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여태껏 나는 나 자신을 거의 단 한 번도 예술가는 커녕 평균보다 더 창의적인 존재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머리가 어느정도 컸을 무렵인 학생 시절,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전에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이 선뜻 '평론가'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고, 그냥 그게 적당한 것 같았다. 책을 많이 읽고, 인생에 대한 미학적 탐구를 돕는 모든 것들-문학, 예술, 철학 등-을 사랑하고, 감수성과 지성도 어느 정도 갖추었고 글도 그냥저냥 쓰지만 동시에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싶다는 불타는 창작욕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그저 다른 아름답고 현명한 영혼들이 이미 빚어 놓은 것들을 음미하고 감상하고 어느 정도는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좋았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런 식으로 꽤나 오래 전부터 나의 삶의 '큐레이션'이 조용히 시작되어 왔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 전 나로서는 꽤나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인생에 굳이 의미없고 귀찮은 일을 늘리지 않는 편인데, 불현듯 어떠한 컨셉에 대한 '영감'이 약간의 전율과 박동하는 심장과 함께 찾아왔고 그것을 구체화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다른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몇 시간 정도를 시간도 보지 않고 몰입한 끝에 구상했던 컨셉을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현실화 할 수 있었고, 나는 비할 데 없는 충족감과 자부심을 느꼈다. 그 결과물을 앞으로 활용할 예정이지만 그 창작의(!) 과정 자체가 그 목적을 다한 느낌이 들었고, 나는 또 다시 마침내 살아있다는 느낌, 그 짜릿하고 생생한 희열을 갈증도 없이 달콤하게 들이켰다.
그리고 그 앞에서, 여전히 조금씩 두근대는 심장을 안고, 따뜻하게 상기된 얼굴을 서늘한 손으로 받치고, 이게 나만의 창의성이고, 나만의 예술이 아닐까, 사실 항상 그래왔을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삶의 호흡과 같이 자연스럽게 켜켜이 쌓아 올리고 정제해 온 고유한 취향과 감각들을 기반으로 다양한 컨셉과 개념들을 설계하고, 편집하고, 정리하고 최적화하고 다시 삶에 반영하는 일련의 활동들 - 그것이 나의 예술이고, 창작 활동이고, 삶의 표현이었고, 그 모든 경험, 추구, 배움, 생활 방식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내가 그것을 하나의 총체로 인식하는 그 지점에 다다를 수 있었음을 끔찍할만큼 벅찬 자부심과 함께 느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내 삶 자체가 내가 가꾸어 나가고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 되어 왔음을, 아름다움에 예민한 관찰자/편집자로서의 나 자신이 단순히 평화와 규율뿐만 아니라 희열, 승화, 미의 창작자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잔잔하게 불타오르는 창작의 열정과 영구히 깊어지는 작품으로서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