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 "첫 타깃은 인디고"

<2025년 4월 12일 밤 · 박규의 집 창고>

by 부지깽이

창고는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녹슨 철제 선반 위로는 흙먼지가 자박하게 내려앉았고,

나무 상자들의 모서리는 마치 세월이 이빨을 들이민 듯, 쥐에 갉힌 자국처럼 뜯겨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낡은 형광등이 한 차례 희미하게 깜빡이더니, 끝내 생명을 다하고 말았다.


이윽고 그 어둠을 대신한 건, 바닥에 세워둔 작은 작업등.

불빛은 다소 흐렸지만, 그 아래 마주 앉은 이들의 얼굴은 놀라울 만큼 선명히 드러났다.

숨소리 하나조차 아까운 순간이었다..


리차드는 무릎 위에 가지런히 얹은 손을 한 번 힘주어 움켜쥐었다가,

마치 마음을 다잡듯 천천히 풀었다.

등을 곧게 세우며 자세를 고쳐 앉은 그의 얼굴은 단단히 굳어 있었다.

입을 떼기 직전, 그는 짧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우리의 첫 타깃은 인디고다. 엘린이 잠입할 거다.”

짧은 문장 하나였다.

그러나 그 한 마디는 마치 쇠구슬처럼 공기를 뚫고 튕겨나갔다.

그 순간,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직감했다.

이제 탐색은 끝났고—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걸….

그리고 그 순간—탄의 미간이 천천히 좁혀졌다.

“엘린이 잠입한다구요?”

그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말투는 담담했지만, 얼굴에는 그늘이 어렸다.

하지만 모니터 속, 엘린의 얼굴은 놀라울 만큼 침착해 보였다.

입꼬리를 조금 올린 채, 미소지었지만 그 안에는 은근한 장난기와 서늘한 결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다음 순간, 그녀의 눈빛은 반짝이며 정면을 꿰뚫었다.

말없이 화면을 응시하는 그들 모두를 향해—

엘린은 전장을 건너오는 사람처럼, 조용히 싸움을 선포하고 있었다.


리차드는 화면 속 엘린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조용히 시선을 돌려 자리에 앉은 이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그들을 죽이려는 게 아니다.”

그 말이 창고 안에 떨어지자, 공기 중에 퍼져 있던 온기가 서서히 빠져나갔다.

벽 틈 사이로 스며들던 먼지조차 무게를 얻은 듯 천천히 가라앉았다.

리차드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음성에는 단단한 울림이 실려 있었다.


“그들을 생포해서, ‘칠흑’에 가둘 거다.”

그는 말 그대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기듯이 내뱉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이 저지른 죄에 걸맞은 벌을 받게 할 거다.”

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선은 여전히 화면 속 엘린에게 고정돼 있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근심이 배어 있었다.


누구보다 먼저 결심해 온 복수의 끝, 그 길 위에 놓인 소중한 사람을 끝내 지켜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그건 강한 척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마음의 그림자였다.

그 순간, 력이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께가 죄어들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아버지의 사고를 목격했던 사람,

그가 떠올린 건—한밤중 병원 복도, 멍하니 서 있던 엄마의 얼굴.

표정이라 할 수 없는 얼굴 속에 응고된 공포와 허탈.

그리고, 붕대 속에서 한 번도 깨어나지 못한 아빠의 창백한 얼굴.


하지만—

복수만이 목적은 아니라는 말, 그것이 력을 붙잡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목적은 복수가 아니다. 절대로….”

리차드의 목소리는 한 톤 더 낮아졌다.

말끝이 살짝 떨렸는지도 몰랐다.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니라—책임의 무게에서 오는 울림이었다.

이전 05화055. 레인보우 헌터스 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