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쓸 SSSSL Aug 14. 2020

“계속해서 하기보다는 안 하려는 시도가 필요하죠”

제로웨이스트 활동가를 만나다 ② / <지구커리> 민송



‘무포장가게 쓸’은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카페 ‘트랜스-’에 샵인샵으로 입점해 있습니다. 카페 트랜스는 이름과 잘 어울리게 무포장가게 쓸 이외에도 ‘지구커리’와 ‘릭하템페’가 화요일, 목요일에 팝업매장 형태로 운영하고 있지요. 지구커리와 릭하템페 역시 제로웨이스트를 고민하며 자신의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태도와 실천을 독자들과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 지구커리

가장 먼저 소개할 <지구커리>를 운영하는 민송은 트랜스에서 매주 화요일, 남인도식 비건 커리를 제공하는 요리사입니다. 냅킨 대신 삶아 빤 소창 손수건을 내주거나, 가능한 식재료는 가까운 거리에서 온 주변 도시농부들의 농작물을 우선적으로 이용하려 애쓰고 있어요. 어떤 계기로 활동에 제로웨이스트를 더하게 됐는지, 민송의 활동을 지켜보며 늘 궁금해 왔던 질문 보따리를 풀어봤습니다. 


민송은 내내 ‘완벽하지 않은 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너무 죄책감을 느끼거나 화를 내서 지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며 자주 무력감에 빠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힘이 나는 이야기를 해준 민송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드릴게요. 





남인도식 비건 커리를 만날 수 있는 팝업식당, 지구커리


© 지구커리
매주 화요일, <지구커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웃음) 이렇게 숍인숍으로 운영하는 것이 방침인가요? 운영방식이 궁금해요.

지구커리는 비정기적으로 팝업을 하고 있고, 누군가가 초대하거나, 빈 공간이있을 때 음식을 만들거나 워크숍을 해요.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보틀팩토리’에서 운영하는 ‘채우장’이라는 장터에 한 달에 한 번   나가고, ‘무포장가게 쓸’이 숍인숍으로 입점한 카페 트랜스에서 매주 화요일 12시부터 정기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보통 인도음식점에서 먹는 커리랑 느낌이 달라요. 인도식 스프 같달까. 확실히 본인만의 레시피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 레시피일까 궁금해요.

인도요리를 시작하고 나서 인도를 처음 다녀왔어요. 요즘은 그 첫 인도여행에서 먹고 인상 깊었던 요리들을 하고 있어요. 가서 마주한 인도음식은 대단했고, 또 방대했어요. 인도커리를 만드는 과정은 대게 비슷한데, 제가 스프느낌을 좋아해서 자꾸 스프커리로 만들게 돼요. 큰 냄비에 뭉근히 끓이며 향신료와 재료와 소스가 어우러지는 걸 좋아하거든요.


지구커리를 비정기적, 팝업으로 진행하는 이유가 있나요?
© 지구커리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서울은 임대료가 너무 높기 때문이에요. 그 임대료를 감당하려면 너무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저는 그렇게 일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내 삶에서 임대료를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게 커요. (웃음) 임대료가 빠진 금액으로 손님들에게 제가 좋아하는 식재료로 요리한 음식을 저렴하게 제공하고 싶어요. 그리고 누군가의 빈공간을 채우는 의미도 좋아서 팝업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지구커리에서는 어떤 식재료를 주로 사용하나요.

가능하면 내가 직접 살 수 있는 것. 얼굴 아는 농부들 식재료 구하는 게 우선이에요. 또, 마르쉐 망원시장 생협을 이용하고, 그곳에서 나오는 제철 재료들을 사용하려 해요. 망원시장에서는 어떤 제품을 비닐 없이 살 수 있을지 살펴보면서 가능한 무포장으로 구입할 수 있는 걸 구입해요. 두부나 콩 같이 GMO가 의심스러운 식재료는 주로 생협에서 사요. 사실 멋대로예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기 때문에 제로웨이스트가 안 될 때도 있어요. 그저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구커리를 운영하며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내 한 몸 책임지며 살아가는 형태예요. 미래를 위해 저축할 수는 없어서 서울에서 불안정하게 살고 있어요. (웃음)


요즘 지구커리를 운영하며 드는 고민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공간에 대한 고민이 제일 큰 것 같아요. 2년 정도 팝업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자꾸 자가용을 타고 짐을 이고 지고 달팽이처럼 지내게 되니 어딘가에서 안정적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손님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팝업 정보를 보고 오는 게 아니라, 정기적인 오픈 약속이 된 공간에 편안한 마음으로 방문하면 좋겠다는 생각하죠. 동네식당처럼요. 또 공간 한쪽에 향신료와 농산물도 두고 싶고요. 
그러면서 한편으로 크게 드는 고민은 무언가를 계속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무슨 의미로요?

코로나와 기후재난을 겪으면서요. 맨 처음에 지구커리를 하며 다른 곳과 인터뷰 하면서 “30그릇 이상 만들지 않겠다” 했는데 대량생산 대량소비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이 있거든요. 돈을 버는 활동은 무엇이 되었든 소모해야 하는데, 그게 지구 친화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좀 적당히 사는 것도 친환경 같아요. 또 인도음식은 향신료를 외국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걸 줄여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더 잘하고 싶고, 많이 하고 싶고, 더 많이 팔고 싶은 마음이 있는 한편에 이번 장마를 마주하며 작게 하고 싶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어요.



농사는 로망, 좋은 식재료는 취향


우리 재작년에 경기도 고양시 찬우물농장에서 이웃이기도 했잖아요. 요즘에도 텃밭을 가꾸고 있나요?

요즘 텃밭은 폭망이에요. 나는 농사는 아닌 것 같아요. (웃음) 그렇지만 농사는 항상 멋있고 잘하고 싶은 분야예요. 늘 하고 싶으니까 밭이 내 집 앞에 있었으면 좋겠고, 매년 잘하지 못하는데도 아쉬우니까 매년 하게 돼요. 아마 내년에도 하고 있지 않을까요?


도시농부들과 파머스마켓에서 협업하기도 하죠. 어떤 마켓에 나가봤고, 마켓마다 어떤 특징이 있나요?

아, 나는 장터 알바 전문이죠. (웃음) 수카라에서도 하고 마르쉐에서도 하고.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없으니 아르바이트의 형태이고, 요리를 좋아해서 농산물의 쓰임을 잘 알고 있으니 저랑 잘 맞는 일이에요. 주로 찬우물농장과 협업해서 작물을 판매하고, 로푸드팜과도 협업해요.

저는 주로 마르쉐와 수카라를 나가는데 둘이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요. 둘 다 너무 안정된 장터인데 규모의 차이인 것 같아요. 마르쉐는 판매자부터 전국에서 오고 있고, 수카라는 한두 분의 농부가 오고, 서울 북쪽 서촌, 연희동 이런 가까운 곳에서 활동하는 요리사들이 그 주에 쓸 것 장 보러 많이 오시더라고요.
마르쉐가 처음 생겼을 때를 생각하면, 우리나라에도 이런 농부시장이 생겨서 감동적이었어요. 조금 아쉬운 건 가격이 좀 비싸다는 건데, 비싸도 농부의 삶을 지지하는 방식이고 앞으로도 그들이 농사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그 가격을 지불해요. 사실 이건 제 말은 아니고. 수카라 김수향 대표님 말을 빌리면 “나는 다양하고 건강한 농산물을 먹고 싶고, 그러려면 좋은 농부가 많아져야 하고, 그 농부님들의 판로를 위해 이런 장터를 기획했다.”고요.
그리고 그런 제철 재료를 써서 요리했을 때 사람들이 훨씬 신기하고 신선하다고 느껴요. 저도 사계절 내내 마트에서 뻔한 재료를 사왔어요. 그런데 여기 오면 토종이나 못 보던 채소들이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소개하는 재미도 커요.


무포장가게 쓸에서도 농산물을 사 갔잖아요. 어땠는지 궁금해요.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요.

쌀이 네 종류여서 정말 좋았어요. 현미, 오분도미, 찰현미... 어디 가면 그 정도로 다양하게 무포장으로 쌀을 살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 있지는 않은데 말이죠. 게다가 네 가지 가격이 동일해서 한 번에 섞어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좋았어요.
그래서 조금 더 다양한 식재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무포장으로 사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쓰레기를 사야 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테면 나는 좋은 두부를 쓰레기 없이 사고 싶거든요. 매주 화요일에 무포장으로 두부를 살 수 있다거나, 간장이나 된장 같은 것도 다양하게 생겼으면 좋겠어요. 특히 간장 된장은 집집마다 맛이 다르잖아요. 조금씩 소분해서 살 수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완벽한 제로웨이스터는 없다


망원시장에서도 활동한 흔적들(사진)을 본 적 있는데 망원시장에서는 언제부터 어떤 활동을 해왔어요?

2018년 어느 날 밤에 너무 외로워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쓰레기를 검색했는데 ‘쓰레기 없는 세상을 꿈꾸는 방’이라는 오픈채팅방이 나왔고 그때 알맹이 망원시장 활동을 시작하며 함께할 사람을 모집하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연히 동네에 살고 있었고 그때부터 참여했어요.


언제부터 친환경적인 생활방식을 고민하게 됐나요? 계기가 궁금해요.
지구커리를 운영하는 민송 © 지구커리

2012년에 아는 운동권 언니가 “민송아 책을 한번 읽어보자” 하면서 <가슴 뛰는 삶>이라는 자기계발서를 주더라고요. “너는 뭐에 가슴이 뛰냐. 가슴 뛰는 삶을 살아보자” 면서요. (웃음) 그게 뭘까 고민했더니 저는 동물권에 가슴이 뛰더라고요. 그래서 환경단체에 지원했는데 떨어졌어요.

이후에 서울 지역 8곳의 지역아동센터를 다니며 생태교사로 1년 동안 일했죠. 그러다가 마음이 맞는 센터에서 초중고 사회복지사로 4년간 일했어요. 생태교육은 삶에서 실천해야 하는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살게 됐죠.



예전에 휴지를 잘 안 쓴다는 이야기를 했죠. 많은 제로웨이스터들이 못 끊는 게 바로 티슈일 텐데 어떤 팁이 있나요?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소창재질의 손수건은 삶아서 제공해요. © 지구커리

휴지뿐 아니라 대부분의 제로웨이스트는 개인의 노동이 많이 드는 데, 걸레나 손수건을 쓰고 늘 그걸 빨아 쓰는 것 말고 별다른 팁은 없어요. (웃음) 화장실에서 소변은 소창을 쓰는데 손 씻을 때 바로 빨아서 말리면 편해요. 지구커리를 운영하면서는 손님에게 손수건을 수저 젓가락과 함께 냅킨 대신 드려요. 사실 요즘 꾸준히 못하는데 다시 해야겠어요. (웃음)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것에 대해서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공유 텀블러도 비위생적이라 생각하던데, 손수건도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개의치 않지만 의외로 많이 들은 이야기예요.


평소에도 용기를 갖고 다니며 김밥 등 음식을 포장해오는 모습도 많이 포착한 적 있어요. 귀찮지는 않나요? 용기를 들고 다니는 생활이 귀찮지 않으려면 어떤 태도나 팁이 있어야 할까요?
민송이 늘 챙기는 텀블러와 삼베로 만든 마스크

챙겨 다닐 것이 많으니까 짐이 무겁잖아요. 그래서 가능하면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걸 찾고 있어요. 일상이 되어야 하니까 현관 앞에 두고 늘 챙기고요. 아, 나 요즘 밀랍랩 잘 들고 다녀요. (아, 난 밀랍랩이 정말 어려워요.) 아쉽다, 밀랍랩으로 음식을 싸면 용기를 하나 줄일 수 있는데 말이죠. 그럼 손수건은 어때요? 위생에 대한 기준이 높으면 손수건은 빨아 쓰거나 삶을 수도 있으니까 덜 찝찝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본인이 사랑하는 물건을 만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텀블러가 너무 많더라도 좋아하는 디자인 만나면 사게 되잖아요. 저는 매일 갖고 다니는 이 텀블러를 너무 좋아해요. 그리고 나무도시락통도 늘 들고 다니는데, 그건 어딜 가져가도 예쁘단 말을 들으니까 너무 좋아서 챙기게 되죠.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구질구질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는 순간이 와요. ‘구질구질해도 괜찮다’ 까지 오는 데 시간도 걸리고요. (웃음) 아무도 텀블러 안 낼 때 텀블러 꺼내도 되고, 용기 내도 되고요.


옷도 중고를 많이 찾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밖에도 일상에서 친환경을 실천하는 게 무엇이 있을까요?

자전거 타기? 그리고 안 사는 게 친환경이죠. (웃음) 아, 그렇다고 무소유를 주장하는 건 아니에요. 대량생산을 반대하거든요. ‘무포장가게 쓸’이 인상적인 건 개인 생산자, 소상공인들의 물건을 많이 가져다 놓으려고 고민한다는 거예요. 저는 소규모 생산자가 많아지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친환경 실천이나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이 대단히 어렵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위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나요?

쓰레기 쌓이는 시간이 동네마다 다를 텐데 쓰레기가 쌓여있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어요. 쓰레기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건 어느 날 골목에 쌓인 쓰레기가 눈에 들어온 거죠. 밤에 무지막지하게 쌓여있고, 아침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이게 지구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어딘가로 가는 거잖아요. 그리고 누군가는 이 밤에 쓰레기를 치우는 삶을 살게 되고요. 쓰레기를 마주하고 보고 내가 무슨 쓰레기를 내보내는지 관찰하게 알게 되면 줄이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이 쓰레기에 대해 더 많이 보고 애정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쓰레기를 궁금해하면서 조금 더 불편한 삶을 가야 해요. 앞으로의 세상은 분명 더 불편해질 테니까. 우리는 미리 불편하게 얼리어답터의 삶을 사는 거죠. (웃음) 


‘구질구질해도 괜찮다’는 말이 계속 떠올라요. 우리가 하는 활동이 그만큼 타인과의 관계를 피로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요.

분명 괴롭겠지만 너무 슬퍼하거나 너무 화내지 않으면 좋겠어요. 특히 가까운 사람들, 가족이랑도 싸우고 같이 사는 사람들과도 싸우게 되는데, 그러니 마음 맞는 환경 동지들이 곁에 있어야 해요. 랜선으로 이어져도 좋고요. 그러면 좀 웃게 되어요. 구질구질하고 유난 떠는 걸 함께하다 보면 구질구질함이 즐거워지더라고요.


또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며 살다 보면 보면 많은 것에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일회용품 쓰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고, 또 어쩔 땐 내가 하는 제로웨이스트는 사람들을 기만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내가 향신료를 무포장으로 팔지만 내가 대신 비닐을 버려주고 있거든요. 그럴 때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와요. 아무튼, 과도한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엄한 사람들에게 화내지 말아야죠. (웃음) 
사실 내가 배출하는 쓰레기들을 보고 있자면, “나는 제로웨이스터다”라고는 말할 수 없어요. 부끄럽거든요. 저는 쓰레기 없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네요. 




© 매거진 <쓸> | 공식 인스타그램
유펑 magazine.ssssl@gmail.com



매거진의 이전글 “환경 문제에 있어서는 ‘빨리빨리’를 외치고 싶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