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 집사가 되기에 바람직한 성향의 사람인가
친구네 집 고양이를 세 번째 맡아 주었다.
참고로 커버 사진의 저 아이는 아니다. 저 아이는 인근 만화방에서 서식 중으로, 만화 말고도 저 아이가 보고 싶어서 만화방을 찾게 만드는 매력쟁이다. 친구네 고양이는 하얀색의 스코티쉬 폴드 종인가 그렇다. 때문에 고양이 특유의 쫑긋한 귀 대신 귀엽게 접힌 모양의 귀가 특징인데, 눈을 감고 골골 대고 있는 그 얼굴이 무척 동그래서 설날 할머니 댁에서 빚은 왕만두가 연상되곤 한다. 아마 내가 이름을 지었다면 백 퍼센트 만두라고 지었을 것이다.
처음 우리 집에 친구네 고양이(복만이라고 한다)가 왔을 때는 상암동에 살고 있었다. 친구네 부부가 여행 가 있는 5일 동안 맡아 주었다. 두 번째는 친구의 출산으로 인해 한 달가량 데리고 있었다. 그때는 겨울이었음에도 복만이의 원활한 화장실 이용을 위해 베란다 문을 항상 열어 놔야 해서 꽤 추웠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나는 털이 날린다거나, 고양이가 화장실 이용 후 발에 모래를 한 움큼 쥐고 방으로 들어와 사막처럼 되어 가는 것에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어차피 나 없을 때 로봇청소기가 고생하고 있다.) 고양이를 데리고 사는 어려움은 여러 가지 있겠으나, 특히 복만이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자려고 누워 있을 때 꼭 사람 몸 위로 올라와서 드러누워 버리는 것이었다. 반드시 상체만을 고집해서 배나 가슴, 심지어 목 위에까지 늘어져 있는 통에 꽤나 잠자기 어려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몸무게는 비교적 가볍다는 것? 그럼에도 처음 우리 집에 와서 아침 6시에 고르릉 거리며 내 명치 위로 자신의 몸무게를 한 점에 실어 올라왔을 때의 충격과 당혹감은 잊기 어렵다. 나중에는 나름 대응책이 생겼지만, 잠을 잘 못 잔다는 점은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의외로 힘든 일이 있었다. 바로 '놀아주기'이다. 나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IT업계 종사자로서 1, 2차 복만이 맡음의 시기 동안에는 특히 야근과 주말 출근이 일상적이었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혼자서 아무도 없는 방을 서성이다, 창문 밖을 구경하다, 자다가, 드디어 놀아줄 집사가 왔는데, 임시 집사가 너무 피곤해한다. (설마 위로해 주려고 그렇게 안긴 건가?) 게다가 복만이의 놀이 취향은 엄폐물 뒤에서 궁둥이를 씰룩거리다, 까딱까딱 하고 있는 사냥감에 뛰어들어 잡는 것인데, 그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조금만 다른 소리가 나도 신경이 분산되고, 1m 이상 거리만 돼도 잡을 생각을 하지 않으며, (내 생각에는) 굉장히 설렁설렁 사냥감에게 달려든다. 보통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반드시 마지막에는 사냥에 성공하도록 해줘야 한다는데 그다지 성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잡은 거 같았는데 너무 쉽게 놔준다. 어떤 상황이 되어야 이 녀석이 아 좋아, 오늘 사냥은 만족스럽군, 이런 기분을 느끼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놀아줘야 밤에 우다다를 덜 할 텐데, 하루 종일 무지하게 심심했을 텐데, 나는 고양이와 놀아 주는 게 너무 힘들다.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보다는 정말 즐거운 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점이, 그 피드백 없음이 힘들다.
어젯밤에 3차 맡음을 끝내고 복만이를 친구 남편에게 다시 넘겨줬다. 제주도에 다녀온 그 가족은 고맙다며 제주 감귤 막걸리 두 병과 우도 땅콩 막걸리 한 병이 든 상자를 내게 건넸다. 나는 활짝 웃으며 배웅했다. 복만이가 남긴 흔적을 치우고, 물건들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았다. 시간이 늦어서 청소는 못했다. (물론 오늘의 로봇청소기를 믿는다.) 돌아가면 이제 기기 시작한 친구의 딸한테 치이고, 버릇대로 귀찮게 하지 말라며 물려고 들다가 친구한테 혼이나 날 테지. 아기들이 고양이의 털이나 꼬리를 움켜쥐고 괴롭힐 때도 끙끙대며 참는 고양이는 랜선 위에만 있는 법이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어쩌면 나도 한낱 랜선 집사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실제 곁에 있는 고양이에게 그저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대하니 - 정말 주인님 이기라도 한 듯 - 의무감 때문에 오히려 성가신 마음이 더했던 건 아닌가 싶다. 아마 4차, 5차 복만이 맡음이 이어질 것이고 그때마다 나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고양이 집사가 되기에 바람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곁에 있는 고양이가 행복하고, 나도 그 고양이 덕에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