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준 Dec 16. 2023

군인 갤러리 2화

예카 2

귀향 조치를 받은 인원은 집까지 가는 여비가 차등 계산되어 지급된다. 논산 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속상해서 울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카투사를 문턱에 두고 돌아서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핸드폰도 입소할 때 반납한 상태라 집 근처에 도착하여 공중전화로 일단 집에 전화를 했다. 엄마는 너무 놀라셨다. 집에 들어가서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당장 영등포에 있는 흉부외과에 예약을 했다.


조직검사 결과를 알기까지는 며칠이 걸렸다. 폐 위쪽에 형성된 알 수 없는 물체의 크기가 2cm가 넘고 조직 검사 결과가 양성종양이라고 했다. 결론은 이대로 넘길 수 없고 떼어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수술은 신촌 세브란스에서 하기로 하고 진료를 받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원칙이 카투사 귀향 조치를 받은 인원에 대해서는 30일 안에 의사에게 완치진단서를 받아서 성남 종합행정학교에 제출하면 카투사로 재입대가 가능했다. 하지만 30일에서 하루라도 넘기면 일반 한국군 병사로 입대해야 했다.

귀향한지 2주 뒤쯤 미니개흉술이라고 하는 그 당시 최신기술로 등 쪽으로 구멍을 내어 내시경과 기구를 이용해 폐에 있는 종양 제거 수술을 했다. 폐에 구멍이 났기 때문에 기흉을 방지하기 위해 파이프를 갈비뼈 사이에 넣어 폐와 연결한 상태로 물을 남김없이 빼내야 한다고 했다. 카투사에 다시 가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신호등 같이 생긴 기구로 공을 빨아들이는 폐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병원 안에서 신발을 고쳐 신을 때 나도 모르게 내 몸의 아래쪽에 위치시켜야 할 핏물을 빼는 통을 폐 위쪽으로 드는 바람에 물이 폐로 역류하여 쿨럭대며 며칠을 더 고생을 하기도 했다.

30일이 되기 이틀 전, 파이프는 뽑고 반창고를 붙여 놓은 상태였지만 몸 상태가 내가 봐도 온전치는 않았다. 그래도 허락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수술해 주신 세브란스 병원 흉부외과 선생님을 뵈었다. 정XX 박사님.

초진 때 들은 이야기지만 그 분의 아들도 카투사로 지원해서 불합격했던 전력이 있었다. 내 상태는 의사가 보기에는 입대할 정도로 건강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서 완치는 아직 아니라고 하셨다. 허망하게 진료실을 나선 나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저녁 때까지 병원 주변을 방황했다.

이내 결심을 하고 다시 찾아가 초록색 수술복을 입고 수술실로 향하는 의사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주변에도 3~4명이 함께 있었다. 엘레베이터를 타려는 그 분께 다급히 부탁했다.

"선생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내가 누군지 알아본 선생님은 대꾸하지 않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려 했다. 수술복 옷깃을 잡자 멈칫 했다.

"선생님 아들도 카투사에 가고 싶어하지 않았습니까. 저를 아들처럼 생각하셔서 한번만 도와주십시오. 입대해서 건강히 생활하고 다 나아서 진료받으러 오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네모난 은테 안경 안 쪽으로 날카롭게 3초 정도 머뭇거리듯 고민하던 선생님은 이내 결심한 듯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진단서와 펜을 채가듯 가져가더니 적어 주었다.


상기명 환자는 입대하여 훈련받고 군 생활하는 것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사료됨



영화 <행복을 찾아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행복을 찾아서>에서는, 의료기기 외판원인 주인공 가드너(윌 스미스 분)가 너무 가난하고 능력이 없어서 이혼을 당한다. 그 후  어린 아들을 돌보며 무료 급식소를 전전하고 끝내는 잘 곳이 없어 화장실 바닥에 휴지를 깔고 자며 소리없이 흐느끼는 등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고생을 한다. 거리에서 멋진 차를 주차하는 사람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증권 애널리스트이며 되기 위해서는 수에만 능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증권사 '딘 위터'의 인턴십에 도전한다. 수많은 난관과 수모를 겪지만 꾸준하게 성실함과 절실함으로 수많은 인턴들 가운데 엄청나게 높은 경쟁률을 뚫고 그는, 영화 말미에 회장으로부터 따스한 눈빛과 담백한 말투로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말을 통보받는다. 일터를 향하는 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행복해 보였는데, 이 순간 가드너는 회사 밖을 나오며 기쁨의 박수를 치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비로소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정XX 선생님이 적어주신 문장이 내게는 그랬다.


이 기쁜 소식을 당장 집에 전했고, 다음 날 종합행정학교의 카투사 입영 담당 소령님을 찾아가 완치진단서를 증빙 서류로 제출했다. 내가 귀향 조치를 당한지 30일째였던 날이다.

그 자리에서 재입대 통보서를 다시 발급받았다.

 2003년 1월 9일. 내 군생활 커리어의 시작점이 된 날짜다.






첫 화

https://brunch.co.kr/@magnet/5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