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를 사고 판 경험으로 섣불리 블록체인을 판단하지 말자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의 인식 혹은 지식은 이성과 경험의 조화를 통해서 완성될 수 있음을 주장하며 위와 같이 표현했다. 칸트가 살았던 18세기는 교회와 성서로부터 절대적 권위와 진리를 찾았던 중세시대가 종결되고 교회 밖에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는 크게 두 가지 인식론이 대립하였는데,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으로 대표되는 대륙의 합리주의 철학은 이성의 능력만이 신뢰할만한 지식을 제공한다고 주장하였고, 로크, 버클리, 흄 등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은 경험과 관찰을 통해서 신뢰할만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렇듯 근대 초기 합리주의 철학과 경험주의 철학이 서로 대립하는 시점에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융합을 주장하고자 한 것이다. 현대의 눈으로 보면 이러한 주장은 일견 상식적이지만, 막상 우리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우리의 인식 과정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우가 많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위 사고의 관점에서 우리는 블록체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소 개념의 비약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책이나 강의를 통해 이해한 블록체인의 개념이나 백서를 통해 지속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생태계는 모두 경험이 결여된 제한적인 사고의 결과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크립토 세계에서는 경험의 중요성이 그리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달리 표현하면, 생각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것처럼 분위기가 형성된 적이 있었다. 많은 ICO 프로젝트가 백서를 통해 주장했던 이상적인 생태계에 많은 사람이 열광했었지만 지금에서야 돌이켜 보면 그러한 이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시한 수많은 가정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결과 많은 프로젝트의 주장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들의 진정성에 대해 우리가 끝까지 알 수 없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많은 사람이 현시점의 블록체인이 가지는 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은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은 개념적 사고, 곧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상당 부분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분들조차 블록체인에 대한 사소한 경험조차 하지 못해서 사실과 먼 이야기들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블록체인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너무 크게 보거나 반대로 너무 평가절하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런 이유로 블록체인을 경험해 보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블록체인을 경험한다는 표현이 다소 추상적이고 사람에 따라서 정의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Account를 통해 Transaction을 일으켜 보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내 계정에서 다른 계정으로 이더리움 혹은 토큰을 다른 계정으로 보내는 간단한 행위도 해당 플랫폼을 이해하는데 있어 훌륭한 경험이 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날 것의 블록체인을 일반인이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프라이빗 키를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수수료는 얼마나 되는지, 목표하는 행위가 기존의 일반 서비스 대비 장단점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이 과정은 기존에 책으로만 이해했던 블록체인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지식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크립토키티에서 고양이를 사기 위해 수차례 실패한 트랜잭션과 기다림의 경험은 이더리움 혹은 블록체인이 극복해야 할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주었다. 우리가 처음에 블록체인에 기대했던 보다 이상적인 그 방향 말이다.
물론, 블록체인을 경험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소 어렵고 많은 기반 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공통적인 점을 이해하더라도 각 블록체인 플랫폼은 나름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이더리움에서의 상식이 이오스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의 산을 오르고 나면 기존에 흐릿하고 모호했던 블록체인이라는 개념들을 조금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무언가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그것에 대한 사고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더불어 시작된다. 블록체인을 좀 깊이 알아보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일반인이나, 블록체인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한 번도 블록체인을 활용해보지 못한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한번 경험해 보라고.
본 글은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 Noder에 기고한 글입니다. 해당 글 및 다양한 블록체인 관련 글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