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게 없어서 픽션 캐릭터를 부러워한다. 바람직하지 못한 덕후의 예.
해리는 금수저 마법사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인가 '헬조선', '금수저/흙수저'라는 단어를 여기저기서 많이 듣다 보니, 누가 덕후 아니랄까 봐 해리포터에도 그 내용을 대입해보기 시작했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해리는 금수저였다. 물론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성격 더러운 더들리네 가족네 집에서 힘들게 식모살이를 하긴 했지만 이 모든 것은 해리를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덤블도어의 계략(?)이었으니!
1. 재력
능력 있는 유명한 마법사 부모님께서 해리를 위해 유산을 많이 남겨주셨다. 정확히 얼마인 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하고자 하는데 돈이 행동을 제약하지는 않는 수준인 듯하다. 돈이 없어 간식 사는 것도 망설이고, 낡은 마법 교과서를 사는 론네 가족과 가끔 대조되기도 한다. 물론 해리가 사치스러운 소비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니 가능한 말이다. 호그와트에서는 교복을 입으면 되고, 빗자루는 계속 누군가 사주니까..(영화를 보면 누가 사줬는지 나온다)
2. 명성
길게 설명할 필요 없다. 이마에 번개 모양 흉터만 보여주면 그걸로 끝이다. 어디서든 거의 프리패스 수준.
3. 인맥. 네트워크
해리를 지켜해 주는 사람들은 뭔가 좀 있는 사람들이다. 능력이든, 명성이든, 재력이든, 사랑이든. 일단 덤블도어 교장선생님-누구나 인정하는 엄청난 마법사. 스네이프 교수-양쪽에서 스파이 역할 톡톡히 하면서 해리를 위해(정확히 말하면 해리의 어머니, 사랑하는 릴리를 위해) 평생을 희생한다+마법능력도 좀 짱.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굳이 해리를 몰랐던 사람이라도 성격 좋은데다 유명하기까지 한 해리에게 누구나 친절을 베풀지 아니할 수 없으리.
4. 능력
중요하다. 재력과 명성을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났더라도 그걸 평생을 유지해갈 능력이 없다면 금방 위력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역시 우리의 해리는 능력 있는 마법사 부모에게서 태어난 덕인지 아니면 시련이 많이 다가와서 그런지 어린 나이에 패트로누스 마법을 해내는 실력 있는 마법사가 된다. (말포이 가문은 이름 있는 가문이었다. 노예로 부리는 요정도 있다는 걸 보면 귀족 마법사였다지, 시리우스 가문처럼. 그러나 능력이 없어서 망했다. 어느 편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언자 일보에 '말포이 가문의 몰락'기사가 잠깐 지나간다)
이 정도면 내가 해리를 금수저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4가지 요인들 중 영화에서 가장 초점을 맞췄던 부분이자 내가 가장 부러웠던 부분은 '능력'이었다.
(부러워할 게 없어서 영화 캐릭터를 부러워하는 나란 참....)
해리의 어린 시절부터 어른까지를 다루는 성장소설이니 그 능력이 일취월장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는 건 당연했고, 영화와 함께 세월을 먹어가는 나도 (당연히?) 성장하길 원했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능력주의 사회가 심어주는 압박은 가끔 너무나 무겁다. 종종 멘탈이 약해질 때, '열심히가 아니라 잘 해야 해'라는 말처럼 무서운 말은 없다.)
그래서 해리가 부러웠고, 아주 솔직히 약간은 질투했다.
(아 찌질해...)
그런데 이번에 [불의 잔]을 책으로 다시 읽고 나서,
'해리는 뛰어난 마법 능력을 타고난 게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의 엄마, 릴리 포터는 볼드모트(You-know-who)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가며 오래되었지만 아주 강력한 보호 마법을 해리에게 걸었다. 덤블도어를 비롯한 강력한 마법사들도 해리와 그 주변에 역시 보호 마법을 걸어놓았다. [불의 잔]에 이 내용이 다뤄졌는데, 해리의 피가 볼드모트의 부활에 필요한 이유도 이거였다. 해리의 주변에 씌워진 보호 마법 때문에 볼드모트는 해리에게 접근할 수 없었고, 때문에 해리의 피를 받는다면 그 보호막을 뚫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확히 어느 편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덤블도어가 해리에게 이런 뉘앙스의 말을 한다.
난 너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 덤블도어는 해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기 때문에 해리를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리가 다가올 일들과 맞서 싸울 수 있도록 가르쳐주고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를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싸움을 막지 않는다.
마치 헝거게임의 게임메이커들이 모든 환경을 조작한 후 참가자들을 그 안에서 플레이하게 하듯,
덤블도어는 보호 아래서 해리가 싸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준 것이다.
+해리가 보호받고 있는 다양한 상황들
[마법사의 돌]을 보면 쿼렐교수가 해리의 목을 조르는 위급한 상황에서 목을 조르는 교수의 손을 해리가 붙잡았다. 그냥 붙잡았다. 꼬집은 것도 아니고, 때린 것도 아니고, 꼬마의 앙력이 어른보다 센 것도 아닌데 해리가 교수의 손을 붙잡자 교수의 손이 수분이 빠진 돌가루처럼 부서져 내렸다. 갑자기 해리의 손에 생긴 이 마법능력 덕분에 해리는 마법사의 돌 편에서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이건 해리의 엄마가 해리를 보호해준 것이었다(영화에선 LOVE라 표현하더라).
[비밀의 방]에는 바실리스크(용인가, 뱀인가. 너의 정체는?)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덤블도어의 애완새, 폭스가 나타나 바실리스크의 눈을 쪼아 실명하게 만든다. 때문에 해리는 소리로 바실리스크를 유인할 수 있었고, 바실리스크의 눈을 보면 언 체로 기절해버리는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바실리크스의 이빨에 팔이 찍혀서 온몸에 독이 퍼져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폭스가 또 나타나 치료해준다. 덤블도어의 보호다.
심지어 대부분의 영화에서 해리를 보호해주는 패트로누스 마법도 라틴어로 "나는 보호자를 원한다"라는 뜻이었다.
패트로누스 마법 주문=Expecto Patronum(익스펙토 페트로눔)=고대 라틴어:나는 보호자를 원한다
(마법 주문 찾아보다가 이걸 알고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해리가 몇 번 고비를 겪을 때까지, 그래서 그에 상응하는 담력과 용기와 능력이 어느 정도 길러졌을 때까지, 그때까지 해리의 모든 것은 '보호'받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호였다.
그래서 그 작은 아이가
볼드모트에 아무것도 없이 대적하러 갈 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호. 그게 해리를 성장시킨 요인이었다.
능력은 보호 아래서 길러질 수 있구나.
P.S.1 사랑이 보호를 만들어 낸다. 나는 내 동생이 나에게서 '보호 받음'을 느꼈으면 좋겠다. 무슨 일을 저지르든 감정적 받침대가 되어주고, 해결해줄 수 있는 능력 혹은 지혜를 갖추어 동생이 힘들어할 때 도와줄 수 있는.
P.S.2 영화 시리즈 초반에는 '보호'가 강력했다. 해리가 보호 덕분에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 많았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보호는 '힌트' 혹은 상황 반전의 '키' 정도의 수준으로 중요도가 낮춰진다. 해리의 담력, 헤르미온느의 지혜 등이 '보호'가 덜 필요해질 만큼 성장한 것이다. (론은?)
P.S.3 "익스펙토 패트로눔"이라는 마법 주문이 머글들에게도 꽤나 인상 깊었나 보다. 클럽 음악 용도 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익스펙토 페트로눔 유툽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L_l7PY_j1nY (이거 듣고 진짜 동생이랑 빵터졌닼ㅋㅋㅋㅋ 마법 지팡이를 들고 춤추는 DJ들 매력 폭발ㅋㅋㅋㅋ온몸이 두둠칫 거림을 멈출 수가 없다!!!!!!!)
(이 음악 풀버전: https://www.youtube.com/watch?v=nr61C0NeSK8 이건 멜론에도 있다ㅋㅋㅋ 내 엠피 선호 곡 중 하나ㅋㅋㅋㅋ)
P.S.4 친구가 유니버설 미국에서 사다준 마법 지팡이로 집에서 가끔 마법주문을 외우는데, 가장 좋아하는 주문이 보호 마법이다. [죽음의 성물]에서 호크룩스를 찾아다니면서 계속 이동하는 도중 자신들의 위치를 들키지 않으려 헤르미온느가 쓰기도 하고, 호그와트를 지키기 위해 모든 교수들이 호그와트 주변에 방어 마법을 치며 쓰기도 한다.
"Protego Totalum(프로테고 토탈룸), Salvio Hexia(살비오 헥시아)"
이 주문을 외울 때, 헤르미온느의 비장한 표정을 보라. 안 좋아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난 아직 덤블도어 같은 능력 없으니 이 보호 마법으로 동생을 지켜주고 있다. 매일 동생에게 이 주문을 외워준다. 찐따처럼.
P.S.5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해리가 아니다.
1위.R.J.Rupin교수님(늑대인간)
2위.시리우스 블랙
3위.세베루스 스네이프
이 중 스네이프가 가장 짠내 난다. 스네이프만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얼마 전 tvn에서 '또 오해영'의 서현진이 그렇게 짠내 나는 캐릭터였는데, 서현진의 짠내는 스네이프에 비하면 발톱의 때 수준이 아닐까 한다. 아.. 마음아파..
P.S.6 나도 보호받고 싶다.
혼자 살아남을 수 있다고 부득부득 기어코 살아남겠다고 하긴 하는데...
어쩌면 이미 받고 있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