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되지 않는 전략은 빛을 잃을 뿐이다
'전략(Strategy)'라는 단어만큼 멋져보이고 동시에 만만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링크드인에 전략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전략 수립, 전략적 사고, 전략적 실행, 그리고 그 외에도 수많은 '전략적...'. 나 또한 전략의 한 전문가로 앞으로 스스로를 키워나가고 싶은 사람으로서, 전략을 둘러싼 단상을 풀어내 보고자 한다.
1. 전략이란?
난 한땐 전략이란 단어를 남발하는 것을 경계했다. 전략은 정교하고 어려운 것인데, 너무 남발하니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또 한 땐 전략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고 스스로 납득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전략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를 총칭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전을 찾아봤으면 아주 빠르게 해결되었을 고민인데!) 만약 이번 달 나에게 주어진 생활비 예산이 100만원일 경우, 일단 쓰면서 모자라면 굶자 보다는 사전에 '쇼핑은 얼마, 식대는 얼마, 교통비는 얼마' 이렇게 포켓을 나눠 놓고 더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쪽이 전략에 해당할 것이다.
삼국지연의에는(정확히는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전략삼국지에는), 촉의 유장을 정벌하기 위해 떠나는 유비와 제갈량이 관우에게 형주를 맡기면서 "혹시 북에서 조조가, 동에서 손권이 동시에 쳐들어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자 관우가 "그 때는 목숨을 다 해 싸울 것"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갈량은 그 대답에 대해 "장군쯤 되는 사람이 목숨을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면 안된다"라고 말하며, "북으로는 조조를 치고 동으로는 손권과 화해한다"는 전략을 남겨주고 촉으로 떠난다. 이 장면은 내 머릿속에 전략 없음과 전략 있음의 차이를 잘 설명해주는 하나의 장면으로 남아 있다.
2. 전략적 사고
부모님이나 직장 동료들로부터 전략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지만 정작 나의 어떤 부분을 보고 그렇게 평가하는지 스스론 이해할 수 없던 시기가 있었다. 직장에서 하는 수많은 일 중 전체 판을 펼쳐놓고 들여다보면서 문제를 찾고 돌파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가장 재미를 느끼는 것을 인지한 이후로, 나는 내 지난 15년의 경력과 경험을 모두 동원해 실질적인 비즈니스 전략을 짜고 실행하는 Go-to-market을 메인 커리어로 삼기로 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써보고자 하지만, Go-to-market은 제품을 시장에서 판매하기 위해 세일즈, 마케팅 전술이 모두 포함된 종합 전략으로써 내 전체 경험과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겠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전자 기업에서 2년차가 되었을 무렵, 상무님께서 매출 확대를 위한 신시장 개척을 목표로 "일본 시장에 SIM이 탑재되지 않은 태블릿을 판매할 전략"을 짜 오라고 지시하셨을 때 나는 너무 신이 나서 아무도 안 시켰는데 혼자 설 연휴를 반납하며 ppt를 만들었다. 요즘은 자급제가 시장에 안착했지만, 전 세계 공통으로 휴대폰은 통신사에 납품하는 B2B 세일즈의 형태를 띄며 통신사가 보유한 유통망에 의존해 고객에게 판매된다. 당시는 스마트폰이 막 성장하는 시기라 인터넷 상의 정보가 지금같지 않았고, CDJ(Consumer Decision Journey) 상 스마트폰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주로 구매하는 형태였다. 당시 일본 시장은 통신사 유통망 외 전혀 보유한 기타 가전 판매 채널이 없었는데, 나는 당시 데이터를 들여다 보고 가전 양판 채널(빅카메라, 요도바시카메라 같은)을 신규 판로로 개척해 소량씩 wireless 태블릿을 판매하자는 전략서를 만들었다. 당시 여러 상황 때문에 결국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상무님의 요놈봐라 하는 눈빛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업 전략이라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인터넷에 쉬이 공개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은데, S전자와 Y사에서의 글로벌 미디어 전략, B사에서의 마케팅, 미디어, 매출 및 딜리버리 전략 등 지금까지 짜 본 전략들을 머릿 속에 하나씩 짚어보다 보니, 전략을 세운다는 것은 멀리 있거나 사업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사실은 우리 모두의 일상에 아주 가깝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취업 시 레쥬메에 특이점을 추가하기 위해 2009년, 일본 교환학생 시 일본 현지에서만 칠 수 있는 각종 언어 관련 자격증을 사전에 조사해 충실히 이행했었다. 그리고 모두 내 이력서 안에 차곡차곡 쌓였고 공채에 한 번에 합격했다. 연고 없는 지방에서 자영업을 하겠다는 친동생에게 상권 분석은 했는지, 월 매출을 얼마로 계산하는지를 물어보고 채근한 지난주의 나는 아마 친동생에게 전략적 사고를 기대했었나보다.
3. 전략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행'이다
이젠 전략이 붙지 않는 사업 영역은 없다. 사업 전략, 제품 전략, 영업 전략, 마케팅 전략, 홍보 전략, 메시지 전략, 인재채용 전략... 모든 사업 영역에 전략적 사고와 전략 수립이 요구되는 시대에, 전략을 세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전략의 실행이다.
매우 당연한 이야기지만 진실이다. 머리 좋은 전문가들이 훌륭한 전략을 짜고 덱으로 정리해도, 실행되지 않는 전략은 빛을 상실한다. Strategy를 요구하는 많은 잡 포지션은 결국 실행(operation)까지 연계해 나갈 수 있는 역량 혹은 경험을 필수로 한다. 실행은 전략을 짜 내는 것과는 또 다른 것으로써, 실질적인 협상 및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멀티태스킹이 조금 더 필요한 역량이 된다. S전자 글로벌 마케팅 팀에서는 새로 론칭하는 스마트폰의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소비자 경험과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주는 오프라인 매장에 새 스마트폰의 여러 기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체험키트를 제작하자는 전략을 세웠고, 해당 전략 하 운영팀은 키트를 생산하고 각종 오프라인 매장에 설치했으며, 주기적으로 점검하면서 KPI를 체크하고 필드의 피드백을 본사에 전달해 다음 전략에 반영했다.
재직했던 IT 솔루션 회사에서 내가 수립했었던 여러 시장 전략은 결국 실행되지 못했다. 최종 의사결정자는 전략을 합의시키고 모든 구성원이 이해해 해당 방향으로 실제 실행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깃발을 꽂아주어야 했을 것이다. 시간과의 싸움이 너무나도 중요한 스타트업이었지만 전략을 제시한 지 6개월 동안 최종 의사결정자는 정하고 정리해 주지 못했고, 결국 그 전략은 어딘가의 폴더 안에 갇혔다. 나는 단언코 말할 수 있다, 실행되지 않는 전략은 빛을 상실한다고. 최종 의사결정자도 사람이라 (오너일수록 더욱) 결정을 망설이고 두려움을 품을 수 있지만, 최종 의사결정자는 결국 그래선 안 된다. 언젠가 내가 최종 의사결정자가 되는 날 나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결정의 두려움보다 조금이라도 더 정답인 확률이 높은 결정을 할 수 있는 역량을 보강하는 것을 과제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