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능소화

by 일향지

거실 소파에 여자와 엄마가 (서로를 보지 않고) 나란히 앉아있다.


여자 수술 날짜 잡았어.

엄마 수술 안한다니까! 인생 말년 추하게 있다 가기 싫다. 추한 여자는 여자가 아니야. 빨리 죽어야지. 나 같은 짐덩어리 데리고 살면 너 시집도 못가.

여자 참나... (슬쩍 웃는) 언제부터 날 그렇게 생각해줬어?

엄마 ...

여자 나한테 짐 되기 싫으면, 엄마부터 건강해져!

엄마 이미 이 몸이 짐 덩어리다. (슬프게) 이제 움직일 힘도 없고...

여자 (놀리듯) 그 여자 옷 붙잡을 때 보니 힘이 장사더만... 고상한 척은 혼자 다하더니 그 여자를 그 꼴로 만들어 놓고..(웃는)


잠시 어색한 침묵 후


엄마 (조심스러운) 너... 아직도 내가 나밖에 모르는 줄 아냐?

여자 (씨익 웃으며 엄마 보는) 그렇지 않으면, 제발 내가 하란대로 해!


여자, 가방에서 분첩을 꺼내 엄마의 얼굴에 파우더를 곱게 칠해준다. 엄마,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온다.


엄마 웬일이래. 화장을 다 해주고! 이것아! 니나 잘 하고 살아!

여자 움직이지 말고 눈 감아봐! (아이라이너를 발라주며) 나 이혼했어. 이제 새 출발할거야. 나 좋다는 남자 만나서 결혼도 할 거고!


엄마가 눈을 번쩍 뜬다. 여자, 엄마에게 눈 감으라는 듯이 눈을 감아보인다.


여자 그런데, 병든 엄마가 내 옆에 딱 붙어 있는 게 걸리네. 수술하고, 몸 회복해서 아저씨랑 새 인생 살아. 나 재혼할 땐 결혼식장에서 엄마 옆에 누가 있어야 그럴듯하지 않겠어?


여자가 엄마에게 옷을 입히고, 집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차에서 내리는 아저씨. 여자와 함께 있는 엄마를 보고 웃는다. 여자가 들고 있는 짐 가방을 아저씨가 트렁크에 싣는다. 여자를 보는 엄마의 애틋한 눈빛. 그 위로.


엄마(E) 나도 너가 미웠다. 내 발을 묶은 니가 미웠어.

여자 (엄마 어깨 쓰다듬는) 엄마, 가! 가도 돼! (눈물을 닦는)

아저씨 그래요. 갑시다! (엄마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엄마의 수척해진 몸을 잡고 차에 태우는 아저씨


여자 (관객에게) 엄마는 더 이상 능소화 같지 않아요. 화려하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죠.


베란다의 시든 능소화에게 가서 꽃잎을 만지는 여자


여자 능소화는 시들었지만, (관객을 보는) 엄마는 피어났습니다. 평생의 순정을 바친 한 남자 앞에서...(미소 짓는)


엄마와 아저씨가 차를 타고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