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카 1
카투사라는 말은 들었지만 뭔지도 몰랐고, 내가 갈 수 있는지도 몰랐다. 군대에 전혀 관심이 없는 학창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때가 차서 한 달 정도 당시 하루에 오백원이었던 서초구민센터 독서실에서 토익 준비를 해서 지원을 했는데, 합격이 되었다. 카투사는 지금도 그렇지만 일생에 단 한 번의 기회만 있다. 한번 지원해서 불합격하면 끝이다. 영어 점수가 높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일정 점수 이상인 자 중에 랜덤으로 선발하는 방식이다.
2002년 당시에는 연장자 순으로 입대를 시켰기에, 발표는 연초에 났던 것 같고 나는 9월 입대를 하는 걸로 분류돼서 학교 휴학 상태에서 지냈다. 6주 간의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이어서 3주간 후반기 교육으로 카투사 교육대를 수료하면 이등병으로 비로소 자대 배치를 받는 방식이다. 카투사교육대에서는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2마일(3.2km) 달리기 3가지 종목으로 피티 시험을 보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연습을 많이 했다. 그때 내 나이 기준으로는 종목별 2분에 팔굽혀펴기 72개, 윗몸일으키기 80개, 2마일 달리기는 13분 이내로 들어오면 만점이어서 그것에 맞춰서 연습을 했다.
2002년 10월 17일, 논산 훈련소로 향했고 '입소대'에서는 본 훈련소로 향하기 전 2박 3일 동안 입영에 따른 신체검사를 하고 전투복과 전투화 등의 피복류를 지급받으며, 입고 온 사복을 집으로 소포 보내는 시기가 있다. 입소대 마지막 날은 훈련소의 몇 연대인지를 불러 주며 이튿날 훈련소로 보낸다.
입소대에서 친해진 동기들이 생겼다. 그중에 K 훈련병은 예카(예비 카투사) 다음 카페(그땐 네이버보다 다음이 더 유명했다)의 까페장이었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은 크리스천이었으며 나이도 같아서 금방 친해졌었다.
입소대 마지막 날 밤 연병장에 모두가 집합하여 친해진 사람들끼리 같은 연대가 되기를 저마다 기대하고 있는데, 내 이름은 다른 친구들이 대부분 불려질 때까지 불려지지 않아 초조한 마음이었다. 나의 이름 뒤에는 "oo연대"라는 말 대신 "재검"이라고 했다.
"뭐라고..?"
재검? 피티를 거의 만점에 가깝게 준비하고 누구보다 건강한 내가 무슨 재검. 한국군 의료 시스템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구나 하고 오진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은 그다음 날 훈련소에 가는데, 나는 아침에 대전 병원에 가서 재검을 받아야 된다고 한다. 다시 한번 오진일 거야. 마음을 굳혔지만 스멀스멀 불안함이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잠은 잘 잤고, 이튿날 병원에 가면서도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재검을 하면 남들보다 조금 늦지만 이상 없이 훈련소에 갈 것이라 생각했다.
X-ray 결과 내 폐 위쪽에 무언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7급 판정을 받았다. 신체 등급은 1,2,3급 등으로 나누어지며, 5급은 면제, 7급은 귀향 조치의 등급이다. 일단 귀향해서 다시 검사 후 조치를 받으라는 것이다.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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