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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웅 Dec 24. 2022

재즈와 포카리스웨트

원래 재즈라는 장르가 좋다고 생각해 본 적 없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재즈가 좋아하게 된 사건이 있었는데, 그건 내가 대학 입학 면접을 보러 갔었을 때였다. 벌써 상당히 오래된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면접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었고 약간의 긴장 상태였는데 방송으로 재즈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곡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재즈라는 건 알 수 있었고 일순간 긴장이 풀렸고 약간의 나른함에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이 별것 아닌 순간 이후 나는 해외에 나가서도 재즈펍을 찾아다닐 정도로 재즈라는 장르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런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카투사로 복무하던 당시 3일 간 군장을 메고 야영하는 훈련이 있었다. 나름 체력은 괜찮은 편인데 그때 내게 배정된 무기가 다른 것 보다 무거운 M249이었고, 왠지 모르겠지만 그 시기 체력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마지막 날 부대로 복귀하는 거의 마지막에 걷기도 힘들 정도로 탈진된 상태가 되었다. 


이때 근육질의 콜린스라는 친구가 내 M249을 자기가 들고 내게 포카리스웨트 하나를 줬는데 그때 먹었던 포카리 스웨트는 탈진한 나의 영혼의 갈증까지 해소해 준 그런 느낌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이온음료를 즐겨 마시지 않았었지만 그 사건 이후로 나는 갈증이 나면 언제나 포카리스웨트를 찾게 되었다.


이렇게 어떤 것을 선호하기 된 경험들에 비추어 보면 그게 엄청나게 훌륭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냥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게 정말로 필요한 것들을 마침 해결해 줬고 그것으로 인해 편안함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내 일생의 선호를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벌써 2022년도 끝나간다. 연말을 보내며 나는 혹은 내가 만드는 서비스들이 누군가에게 재즈와 포카리스웨트가 되었는지 돌아본다. 인간적으로는 올 한 해 나 스스로에게 집중된 삶이었기에 타인에 대해 별로 그러지 못했던 듯하고, 업무적으로도 이직으로 인해 그리고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그러지 못했던 듯하다.


2024년 한 해를 준비하며 내가 뭐 엄청난 무언가가 되길 기대한다기보다는 누군가가 정말 목마른 그때 목을 축여주고, 긴장된 그 순간에 긴장을 풀어주는 그런 사소함을 줄 수 있는 인생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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