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 레인보우 헌터스 "우리도 일곱"

<2025년 4월 12일 밤 · 박규의 집 창고>

by 부지깽이

그의 한 마디에 모두가 미세하게 몸을 움직였다.

탄은 눈썹을 찡그렸고, 민주와 양헌은 본능적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수장은 장춘동, 거의 확실하다. 멤버 수는 무지개 색처럼 일곱. 각 색마다 역할이 다른 것 같다.”


말을 잠시 멈춘 리차드는 시선을 테이블 위로 옮겼다.

그 위에는 박규의 수첩, 식은 커피잔, 윤의 소총이 놓여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중요한 전투를 앞둔 지휘관의 작전판 위에 놓인 작전지도와 지휘봉처럼 무겁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탄이 생포한 놈은 퍼플, 레인보우 키퍼 중 막내다. 행동대장 역할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


력이 의자에 깊게 기대더니,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민주는 팔짱을 풀지 않은 채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리차드는 민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보 담당은, 민주의 옛 스승! 코드네임은 옐로우.”

민주는 움찔하며 눈을 치켜떴다.

고개를 숙인 채, 테이블 아래 떨리는 손을 가만히 감쌌다.

입술이 바짝 타들어갔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씻기지 않는 상처와 오래 묵은 배신감이 어른거렸다.


리차드가 창고 한구석 꺼진 모니터를 힐끗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최근에 장춘동의 여자를 찾아냈다. 오래 전 사라진 톱스타, 배주란! 그녀는 ‘꽃’이라는 곳을 관리 중이다. 전두칠이 쓰던 안가를 개조한 곳이지. 지금은 정치인, 재벌, 법조계 인사들을 은밀히 접대하고, 정보를 빼내는… 말하자면 현대판 요정이다.”


각자의 머릿속에 ‘꽃’이라는 공간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눈을 감아도 떠오를 법한 그 은밀한 방.

비단처럼 미끄러운 커튼 사이로, 누군가의 욕망과 비밀이 어지럽게 춤추는 곳.

리차드가 어두컴컴한 창밖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배주란이 레인보우 키퍼가 맞다면… 그녀가 인디고일 거다. 일곱 명 중 남은 셋은 아직 파악이 안 된다. 흔적도 없고, 움직임도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단서는 희미하고, 퍼즐 조각은 모자란다.”

그의 말이 끝나자, 창고 안엔 또 한 겹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침묵을 깨고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는 듯, 양헌이 농담 섞인 말투로 말했다.


“이렇게 모였으니, 최정예 여섯이네요?”

리차드가 미소지었다.

“아니… 일곱이지. 한 명은 지금 잠수 중이야.”

그의 말에 모두가 의아한 얼굴을 지었다.

누구지? 어디서 움직이고 있는 걸까?

리차드는 조용히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 화면을 민주 쪽으로 건넸다.

민주는 재빠르게 알아듣고 리차드가 방금 전 힐끗 바라본 모니터를 켜 영상을 띄웠다.


모니터 화면이 짧게 지직거린 뒤—

천천히,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깨까지 단정하게 흐른 흑갈색 머리,

핏줄기처럼 날렵하게 뻗은 턱선,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눈빛은 차가우면서도 깊었다.

그녀는 군복도, 정장도 아닌,

검은색 경량 전투복 차림이었다.

어깨와 허리에 흐르는 라인은 탄탄했고, 몸짓 하나하나에서 세월을 거스르는 듯 젊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모니터 너머를 꿰뚫어보듯 사람들을 바라봤다.

차가운 눈빛.

서늘한 턱선.

그리고,

빛처럼 스치는 무언가—


탄은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낯선데… 어쩐지 익숙했다.

화면 너머에서 여자가 입을 열었다.

“탄 오빠! 오랜만이야~”

탄의 눈동자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하지만 그 익숙함이, 오히려 낯설었다.

모니터 옆에 서 있던 리차드가

천천히 그 여자를 가리켰다.


“자! 소개하지. 내 딸, 엘린이다.”

그 말에, 탄은 순간 호흡이 멎는 듯했다.

잠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던 그의 눈이, 조용히 흔들렸다.

기억의 파편이, 오래전 어느 날 런던의 겨울 골목에서 되살아났다.

그의 손을 꼭 잡던 작고 따스한 손.

그리고, 1988년.

구르카 입대를 위해 집을 떠나던 날, 뒤따라오던 조그마한 발자국 소리.

그로부터, 37년 만의 재회였다.

모두의 시선이 엘린에게로 쏠렸고, 엘린도 조용히 이쪽을 바라보며 하나하나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그녀의 눈길이 탄에게 머물렀다.


“탄 오빠. 날 알아보겠어?”

짧고도 맑은 목소리였다.

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 속의 꼬마가, 이젠 누군가의 등을 지키는 전사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눈빛 속에서, 탄은 오래전 따뜻했던 런던의 한 순간을 떠올렸다.

리차드가 숨을 고르고, 나직하게 말했다.


“이제 우리도 일곱이다. 탄, 력, 윤, 민주, 양헌, 나, 그리고 엘린.”

그는 살짝 웃었다. 씁쓸함과 결의가 겹쳐진 웃음이었다.

“자! 우리도 이름이 있어야겠지? 레인보우 헌터스! 무지개 파수꾼을 자칭한 자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추적하고 무너뜨릴 사냥꾼들이다.”


레인보우 헌터스―

그 이름이 조용한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침대에 누워 있던 박규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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