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의 뜬금없는 대학원 도전기(1)

짱구 극장판 제목처럼 기깔나는 제목을 짓고 싶었는데...

by cranky witch

석사생 수업 첫날이었다.

아침부터(Fact: 전날부터) 긴장모드에 돌입했는데, 헤어진 남자친구의 응원 메시지를 받고는 눈물이 아른거려서 엄마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꾹 눌러 담았다.


3시 수업이었는데 일부러 조금 일찍 갔다. 세미나실에 미리 가서 조교님이나 계신 다른 분들 얼굴을 틀 생각이었다. I 성향을 가진 자 나름의 크나큰 노력이랄까. 가보니 오늘 수업 교수님이 와 계셔서 인사도 드리고, 석사 선배님들도 몇 분, 조교님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수업은 먼저 수강생들의 자기소개로 시작되었고, 이후 약 1시간 정도 수업 개요를 설명해 주셨다. 자기소개에서 해리포터 덕밍아웃을 해버린 어쩔 수 없는 머글. 종종 학생들 이름을 부르며 질문도 하셨는데, 만약 그 질문을 내가 받았다면 어버버버 대답을 못했을 것 같아서 점점 내 마음은 쫄아들어갔다. 이건 분명 아주 기초적인 지식일 텐데, 수업은 이 지식을 토대로 더 깊은 내용을 배울 텐데 이런 나 과연 감당 가능?


수업이 끝난 후에 궁금한 점이 있는 사람들은 물어보라고 하셔서, 사실 남을까 말까 눈치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처럼 석사 1학기로 보이는 한 분이 교수님께 이 수업이 어려워 보인다고 하는 게 아닌가?! 더 놀랬던 것은 교수님께서 다음 학기에도 이 수업이 있으니, 그럼 천천히 이해를 더 높여서 다음 학기에 들어도 괜찮다고 하시는 걸 엿듣고는... 와장창.. 내 멘탈이 무너지는 소리. 그.. 그럼 나도 그렇게 하는 게 좋을까? 수강 신청을 변경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교수님께 다시 여쭤보려고 대기하는 와중에, 석사생 2학기차인 분과 담소를 나누며 이런저런 정보를 받았다. 그분도 나처럼 학사 전공이 석사 전공과 같지 않았는데, 교수님이 참 좋은 분이고 잘 가르쳐주실 거라고 석사 쪼랩을 안심시켜 주셨다.


그래도 교수님께 나의 이 혼란스러운 심정을 말씀드렸는데, 역시 교수님..! 내가 판단해야 할 명확한 기준을 말씀해 주셨다. 지명해서 질문했던 사람들은 이전에 교수님 수업을 들어서 내용을 알고 있었던 분들이고, 다른 학생들 중에도 말만 안 했지 아마 나와 비슷한 상황인 분들도 있을 거라고, 그리고 지금의 내 상태면 어떤 대학원 과목을 들어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니 난이도보다는 입학할 때의 목적, 즉 무엇을 왜 공부하고자 했는지에 따라 수업을 들을지를 결정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너무 맞는 말인걸.


그래서 다시 초심을 찾았다. 어려울 테지만 그걸 알면서도 해보기로 했던 거니까.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 깃털 같은 멘털의 석사생을 살려주셔셔.


수업 가기 전 아침에 Chatgpt는 '첫날은 "완벽"보다 "적응"이 목표!'라고 말해줬었다. 내 성격상 조급증이 엄청난 속도로 온몸을 점령하기 쉽기 때문에 chatgpt의 조언에 따라 최대한 느긋하게 마음먹으려 노력했었다. '누군가와 많이 대화를 못해도, 무언가 한 것이 없는 것 같아도 불안해하지 말자, 천천히 해나가면 되니까.'라고 되새겼는데, 생각보다 몇 분들과 대화를 나눠볼 수 있어서, 교수님께 좋은 조언을 얻어서 만족스러운, 어쩌면 목표를 초과달성했을 수도 있는 하루였다.


Chatgpt의 팁처럼, "내가 꿈꾸던 길 위에 서 있다"라고 생각하며 오늘 하루, 그 자체를 즐겼기를.

내일도 그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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