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침대 위 취준생 Nov 30. 2019

23개월, 나의 소방일기(3)

침대 위 취준생의 23개월간 의무소방 일기

 지난 일기에서는 스스로도 기특했던, 생명을 살린 경험에 관하여 썼다. 그러나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죽음 또한 존재하였다. 아마도 여러 번 자신이 지쳤음을 내비쳤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다가 그들이 죽음을 결심하고 우리가 그것을 비로소 알아챘을 때에,


이미 떠나버린 그들의 혼을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었다.

출처불명, 낙담하는 남성


 어떤 날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허공의 시체를 안아 들고 내리기 위해 구급차로 우의를 가지러 간 잔상이 남은 것을 보면 아마도 비가 오던 여름이 아니었나 싶다.


 현장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아니, 창밖을 보고 낙담하는 한 사람과 이제는 산사람이 아니게 된 몸이 2층과 1층, 그 사이 난간에 흔들림 없이 존재했다.


 그 뒤로 눈에 들어온 것은 작은 상에 나치 제사를 지내는 듯하게 차려진 쌀밥 한 그릇과 물 한 그릇(컵이 아닌 밥그릇에 담겨있었다.), 그리고 '미안하다. 그리고 지친다.'라고 흔하게 볼 수 있는 글씨체로 쓰인 짧은 유언의 쪽지.


 나는 고인이 입고 있던 옷과 난간의 색, 약간은 꿉꿉했던 거실의 냄새와 다른 가족에게 비보를 전하던 남성의 슬픔을 눌러 담은 목소리, 그 모든 것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억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하였고, 현장의 공기를 사진으로 남긴 후 고인의 사체를 내렸다. 이미 사망한 지(구급대원은 사망을 선고할 수 없으나, 으레 누가 보아도 그렇게 판단되었다.) 오래된 것 같아, 따로 조치를 하지 않고 복귀하게 되었다.


 돌아가는 구급차 안, 나는 그날 맞이한 새로운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는 왜 그것을 막을 수 없으며,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힘들게 하였는지. 또 앞으로 마주할 죽음이란 것들의 무게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그 뒤로도 비슷한 죽음을 마주하였다.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여성(현장에서 제세동기를 사용하였으나 소용이 없어 보였다.), 이미 부패가 시작되었던 강에서 건져 올린 남성,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으나 뉴스에서만 봐오던 고독사로 사망한 남성(현장의 바닥에는 고인이 쓰러진 자세 그대로 자국이 남았었다. 건물 밖까지 냄새가 심하여 코 밑에 치약을 바르고 현장을 들어갔다.)


 죽음이 있던 그날들의 기억은 잊힌 듯 잠잠하다가 불현듯 한 번씩 찾아와 자신을 내게 각인시켰다. 마치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생명의 무게를 나에게 알리듯. 많은 죽음을 겪고 나니 부작용이랄까, 나는 죽음에 무뎌지게 되었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직시한 그 순간에 마음이 잔잔할 뿐, 깊은 곳에서는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죽음의 무게를 억지로 알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23개월, 나의 소방일기(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