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위로하기
가끔씩 찾아오는 불편한 조각에 대한 태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가난하고 불안정한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한 살 터울로
오빠와 내가 태어났다
아빠는 4년간 부사관으로 복무했고,
전역해서 엄마와 결혼했다.
나에게 아빠는
술에 취해있지 않은가,
술에 취해 있는가. 를 기준으로
사람과 괴물 사이를 오가는 피에로였다.
술에 취한 괴물,
나와 같이 엄마도 무서웠던 걸까
엄마는 자주 집을 비웠다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도저히
그 여린 몸으로는 아빠의 폭력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오빠와 나는 엄마 없이 외롭게
잠에 들곤 했다
운이 좋은 날에는
엄마가 높은 창틀을 타고 넘어와
잠든 우리의 얼굴을 밤새도록 매만져줬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한 번씩, 무디지만 치명적인
기억의 조각을 가지고 찾아온다
우울감과 패배감에
여러 날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의 불행함에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러다가 최근 그에게,
상처받고 외로웠을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상처 가득한 어린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 말고는 달리 무엇이 있었을까
어린 시절, 가끔씩 창틀을 타고 넘어
나의 뺨을 어루만져준 엄마의 손길처럼,
그때의 기분에 젖어들고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어린 나의 마음을 안아준다
나는, 나에게 위로받는다.
김지연 <그림으로 화해하기>
P.58
고통으로 가득한 삶의 시간을
버텨내는 것에 어떠한 가치가 있을까?
나는 아직도 답을 찾기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무의미한 바람을
떨치기 어렵다.
그때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씩씩하게 그 시간을
극복해 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극복이라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것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그 시간이 나에게
무언가를 주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그 시기를 버텨낸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