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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향지 Aug 05. 2022

엄마들의 숨겨진 요리 자존심

딸 둘 엄마의 요리 콤플렉스_제3장 자식을 위한 요리, 나를 위한 요리

다년간의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요리를 포기하고 사는 워킹맘이나 요리에 별 관심 없는 전업주부 외에 집에서 요리를 해 먹이는 대부분의 주부들은 나름의 요리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한 음식에 대해 "맛있다"라는 반응을 얻는 것은 흐뭇한 만큼이나 자존심을 높이고, "맛없다. 못 먹겠어"라는 반응에 대해선 속상함 만큼이나 자존심에도 상처받는 듯하다.


한 번은 친구랑 여행 가서 함께 김칫국을 끓였을 때다. 조미료가 없어서 소금으로 간을 맞췄는데, 맛이 없길래 친구에게 간을 맞추는 걸 부탁했다. 그러나 조미료 맛에 길들여졌던 내 혀는 여전히 맛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소금이나 간장 등으로 애써 간을 맞춘 친구에게 "조미료가 없어서 그런지 맛이 없어. 어쩔 수 없다. 그냥 먹어야지"이랬는데 친구 표정이 안 좋았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그날 저녁 친구는 내게 "잘 들어갔냐?"라고 전화를 하고 나서 "우리 저녁에 김칫국 끓여먹었는데, 신랑이 맛있다고 밥을 두 공기나 비웠어."라고 덧붙여 말했다. 난 안부 전화를 가장한 요리 자존심 회복용 전화라는 걸 금세 알아챘다. 결혼 후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한 그 친구는 음식을 되도록 사서 먹지 않는다고 했다. 사 먹는 건 금방 질리고 맛도 없고, 조미료가 많아 몸에 안 좋다는 이유였다. 평소 나서거나 잘난 척을 하지 않고 겸손한 쪽에 가까운 성격인데, 요리 이슈에 대해서는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는 걸 보면서 난 그 친구가 적잖게 낯설었다.


또 다른 이야기다. 미자 씨는 평소 요리를 잘한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고 주변에서 '반찬가게를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종종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신랑이 아귀찜 맛집을 가서 "너무 맛있게 먹고 왔다"며 입이 마르지 않게 칭찬을 했다. 미자 씨는 신랑이 아귀찜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다음 날 그 요리를 재현해보았는데, 웬걸? 신랑이 그 맛집에 비해 그 맛이 터무니없다고 했다. 미자 씨는 그 맛집보다 더 맛있는 아귀찜을 만들기 위해 일주일 내내 아귀찜 요리를 했다고 한다. 그녀의 아귀찜 요리를 멈추게 한 건 "맛집보다 자기가 한 아귀찜이 더 맛있네"라고 말한 신랑의 말 한마디였다.


다음은 대놓고 자랑하는 걸 부끄러워하는 옆집 언니 이야기다. 그 언니는 어쩐 일인지 내가 어떤 일이든 대놓고 자랑이라도 하면 깔깔대곤 한다. 자랑을 하고 싶은 본연의 마음은 있는데, 그걸 또 드러내는 걸 억압하다 보니 화법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언니는 내게 "나 요리 못해"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하곤 한다. "우리 친정엄마는 요리를 잘하셔. 보통 딸은 친정엄마 닮는다고 하잖아. 근데 난 안 닮았나 봐. 호호", "우리 아들이 나더러 식당 차리라고 한다. 내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하네. 근데 그걸 반찬가게에서 사서 주는지 몰라. 호호", "(식성 좋은) 우리 아들 데리고 시댁에 갔는데, 산해진미가 많이 차려져 있는데, 정작 먹을 게 없다고. 거기 가서 집밥 생각난다고 그러더라고. 호호 ", "우리 집 애들은 밥 해주면 너무 먹어대. 난 밥해주기 정말 귀찮아." 처음엔 우스갯소리로 가볍게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을 돌려 말한 것이었다.


요리에 대한 평가에도 굉장히 민감했다. 한 번은 우리 집에서 그 언니가 청경채 숙주 삼겹살 볶음을 한 적이 있는데,  실수할까 봐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양념을 넣는 순서부터 섬세하기 이를 때 없었다. 그 집 아들이 우리 집에서 내가 한 음식을 먹다가 "엄마 너무 짜!" 이러면 깔깔거리면서 웃는데, 왜 그리 심하게 웃는지 나는 영문을 모를 지경이다. 한 번은 내가 그 집에 김밥을 싸다 줬는데, 그 아들이 "우리 엄마가 한 김밥보다 맛있네요. 우리 엄마한테는 비밀이에요"라고 내게 문자를 보냈다. 그 언니는 얼마 뒤 내게 그 문자를 봤다고 전했다. 근데 그 말을 전할 때 그 언니의 표정은 그야말로 썩어 있었다.


다른 한 번은 친구들과 여행을 가서 김밥을 싼 적이 있다. 나는 우리 집에서 그나마 잘 먹히는 메뉴가 '김밥'이었기에 2주마다 한 번씩은 김밥을 싸곤 했고, 거기서도 친구들의 수고를 더느라 내가 김밥을 주도적으로 쌌다. 거기엔 왕년에 김밥집을 운영해본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여행 가기 전부터 특정 햄으로 쌀 것을 주문했고, 싸는 기술에 대해서까지 얘기 했다. "햄을 누가 볶아?" "김밥은 싸놓으면 좀 둬야지 붙지" 이러는데 내가 시녀쯤이나 된 듯한 기분에 시달렸다. 나도 김밥 싸는 기술이 나름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런 말을 들으니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한 술 더 떠 "김밥 맛은 밥과 기름, 맛소금 맛이야. 갓한 밥에 질 좋은 기름과 맛소금을 넣어서 만들면 맛이 보통 이상은 가"라고 말했다. 그러곤 집에 오는 길에 다른 친구와 "김밥집에서 햄을 볶지 않고 넣는 게 시간과 노력이 부족한 거지, 볶는 게 왜 김밥 맛을 떨어뜨리는 행위냐?"며 숙덕댔다. 집에 가는 길엔 "걔가 한 것처럼 김밥 쌌는데, 평소 집에서 싼 것보단 맛이 별로야"라며 궁시렁댔다.


나는 다년간 극도의 요리 콤플렉스를 겪어왔기에 전업주부의 요리 자존심을 파악하는데 민감하다. 김칫국을  다시 만들어 식구들에게 인정받았음을 내게 말하는 친구나, 아귀찜을 일주일 내내 만들었던 미자 씨나, 요리 솜씨 자랑을 은근슬쩍 하는 옆집 언니나, 김밥집을 운영해서 김밥 싸는 기술이 한 수 위임을 강조하던 친구나 모두 본인의 요리 자존심을 유지하거나 강화하기 위한 모션이었으리라... 요리는 누군가를 건강하고 기분 좋게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자존심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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