 늘 신경썼고, 내 딴에 배려했다. 다만 그것이 내가 기대한 방향대로 돌아오지 않을 때, 혹은 기대하지 않은 상황을 야기할 때 상처받고 서운했다.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만 상처받기 위해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라 열심히 몰아세웠다. 해답은 없었고 나는 계속 슬펐다.
전 직장을 퇴사하고 만난 Y님에게 "제 리더십은 실패한 것 같아요" 라는 말로 운을 떼고 여러 상황을 털어놓자, Y님이 말했다. "R님의 인간적인 부분은 리더십에서 강점으로 보이고, 다만 조직원들과 프로페셔널하게 업무 대화를 할 수 있는 HR 시스템이 부재했기 때문에 R님이 팀원과의 소통 과정에서 감정 소모를 과하게 한 것 같다"는 피드백을 주셨다. 일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적정한 목표와 평가가 설정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업무 성과에 대한 기대치가 상호 다르고 그 과정에서 서운함만 남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피드백을 신중하게 곱씹었고 귀중하게 받아들였다. 제도와 시스템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게 됐고, 다음 커리어에서 리더십에 적용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얻었다. 물론, 감정을 어떻게 더 능숙하게 컨트롤해야 하는지 조금 더 알게 된 것은 덤이다. 조조와 현실의 나 간의 갭에서 속상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가능하면 내가 나를 조금 더 이해해 주고 아껴주면 좋겠다는 것도. (그리고 결국엔 최강록에서 울었다ㅠ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오랜만에 꺼내 본 코난 오브라이언의 다트머스 대학교 졸업 축사 영상에서, 평소와는 다른 말이 마음에 남는 걸 보니 내가 점점 더 성숙해지고 있는 게 맞나보다. 회복의 시기다.
In 2000, I told graduates to not be afraid to fail, and I still believe that. But today I tell you that whether you fear it or not, disappointment will come. The beauty is that through disappoinment you can gain clarity, and with clarity comes conviction and true origin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