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독시.. 원작팬이라는 성좌를 거부하다.

독자적인 길을 가는 영화화 작업의 험난함

by 시간의 옆면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후반부에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사운드, 그리고 나름의 명분을 갖춘

주인공의 리드에 나도 모르게 매료되어 그를 응원하고 그의 승리에 기뻐했다.


하지만, 원작과 달라진 포인트들에 대한 뒷맛이 아주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는 재미있었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이것이 아니었는데..


어디서부터 였을까. 그들이 독자의 길을 가고자 한 지점이.

실제 극중에서도 독자는 성좌의 후원이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알고 그들의 지원을 거부한다.


그리고 성좌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그 존재와 시스템을 활용해 그만의 방식으로 목적을 달성해간다.



신과 함께의 성공에서부터 였을까.

아니면 영화화라는 고난한 작업을 결정했을때부터 였을까.


하지만 이것을 제작진의 잘못이라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싶지는 않다.

본디 영화와 웹소설(웹툰)은 맞지 않는 장르다.


사람들이 드라마로 만들기를 바라던 이유와도 같다.


웹소설은 매화가 하나의 이야기이다.

매화 스토리가 있고, 캐릭터가 있으며 약하지만 클라이막스가 있다.

그렇게 매화의 수많은 이야기와 정보, 감정의 격돌, 캐릭터간의 교감이 무수하게 쌓여가며

전체 이야기라는 거대한 여정을 한조각 한조각 쌓고 엮어가는 것이 웹소설이다.


반면, 영화는 그렇지 않다.

한번의 거대한 클라이막스를 향해 한조각 한조각 서사와 감정을 쌓아가는 장르다.


웹소설의 영화화는 매체의 장르가 바뀌는 순간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문법이 달라진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세 가지이다.


1. 원작에 충실하기

당장 떠오르는 것은 다빈치코드 정도 같다. 대성공은 못하더라도 적어도 원작 그대로네 느낌 정도는 있다.


2. 원작을 활용하기

모든 성공한 각색영화의 방법이다. 미생이 있겠다.


3. 모르겟다.. 무언가 있을 것이다.


암튼,


전독시는 2번의 길을 가고자 한 것 같았다.


신과 함께라는 아주 성공적인 컨버전 사례도 있었다.


헌데 이렇게 전환을 할때 가장 유의해야할 점이 있다.


바로 원작의 가장 핵심적인 매력을 절대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과 함께도 상당히 많은 각색이 들어갔다. 변호사 캐릭터는 아예 사라지고

해원맥 등 주요 캐릭터들의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영화화는 가장 중요한 원작의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죽어서 가는 저승세계라는 곳을 새롭고 매력적으로 재해석했다는 부분이다.

이승과 저승의 유기적인 관계, 저승의 재판제도, 저승사자의 역할 등

그리고 그것이 무심한 듯 순기능으로 작용하며 세상의 정의를 실현한다는 그 정신.


그렇다면 전독시는 어땠을까.


소설 전독시의 가장 핵심적인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주인공의 다양한 스킬들과 기상천외한 미션 구성들이었을까. 박진감 넘치는 액션 묘사였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저 도구들일 뿐이다.


원작의 핵심 매력은 창의적으로 짜여진 그 방대하고 상상력 자극하는 이세계의 설정과

바로 김독자의 절묘한 캐릭터성이다.

악인과 선인사이를 오가며 리더쉽을 발휘하고, 막강한 카운터펀지인 유중혁과의 긴장관계를 놓치지 않는 것.

카리스마 넘지는 주인공 최강자는 따로 있지만 이쪽에서 그만의 이야기로 한 축을 이끌어가며 사실상의 주인공 역할을 해내는 그 모습이다. 이곳은 전쟁터다. 강한자만이 살아남고 살아남은 자만이 강한 세계이다.

이곳에서의 전우애는 동정과 나눔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책임과 결단으로 만들어진다.


그 세계가 전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보편의 세계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설득해내는데 성공한 원작은 입지전적 작품이 되었다. 즉, 그것은 작은 시장이 아니라 구현해내기 어려워 숨겨져있던 시장이었던 것이다.

제작진의 고민도 이해 안되는 바는 아니다.

원작은 보물창고다. 버리기 아까운 설정과 감정선, 보석같은 캐릭터들이 즐비하다.

또한 셰계관을 이해시키기 위해 해야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고 방대한 스케일은 모두 영상으로 풀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보편 정서였다고 생각된다.

바른 캐릭터. 선을 추구하고 보편 가치를 추구한다.

거기서 오는 쾌감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은 2025년의 우리에겐 조금 낡은 종류의 쾌감이라는 것이고

더군다나 전독시에서 기대하는 쾌감은 아니라는 것에 있다.


원작의 정서를 그대로 영화에서 살려내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글로는 전달할 수 있어도, 실제 인물과 대사로 그것을 설명해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작업이다.


(야동이 결코 야설을 따라올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첫번째 레슨은.. 원작을 잘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전독시는 애초에 영화화가 거의 불가능한 작품이었다. 드니뷜레브급 영상 및 분위기 장인과 스필버그급 스토리 전개 장인이 만나서 해야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렇지 못한채로 시작하는 영화화는 지금과 깉이 설정만 따온 채 다른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다른 이야기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상당히 성공적인 편이다.

(솔직히 나는 재미있게 보았다.)

문제는 그것이 원작의 핵심 매력을 포기하게 되는 선택이라는 것과

그것이 낡은 종류의 감성이라는 것이다. (한 10년쯤 뒤에는 그 유행이 다시 올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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