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다운 나라, 국가다운 국가의 개념 정의를 하는 것
[인문사회] 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 돌베개
새롭게 정부가 구성된 지 한 달 조금 넘었네요. 거슬러 보면 그동안 쌓여있던 불만이 터졌던 역동적인 목소리가 촛불이 되었고, 그 촛불이 지금의 정부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불과 몇 달 전의 일인데 멀게만 느껴져요. 그 까닭이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때는 나라가 정상이 아니었다는 사실과 현재 정부의 모습 간의 간극이 크게 느껴지기 때문 아닐까요.
'나라다운 나라'를 우리는 줄기차게 말했습니다. 사실 '답다'라는 접미사는 상당히 애매한 개념이죠. 우리가 나라답다고 외치는 것은 어떤 특정한 상태를 가정하는 것인데, 이 특정 상태가 대단히 주관적이어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의 모습이 나름 접점을 찾고 있는 지점이 있으니 '답다'라고 말하고 있는 거겠죠. 다시 말해 공통분모를 뽑아내고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에 국가의 구성에 동의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외치는 것 아닐까 하는데요.
그렇다면 나라다운 나라는 무엇일까요. 이 글에 대한 대답은 유시민 씨가 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책 제목처럼 유시민은 무엇이 국가의 모습인지, 훌륭한 국가란 무엇인지, 그렇다면 누가 이 국가를 다스려야 하는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본질을 찾기 위해 다양한 주장을 살펴보고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개해나가는 과정이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국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유시민의 생각과 이상적인 국가를 바라보는 그의 믿음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더해서 나는 어떻게 국가를 바라보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자아성찰도 해 볼 수 있어요.
사실 책을 읽어가면서 이것저것 정리해보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생겼었는데요. 읽고 나서 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결국 유시민의 생각과 겹쳐져 있고, 유시민의 글이 너무나 적확해서 나는 그의 글만큼 쉽고 자세히 쓸 재간이 없으며, 오히려 그의 글을 정리하는 것이 최선의 서평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책을 인용하는 걸로 마무리하고 저는 사라지는 걸로.
세 줄 요약.
1. '나라다운 나라' 만들어 갑시다!
2. '나라답다'에서 답다는 말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서는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어볼 것.
3. 유시민 글은 항상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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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권력자들의 심각한 오용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법치주의라는 말이 큰 오해를 받고 있다. 법치주의는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은 권력 그 자체의 속성이기 때문에 어떤 주의도 필요하지 않다. 법치주의는 권력이 이러한 속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려고 만든 원칙이다. 법치주의는 통치 받는 자가 아니라 통치하는 자를 구속한다. 권력자가 주관적으로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이 그에게 위임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방법의 한계를 넘어서 그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권력 행사를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법치주의에서 일탈하면 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하며, 정당성이 없는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p58)
"국가와 정부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은 오늘날 정치학의 기본 상식이다. 정부 자체는 최고의 강제 권력이 아니라 강제 권력인 국가의 여러 목적을 실행하는 행정기구에 불과하다. 주권은 정부가 아니라 국가에 있다. 따라서 정부가 권력을 남용할 경우 관련 규정이 있으면 문책당할 수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벗어나는 행위를 저지른 것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법치주의가 자의적 재량을 대체한 모든 나라에서 핵심적인 이념이 되었다."(p68)
"개인은 부속물이 아니라 자기 삶의 주체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인생을 살 권리를 가지고 있다. 혹 그것이 사회의 다른 모든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이나 사회도 그 사람의 자유를 구속하거나 제약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것이 자유주의 철학의 요체라고 생각한다."(p72)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플라톤의 현자가 대통령이 된다 할지라도 자신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마음껏 하지는 못한다. 국회와 헌법재판소, 언론과 정당 등 다른 권력기관들을 사악한 인물들이 장악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훌륭하고 지혜로운 최선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선한 일을 많이 할 수 없다면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은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마음대로 악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대가로 감수할 수밖에 없는 부작용이다."(p177)
"풍요로운 사람들은 오늘의 상황에 불만을 느낄 기회가 적어서 보수적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인 것이다. 생활환경 변화에 적당한 압력을 느끼면서 학습하고 사유할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 가장 뚜렷한 진보주의 성향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p210)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책임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믿는 진보자유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개인의 자유와 삶에 대한 그 자신의 책임을 일차적으로 중시한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에게만 맡길 수 없는 사회적 공동선, 기회균등,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 노력과 민주적 개입을 요구한다. '내 인생은 내가 설계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며 내 삶은 내가 책임진다. 그 대신 국가는 국가가 할 일을 제대로 하라.' 그런 것이다."(p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