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능소화

by 일향지

엄마가 장봐온 것을 가지고 집으로 오는데, 집 앞에서 여자와 여자의 남편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소리에 걸음을 멈춘다.


남편 살기 싫다고! 너랑!

여자 (눈물이 글썽대는) 왜 이렇게 잔인하니?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겠어?

남편 난 결정할 시간 충분히 줬어.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고!?

여자 시간 지나면 변할 줄 알았어! 다시 돌아올 줄 알았어! (흐느끼는)


엄마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힘없이 쪼그려 앉는다. 여자는 흐느끼며 벤치에 앉고, 남편은 퇴장한다. 남편의 뒤를 따라 엄마도 퇴장한다. 잠시 후 아저씨가 다가와서 여자 앞에 선다.


아저씨 (봉투를 내밀며) 그 동안 신세진.. 이 돈 마련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요.

여자 (눈물을 닦고 의심어린 눈빛으로 아저씨 보는)...

아저씨 내가 작품 활동하면서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재벌들 사진도 좀 찍어봤지만, 사업이 잘 안돼서 사실 내 생활은 그리 넉넉하진 못해요.

여자 (아저씨 눈 빤히 쳐다보는)...

아저씨 이런 말을 하는 건, 내 진심을 알아줬으면 해서...

여자 진심....이라구요? 아내 버리고, 내연녀랑 도망치려던 분에겐 어울리지 않는 말이네요.

아저씨 염치없는 거 알지만, 내 말 좀 들어줘요. 난 신경증이 있는 아내에게 많이 지친 상태였고, 그 와중에 알게 된 여자가...

여자 (말 끊으며) 지금 내연녀를 만난 걸 합리화시키시는 건가요?

아저씨 그것보단...(사이) 나를 좀 믿어주시오.


여자, 고개를 들어 아저씨를 본다. 아저씨와 여자, 서로를 보는


아저씨 나 때문에 당신도 맘고생이 심했을 것이오. 미안해요. 그리고...(사이) 이젠 내가 그녀의 여생을 책임지고 싶어요.

여자 !!!

아저씨 날 믿어줘요. 그런데, 그녀가 왜 그런지, 날 안 만나줘요. 엄마 설득 좀 해줄래요?

여자 엄..(어색해하는) 마...는... (아저씨 보는) 지금 엄마 많이 안 좋으세요.


그때, 여자에게 걸려오는 전화. 놀라서 꽃집으로 달려가는 여자.


꽃집 앞. 엄마가 주인의 옷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잡고, 놓지 않고 있다. 그런 엄마를 남편이 끌어내려는데 엄마가 거센 힘으로 남편을 밀어낸다. 주인은 머리가 헝클어진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고...

엄마 나 이 손 못 놔요! 두 사람 헤어진다는 소리 듣기 전까진 절대 못놔! (주인 보는) 내 딸 속 곪아터지게 해놓고, 너희들이 행복할 줄 알아?

여자 엄..마! 여자, 달려가서 엄마 앞에 선다.


엄마, 여자를 보며 놀라지만 이성을 차린다. 여자, 주변 눈치를 보며 엄마의 팔을 붙잡지만, 엄마는 거세게 여자의 팔을 뿌리친다.


엄마 (여자 보며) 박 서방이 너랑 못 살면, 이 년도 절대 못 살아!

여자 (엄마 붙잡으며) 이런다고 해결되지 않아. 그만 가자!

엄마 (한 손으로 여자를 뿌리치며) 내 속이 이렇게 천불나서 미치겠는데... (감정이 격해져 흐느끼는)

여자 (말 끊으며 독하게) 이제 좀 알겠어? 당하는 사람 마음을?

엄마 !!!

여자 엄마랑 이 여자랑 다를 게 뭐야!

엄마, 주인의 옷을 놓더니 힘없이 주저앉는다. 주인, 수치스러운 듯이 꽃집 앞으로 들어가 버린다. 남편, 그런 주인의 뒤를 따라 들어간다.


엄마 (멍한) 그래, 이게 다 내 업보다! (정신 차리고 여자 보는) 너 어떻게 하면 다 잊고 새 출발할 수 있어? 내가 이렇게 빌까?


엄마가 갑자기 여자 앞에 무릎을 꿇고 빈다.

엄마 (눈 감은 채) 넌 널 진짜 사랑해주는 사람 만나서 사랑받고 살아! (눈을 슬며시 뜨며) 내가 죽을 생각하고 보니 가장 후회되는 게, 평생 다른 여자 품고 산 너희 아빠 빨리 못 떠난거야. 내 예쁜 청춘 벌레 먹게 만든 그 양반을... 내 인생도 참... (한숨 쉬는) 너는 내 꼴 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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