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박준 / 문학동네
1. 내가 지금 몸을 담고 있는 이곳은 도서벽지지역의 분교라서 학부모들의 입김이 드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입장에서는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내 아이 없이는 학년이 유지되지 못하는 상황이 수시로 생길 수도 있는지라, 아이가 학년이고 아이가 교사 정원이고 아이가 학교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의 학습과 부모의 욕구는 학교의 절대적인 가치가 되어야 하고 아이의 허물은 때론 교사의 천형이 될 수도 있다.
2. 아이들과 즐겁게 노닥거리며 가르치는 것의 자유로움을 맘껏 느끼고 있는 내가 이런 말을 왜 하나면 얼마 전에 일어난 작은 사건 때문이다. 휴일에 우리 학교 아이 하나가 공교롭게도 그 날 남아있었던 선생님 한분에게 공을 빌려 운동장에서 신나게 놀았다. 문제는 그 후에 아이가 공을 선생님에게 가져다주지 않고 내팽겨쳐 두었다가 누군가가 공을 가져가 버려 없어진 것이다. 선생님은 '가져다주기로 한 약속을 하고 빌려준 것이기에 책임을 지고 어떻게든 찾아오던가' '사다 놓던가' 하고 혼내서 보냈는데 그 날 사달이 났다. 선생 입장에서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화가 났을 것이고, 책임을 지우게 하는 게 교육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3. 부모는 그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났다. 학생이 공을 가지고 놀다 없어질 수도 있는 것인데, 마치 취조하듯 경위서를 쓰게 했으며 다그치고 사놓지 않으면 오지 말라는 말에 억장이 무너졌다. 더욱이 공을 선생님에게만 전달 안 했을 뿐이지 아무 데나 놓지 않고 창고 안에 넣어놓고 왔다고 증언하는 아이의 말에 화가 폭발했다. 그래서 공을 들고 와서 씩씩거리며 분하다고 따져 물었다. 애석하게도 분교장인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줬다. 딱히 해결을 원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들어주고 끄덕여주었다. CCTV를 돌려보면 될 문제였으나 그게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돌려보니, 아이의 말이 틀렸고, 공은 운동장에 던져놓고 갔다!)
4. 약속의 문제, 책임의 문제, 거짓말의 문제, 학교 행정의 문제가 뒤섞여 벌어진 일이었다. 학생을 위한 공이니 가져다 놀 수 있는 일이다. 놀다 찢어질 수도 있고, 이상한 곳으로 날아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 그럼 학교에서 다시 구입해야겠지. 그런데 약속과 책임의 상황과 문제가 개입되면 다르다. 빌리고 다시 가져다 놓기로 약속했으면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지켜야 한다. 의도적으로 또는 약속을 가벼이 여기는 마음으로 물건을 방치했으면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
5.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했다. 이 작은 사건의 근원적인 문제는 '소통'이 아닐까. 전교생 학부모들과 문제 해결을 위한 간담회를 하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이야기하니 풀린다. 잘 들어주고 입장을 이야기하고 공감해주니 오해가 풀렸다. 공을 던져놓고 갔을 때 학부모에게 문자 한 통 보내면 되는 거였다. 책임지지 못한 것에 대해 따끔히 혼냈을 때에 부모에게 전화 한 통 넣어 상황과 그렇게 혼내게 된 의도를 이야기하면 되는 거였다. 선생으로서의 천형도 감당해야 한다. 미숙한 아이의 허물을 부모의 입장에서 따끔하게 혼내고 따뜻하게 이해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부모의 푸념을 들어주어야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주어야 한다.
6.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못마땅한 동료 조선생님. 선생님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화남을 이해해니, 그렇담 이 시 한편 같이 읽어봅시다. 요 며칠 새 내가 새벽에 깰 때마다 소소히 읽었던 박준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 나와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다가 일 년을 먹는 우리들이니, 속이 아려도 그려려니, 그게 선생이겠거니 하고 삽시다. 시인처럼 우리도 직접 그러지는 못했을지라도 모든 글의 만남과 그 속에서 공유하는 우리의 삶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어요? 조선생님.
7. 제도 속에서 말의 행간 속에서 속상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겠다. 아이 하나가 학교를 살리고 학급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이 곳의 부모도, 교육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열정이 가득한 이 곳의 선생도 말들에 상처를 받고 말들이 행간 속에서 떠돌아 다닐 때 학교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알겠다. 그렇다면 따뜻한 정답 하나. 서로 보듬고 다치게 하지 않는 것. 아이 옆에서 하루 한나절을 재잘재잘 부모 이상의 역할을 하는 선생에게 감사하고 아이의 이름을 지어다가 매해 먹는 생활을 하는 우리들 역시 감사하는 배려를 갖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도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