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1 - 여성 공연인 릴레이 인터뷰
지난 11월, 대학로의 어느 작은 극장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의 짧지만 귀중한 생애를 노래하며 함께 기억하고자 했던 작품이 있었습니다. 바로 음악극 <태일>입니다. 태일의 일기와 수기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그의 생각과 감정과 경험을 그려낸 이 작품에는 ‘태일’ 역 외에도 ‘태일 외 목소리’를 맡는 배우가 있습니다. 태일 어머니, 아버지, 동생 순옥이, 학교 부반장 예옥이, 우산을 사려 했던 도도한 여자, 풀빵 먹는 시다, 선배 언니, 신문기사를 함께 읽는 여공, 동료 김개남, 태일이 연정을 품었던 금희씨, 근로감독관, 업주,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우 본인과 내레이션까지 정말 많은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데요, 이번 천공의 성 프로덕션에 ‘태일 외 목소리’로 합류한 배우 한보라를 만났습니다. 공연 인생이 <태일> 전과 후로 나뉠 것 같다고 말한 그녀. 작품과의 첫 만남부터 마치고 난 지금까지 그녀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이번 인터뷰에는 한보라 배우 외에 또 다른 반가운 손님이 있었는데요! 바로 한보라 배우의 반려견 ‘팡이’였습니다. 일상 속 크고 작은 꿈과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보니 남편과 팡이에 대한 사랑이 듬뿍 묻어났습니다. 올해도 매일매일 로또 당첨된 듯이 즐거움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Q. 한때 공연을 그만둘 생각을 하셨었다고
작년에 마지막 공연을 하면서, ‘이 작품이 끝나고 나면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집안일도 하고 학원도 다니면서 새로운 일을 찾아보자!’ 생각했죠.
여배우들은 아무래도 남자 배우들보다는 일이 적다 보니 작품을 쉬는 기간도 생기고 어떻게 보면 참 불안정한 직업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계속하는 이유는 ‘행복해서’거든요. 저는 공연을 하는 이유의 7-80%가 음악이었는데 넘버도 작품도 좋고 함께하는 동료들도 너무 좋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저 스스로가 공연을 하면서 재미를 못 느꼈어요. 연습 때도 그랬고,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도 관객 호응이 너무 좋은 날조차 벅찬 감정이 잘 안 들었어요. 정말 저에겐 신기하기도 하고 힘든 시간이었죠. 원래 같았다면 공연할 때 제 회차 날이 되면 전날에 잠들면서 ‘와 내일 공연이다! 빨리 극장 가고 싶다!! (신남)’ 이랬거든요. 그랬던 저였기 때문에 이런 생각으로는 공연을 계속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공연을 그만두는 게 좋겠다 생각했어요.
Q. 무대를 쉬는 동안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원래 자존감이 높은 편인데 그때는 자존감이 진짜 많이 떨어졌던 시기였어요. 내 성격이면 ‘그래!! 뭘 해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하려고 하니까… 나이 제한도 있었고요, 32세 미만만 찾더라고요. 엑셀 가능자, 경력자 등등… 내가 정말 할 줄 아는 게 없구나 싶었죠. 매일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 들어가서 뭐 할지 찾아보면서 영어도 배우러 다니고, 커피를 좋아하니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볼까 고민도 많이 했어요.
대부분 이런 이야기의 끝은 ‘이것저것 해봤는데 역시 공연이 가장 행복하더라고요’일 텐데 사실 저는 진심으로 다 즐겁더라고요.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옷 판매도 해봤고요, 뒷문으로 백화점 직원 구역도 들어가 보고요. 카페 알바도 했었죠. 물론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 너무 재밌고 좋았어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제 꿈 중에 하나가 카페를 운영하는 거였거든요. 남산 아래 카페에서 아침에 매장 오픈해서 음악 틀고 커피 한 잔 내려마시며 하루를 시작하고, 단골손님들과 친해지기도 하고 제 가게인 양 엄청 즐거웠어요. ‘나중에 언젠가 내 카페를 차려서 운영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했죠. 근데 돈이 없네요. (웃음) 이렇게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도 하고 앞으로의 일들을 고민하고 있을 때 <태일> 작품 제의가 있었어요.
Q. 2018년 <태일>과의 만남에 대하여
공연을 접겠다고 결심하고 마음을 굳히고 있었을 시기였던 터라 그 시기에는 뭘 하자고 해도 욕심이 안 나더라고요. 제가 대극장의 꿈이 예전부터 있거든요? (웃음) 근데 크고 화려한 대극장 작품이 들어왔어도 할까 말까였는데 (박)소영 연출님이 <태일>을 함께 하자는 거예요.
‘천공의 성’에서 초연했을 때 <태일>을 봤었죠. 너무 좋았어요. 끝나고 분장실에서 (김)국희를 만나서 ‘와 너 아니면 누가 이걸 할 수 있겠어’ 이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작품이 좋은 건 말해 뭐 해요, 그런데 공연이 너무 힘들잖아요. 정서적으로도 그렇고 다양한 역할들을 소화해내야 하니까요. 제가 서울 토박이인데 사투리도 많고, 그런 다양한 역을 해본 적도 없어서 처음에는 못할 것 같다고,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집에 와서 신랑에게 얘기했어요. ‘내가 하기엔 벅찬 역할인 것 같다, 자신이 없다…’ 아무래도 같은 직업이고 좋은 조언을 잘 해주거든요. 제 이야기를 듣더니 ‘네가 그런 생각이 드는 작품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맞다. 특히나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인데 그런 마음이면 안 되고 더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하기 때문에, 망설여지는 생각이 든다면 하지 말아라. 하! 지! 만! 만약 네가 이 작품을 복귀작으로 하게 된다면 아마 최고의 선택이 될 거야,’라고 말하더라고요. ‘네가 그렇게 자신이 없으면 하지 마’라는 얘기를 듣고 나니 사람 심리가 오기가 좀 생기더라고요. (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소영 연출님을 너무 좋아해요. 배우들하고 얘기해보면 다들 ‘소영 연출님이랑 작업하면 행복해하지 않을 수가 없지!’라고 얘기할 정도거든요. 처음엔 사람이 끌려서 <태일>이 하고 싶었어요. 소영 연출님과의 작업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때 만났던 동갑내기 (최)성원이도 있고요. (강)기둥이랑은 처음 작업해보는데 <안녕, 유에프오> 때 무대에서 보고 ‘와 정말 살아있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배우라고 하는구나.’ 정말 물개 박수 치면서 저런 배우랑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그렇게 좋은 멤버들이 모여있으니 하고 싶었을 수밖에요.
Q. <태일> 연습 과정에 대해
이번에 <태일>을 하게 되면서, <태일> 전과 <태일> 후로 내 삶이 나뉘었다고 생각할 만큼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 되었어요. <태일>은 해내야 하는 게 정말 많은 작품이지만 그것 때문만이 아니라 정말 작품을 연습하고 준비하고 공연하는 기간 내내 작품에 대한 생각만 하고 살았어요. 이런 말을 하게 된 것 자체도 스스로 너무 신기해요. 그동안은 작품 준비하는 기간에 대본을 다 외우고 해야 하는 일을 마치면 친구도 만나고 집에 와서 여가시간도 보내며 지냈거든요. 그런데 <태일>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정말 집에서 양치질하면서 씻으면서 태일만 생각하고, 버스 탈 때도 대본만 들여다보고, 집에 와서도 관련 자료 다큐 영상이나 영화, 책, 인터뷰를 찾아봤어요. 끝없이 찾아봤는데도 해소가 안될 정도였어요. ‘이만큼이나 준비해도 연기를 이 정도밖에 못하는구나’ 이런 걸 처음 느낀 거예요.
한 달 넘게 연습하면서 매번 1등으로 연습실에 갔고, 연습 끝나고도 항상 남아서 한두 시간을 더 연습했어요. 성원이는 대본을 한 달 정도 일찍 받았는데 굉장히 똑똑한 배우거든요. 본인 스케줄이 바빠질 걸 예상해서 미리 대본도 다 외우고, 이미 본인 동선까지 다 익혀서 왔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해야 할 배역도 많고 사투리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서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노력해야만 했어요. (웃음) 처음 연습 시작할 때는 <태일>이라는 작품에서 노래로 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내심 아쉬운 마음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 중에서도 정말 노래 신경 안 쓰고 연기만 생각한 공연이었던 것 같아요. 매일 함께 대본 보면서 그때 태일이 어땠을지 대화도 정말 많이 하고, 연습실에서 동료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도 정말 많이 울었어요.
Q. <태일> 연습 중 에피소드가 있다면
연습하다가 한 번은 웃다가 갑자기 ‘으허허헉’하고 운 적이 있었어요. 연습 과정 중에 제가 정말 어려워했고 안 풀렸던 역할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태일이가 내내 애를 쓰다가 마지막 한계에 부딪혀서 분신까지 결심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인물인데요, 많은 캐릭터 중에서 그 씬이 너무 안 풀렸어요. 끝까지 캐릭터를 못 잡았고 막공하는 날까지 스스로 맘에 안 들었던 캐릭터가 그 마지막 나쁜 사장이에요. 착한 척하는 거 아니고요, (웃음) 정말 제 안에 그런 악함이 잘 없어요. 태일을 정말 벌레보듯 해야 되는데,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미워하거나 경멸하는 게 잘 안돼요. 배우는 자기 자신 안에 그게 없더라도 그걸 연기로 해야 하는데, 정말 짧게 나오지만 그 역할이 너무 힘들었어요. 영화에서 나쁜 놈, 카리스마 있는 사람들 영상을 다 찾아보면서, 별의별 시도를 다 해봤었죠.
연습실에서 배우들이 저를 위해서 그 씬을 맞춰주고 있었어요. 먼저 기둥이랑 씬을 맞추는데 같은 배우 사이에도 기가 있는데 그 씬은 기싸움에서 제가 이겨야 되거든요. 기둥이 눈을 보는데, 제가 너무 눌리는 거예요. 제가 정말 못 주고 있었는데 그걸 받아서 기둥이가 너무 잘하는 거예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아 이 정도로 해서는 어림없구나’를 알았어요. 그리고 바로 성원이랑 씬을 맞추는데 그냥 바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침을 막 튀기면서 하는데, 와.. 정말 죽겠는 거예요.
연습 끝나고 나서 ‘아우 나 진짜 어떡해, 얘들 너무 잘한다, 와 진짜 왜 이렇게 잘해? 내가 이렇게 주는데 저렇게 한다고?’ 이러면서 ‘와 진짜 웃기다 흐하하하가학엉엉엉’ 하면서 갑자기 울었어요. 다른게 아니라 정말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난 거거든요. 나름의 부담감도 있었나 봐요. 그날이 아직도 생각나요. 너무 웃겼고. 다들 엄청 놀렸죠. (웃음) 그날 이후로 ‘아, 더 열심히 더 잘 해내야만 한다’ 하면서 스스로 ‘푸시업!!’ 했어요.
Q. <태일>을 하며 ‘연기의 맛’을 알게 되신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막연한 목표 같은 게 있었어요. 노역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고 사투리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요. 그런데 그걸 동시에, 그것도 이렇게 하게 될 줄은 몰랐죠. (웃음) 노인 역은 <웰다잉> 때 한 번 했었거든요. 그때도 고생은 많이 했죠. 그래도 한 번 해봤으니 좀 편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예전에 준비할 땐 자세나 걸음걸이, 목소리 등 외양적인 부분에서 이 정도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건 캐릭터의 내적인 알맹이를 생각해야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공연을 할 때, 물론 고민하면서 열심히 준비했지만 ‘딱 이만큼 준비했으니 된 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임한 적이 있어요. 아주 무서운 생각이죠. (웃음) <태일>을 하면서 아 내가 10년 넘게 공연을 하면서 그동안 작품 준비를 허투루 했구나 싶었어요. ‘이렇게 작품에 깊이 빠지면 작품이 쉬워지는 게 아니라 더 무서워지는 거구나,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겁구나!!!’
Q. ‘태일 외 목소리’의 1인 다역 캐릭터들을 만들어나간 과정에 대해
처음에는 잘 안돼도 조금씩 역할을 구축해가잖아요. 예전에는 한 가지 캐릭터를 만들어놓으면 ‘이건 통과!’ 그랬거든요. 근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어요. 실제 공연 땐 보여드리지 못한 것도 있지만, 매번 뭐든 더 해보고 싶어서 ‘개남이’ 설정도, ‘여공’ 설정도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밝은 아이, 우울한 아이, 이런저런 소녀를 다 가져와봤죠. ‘근로감독관’ 캐릭터도, 최근 ‘갑질’로 유명세를 떨친 사회 인물들의 녹음 파일을 다 찾아보고 시도해보기도 했고요.
아침에 일찍 나와서 커피 한 잔 사들고 혼자 빈 연습실에서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봤다가 사람들이 오면 ‘오늘 내가 이런 애를 데려왔어, 만나봐.’ ‘나 이렇게 해볼래.’ 하면서 캐릭터 다 만들어놓고 또 바꿔보고, 그런 작업이 힘든 게 아니라 너무 재밌었어요. ‘내가 이렇게 또 작품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고 다음에 다른 작품을 하게 되면 진짜 더 열심히 하겠구나 싶었어요.
제가 평소에 존경했던 친구들이 작품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뭐 그렇게까지 힘들어해, 너 너무 잘하고 있어!’ 이랬거든요. 신랑도 작품 할 때 항상 그렇게 하는 걸 봐왔고요. 연습 때 관련 다큐나 책을 다 찾아보고 대본을 엄청 보는 스타일이거든요. ‘아 그런데 저게 맞구나. 내가 그동안 한다고 한 거였는데 작품을 너무 편하게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부끄럽더라고요.
Q. 공연하며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분장실에서 이야기 나누다 보면, <태일>만큼 잘 안 풀렸을 때 속상한 공연도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태일> 공연은 길게 하기 어려운 공연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니까, 똑같은 걸 계속 마주할 때 사람이 무뎌질 수 있잖아요. 사람이다 보니 감정이 안 오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게 너무 힘든 공연이었어요. 사실 그럴 수도 있는데, 정말 죄책감 들고… 특히 ‘태일’하는 배우들도 진짜 그런 부분을 힘들어했는데, 그 감정을 내가 마주하지 못할까 봐 무서웠어요.
Q. <태일>과 다시 만나게 된다면
<태일>이 다시 공연되면 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겁도 나요. 지금의 내가 이 작품을 다시 마주했을 때 그때보다 더 잘 할 수 있을까?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그때 그만큼이 좋았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고요. 아, 진짜 무서운 극이에요. 진짜 행복했지만 다시 연습하라고 하면 두려운 느낌이 좀 있어요. <태일>이라는 작품을 대학로의 많은 배우들이 다 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다시 하는 거 말고 남이 하는 것도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어요. 아, 그런데 너무 좋은 극장에서 하는 건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 공연장에서 하는 걸 상상해보면 하나도 와닿지 않을걸요. 물론 ‘천공의 성’은 좀 너무 열악했지만요. (웃음) 올해 영화도 나올 예정이고, 전태일 재단에서 극장을 짓고 있대요.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함께 내고 있어요.
Q.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너무 좋기도 하고 또 너무 무서운 직업인 것 같아요.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볼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면서 자기 성취감도 물론 있고 사랑도 받지요. 관객분들이 공연 보시면서 뭔가를 느끼고 가시는 게 또 큰 원동력이 되어요. 저도 좋은 공연을 보고 나오면 기분 좋아져서 카페에서 친구와 공연 얘기 실컷 하고 진짜 기분 좋게 잠들거든요. 그걸 줄 수 있는 직업인 거잖아요. 그런 게 진짜 감사한 것 같아요. 쉬는 동안 했던 다른 일도 즐거웠다고 했잖아요, 근데 저는 <태일>을 하고 나서 다시 공연을 하고 싶은 힘을, 그런 마음을 완전히 되찾았어요. ‘공연을 할 수 있겠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Q.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지
저에게 <태일>은 참 특별했어요.
<태일>을 하고 나서는 공백기나 쉬는 기간에 대해 흔히 가질 수 있는 두려움들이 완전히 없어졌어요. 비는 시간에 나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하든, 다른 일을 해서 수입을 얻든, 무엇을 하든지 이제 좀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졌고요.
처음 배우 일을 시작했을 때는 제가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깨는 데에 한참 오래 걸렸어요. 지금은 제가 뭘 잘 할 수 있고 어떤 배역이 잘 어울리는지 알 것 같은데 <태일>을 하고 나서 제 안의 작품을 선택하는 데에 어떤 기준이 생긴 거예요. 의미 있고 메시지 있는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고요. 공연을 한다면, 모든 작품들이 다 저마다 좋은 작품들이고 제 경험상 무얼 하든 제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기에 하나하나 너무 감사하게 했었지만 앞으로는 제가 더 깊게 연구하며 연기하고 싶고 가슴을 뜨겁게 해줄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그래서 예전에는 작품을 결정할 때 음악을 먼저 생각했다면 이제는 대본을 보고 어떤 연기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볼 것 같아요. 진짜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다른 의미로 되게 강해요. 지금의 휴식기도 너무 좋고요. 작은 공연장에서 했던 공연이지만, 내가 이 작품을 하면서 정말 큰 걸 얻고 나왔구나 싶어서 너무 감사해요.
2부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