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세 번은 동네에 있는 헬스장에 간다. 아니, 가려고 한다. 전에 다니던 실버타운 내에 있던 헬스장은 가격이 올라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 때문에 탈의실에서 보게 되는 아주머니들의 연령대도 많이 낮아져서, 50대부터 60대 정도로 보인다. 아주머니들의 친밀도는 딱 '헬스장 친구' 정도의 선을 유지하는 듯 보였다. 서로의 나이와 가족 구성을 대략 정도로 알고, 안 보이면 걱정은 하지만 수소문해서 찾아볼 정도는 아니며, 헬스장 밖에서 따로 만날 생각은 없는 듯하다.
일주일 만에 헬스장에 갔더니 한층 더 기진맥진했다. 미적지근한 물에 얼른 샤워를 하고 주섬 주섬 나갈 준비를 했다. 띄엄띄엄 아주머니들이 나누시는 이야기가 들렸다. 세 분이서 대화하시는 것 같았는데, 한 분만 딸이 있고 나머지 두 분은 아들만 있으신 모양이었다. 그분들 대화의 결론은 '딸이 아들보다 잘한다'라는 것, 그리고 '아들만 여럿 있으면 그중 한 놈은 딸 노릇을 한다'라는 거였다. 나는 과연 딸 노릇이라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며 머리를 말렸다.
내가 어릴 때는 뉴스에서 종종 아들 선호 사상 때문에 성비 불균형 이슈가 있다는 기사를 봤던 것 같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오히려 딸 바보 아빠의 이미지가 미디어의 중심이 된 것 같다. 실제 주변에 아이를 낳을 마음이 있는 사람들도 대체로 딸을 선호한다. 아들 쌍둥이를 낳고 너무 딸이 가지고 싶어서, 큰 맘 가지고 셋째를 가졌더니 또 아들이었다는 웃픈 경험담도 듣는다. 어쩌다 20년 만에 딸을 선호하는 게 좀 더 당연해진 걸까.
아마도 딸 노릇, 이라는 단어로 그 모든 이유가 함축될 것 같다. 상상 속의 딸내미는 남자애들에 비해 순할 것 같고, 애교도 많을 것 같고, 핑크 핑크 한 공주 옷이며 양갈래의 귀여운 머리도 잘 어울릴 것 같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로 아들에 비해 사고도 덜 칠 것 같고, 좀 더 섬세하게 부모 - 특히 엄마 - 의 마음을 잘 헤아릴 것 같고, 무심한 아들에 비해 연락도 잘하고 더 사근 사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이미지의 총체가 '딸'일 것이다. 현실 세계의 딸들은 때로는 아들보다 거칠고, 속 썪일 때는 확실히 속을 후벼 파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층 더 잔인해진다. 딸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가지신 분들은 절대로 귀여운 양갈래 머리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된다.
핑크 핑크도, 애교도, 다정함이나 섬세함도 없는 무뚝뚝한 나조차도 딸 노릇에 대한 부담감은 있다. 그 점은 특히 엄마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강하게 느껴진다. 아직 내가 결혼을 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엄마는 오빠보다는 내게 잡담이나 하소연, 화풀이, 그리고 뭔가를 도와 달라는 부탁도 더 쉽게 하신다. 때로는 그런 '정서적 지원'에 대한 요구가 버겁고 서운할 때도 있다. 제대로 딸 노릇 못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내 멋대로 우리 엄마니까 내가 딸 노릇 좀 잘 못해도 우리 딸 최고, 할 거라고 믿는다. 우리 엄마도 친구들에게 '그래도 딸이 아들보다 잘해'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상상을 하면 슬며시 웃음마저 난다. 부디 세상의 아들들은 서운해하지 마시길. 오빠, 엄마가 전화 좀 하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