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론은 동물보호센터에서 일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미네소타 노스 칼리지 버밀리언 캠퍼스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며 마지막 학기를 앞둔 어느 날, 학생 포털에 「공공 봉사시간 미이수」라는 빨간 알림이 떠 있었다.
졸업 요건에 봉사활동 시간이 포함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학기 초마다 ‘지금은 당장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니까…’ 라며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가 대학 새내기 생활을 즐기고 있을 때 벌어진 한 ‘사고’가 그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3년 전, 그의 아버지가 공사장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났다.
카론의 아버지는 30년 가까이 목수로 일했고, 손재주가 누구보다 좋아서 일터에선 베테랑 소리를 들을 만큼 신뢰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날 사고는 아무리 유능한 베테랑이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멀쩡해 보이던 발판이 갑자기 부러지면서 아버지는 몇 미터 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전모를 쓰고 있었지만 철제 구조물의 모서리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면서 의식을 잃었다.
병원에서는 ‘심각한 두부 손상’이라고 했고, 그날 이후 아버지는 한 번도 눈을 뜨지 못했다.
그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아버지는 카론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묵묵히 감당해 주던 든든한 울타리였다.
하지만 사고 이후, 카론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학자금 대출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었고, 하루도 쉴 수 없는 아르바이트가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3년을 버텨오면서 봉사활동을 미룬 게 지금의 난처한 상황을 만든 것이었다.
카론은 서둘러 온라인 봉사활동 신청 시스템에 접속했다.
그러나 인기 있는 봉사기관들은 이미 다 마감됐고, 딱 한 군데만 남아 있었다.
‘세인트 프랜시스 쉘터’.
이름만으로는 알 수 없었지만, 클릭해 보니 동물보호센터였다.
카론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신청하기 버튼을 클릭했다.
카론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자신처럼 가난한 대학생에겐 어울리지 않는 ‘부자들의 고상한 취미’쯤으로 여겼다.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끊임없이 짖어대는 강아지들 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버티는 일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팠지만,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월-수-금요일 주 3회 봉사활동.
처음엔 ‘시간이나 때우자’고 투덜거리며 출근했지만, 조금씩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구석에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사람의 손길을 무서워하던 고양이가 어느새 카론의 무릎에 앉아 골골거릴 때, 앞다리가 부러진 채 구조된 강아지가 치료를 받고 꼬리를 흔들 때 그는 그동안 관심 밖이었던 가엾은 생명들의 무게를 조금씩 느끼게 됐다.
특히 센터장인 에밀리는 카론의 시선을 자주 사로잡았다.
그녀는 카론보다 다섯 살 많았지만, 그 젊은 나이에 동물보호센터를 운영하는 강단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늘 밝은 미소로 사람들을 대했고, 버려진 개나 고양이를 돌보는 눈빛에는 따뜻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늘 모성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살았던 카론에게, 그런 에밀리의 모습은 왠지 모를 편안함과 묘한 끌림으로 다가왔다.
카론이 봉사활동을 시작한 첫번째 주 금요일.
에밀리는 카론을 포함한 몇몇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센터 근처 작은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회식’이라는 이름의 그 자리는 사실상 서로를 알아가는 자리였다.
식사를 마친 후 2차 술자리에서 에밀리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어릴 때 입양됐어요. 낳아주신 부모님 얼굴도 모르고 자랐죠. 그래서인지 버려진 동물들을 보면 남 일 같지 않아요. 저도 한때는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 같았거든요.”
그녀의 담담한 고백에 카론은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자신 역시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고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카론은 에밀리에게 자신의 가족사를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며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렇게 보호소 생활에 적응해 가던 어느 날, 카론이 케이지 청소를 마친 뒤 물그릇을 갈아주고 있을 때였다.
“카론! 잠깐 나와 봐. 병원에서 전화 왔어.”
등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카론이 돌아보자, 사무실로 통하는 입구에서 에밀리가 손짓하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굳은 얼굴이었다. 카론은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는 사무실로 뛰어가 책상 위에 놓인 수화기를 들었다.
“카론 언더우드 씨! 아버지 죠셉 씨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임종이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혹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유해를 어떻게 처리하실지 알려주시겠어요?”
상대방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카론은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 네. 생각해 본 뒤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사무실 안에 정적이 흘렀다.
에밀리가 말없이 다가와 카론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카론, 어서 아버지께 가 봐. 여기 일은 걱정 말고….”
카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지만, 아직 울 수는 없었다.
아버지와 이별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날 저녁, 카론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골집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차로 1시간 남짓 떨어진 한적한 시골에 자리한 그 집은 시간이 멈춘 듯 정적에 잠겨 있었고, 먼지가 소복이 쌓인 가구들만이 아버지의 부재를 견디고 있는 듯했다.
허기를 달래려 인스턴트 수프를 데워 먹은 카론은, 조용히 거실 소파에 몸을 뉘었다.
천장 위 오래된 조명은 누렇게 빛이 바랬고, 창밖에선 벌레 우는 소리가 간간이 귓가를 스쳤다.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어느 여름밤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아버지가 사고로 쓰러지기 불과 며칠 전, 무더운 밤이었다.
마당에 펼친 캠핑의자에 나란히 앉아 별을 바라보던 그날 밤, 아버지는 반쯤 비운 위스키병을 들고 카론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혹시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책상 서랍에 있는 노트를 읽어 보렴.”
술에 취한 목소리였지만, 또렷하게 가슴에 박혔던 그 말.
그 기억이 퍼뜩 떠오르자, 카론은 곧장 책상 앞으로 가서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엔 낡은 노트 한 권이 들어 있었고, 표지에는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가 보였다.
「줄리아와의 시간들」
제목을 보는 순간, 카론의 가슴 속 어딘가에서 오래 잊고 있던 이름이 낮게 울렸다.
‘엄마의 이름이 줄리아였지.’
그는 아버지에게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네가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셨어.” 그 말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의 낡은 노트엔 그 짧은 말 너머 카론이 듣고 싶어 했던 길고 긴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젊은 날, 아버지는 어느 캠핑장에서 엄마를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금세 사랑에 빠졌고, 결혼 후 카론을 낳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몇 달 뒤 어머니는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마지막 여행지로, 둘이 처음 만났던 윌로 릿지 캠핑장을 택했다.
그곳에서 캠핑장을 관리하는 노부부에게 어머니의 유해를 캠핑장 꼭대기 느티나무 아래 묻을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는 이야기까지….
둘의 이야기는 파도처럼 밀려와 카론의 마음을 적셨고, 마지막 문장이 눈물샘을 터트렸다.
‘언젠가… 나도 줄리아 곁에 잠들고 싶다.’
다음 날 아침, 카론은 병원으로 향했다.
한달 만에 보는 아버지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호흡이 더 불규칙했다.
카론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빠 노트 봤어… 꼭 그렇게 해 줄게.”
그는 아버지의 손을 따뜻하게 감쌌다.
잠시 후 카론이 병실 문을 나서는 순간, 아버지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틀 뒤, 동물보호센터에서 고양이 사료를 갈아주던 카론에게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카론 씨! 아버님께서… 조금 전 돌아가셨습니다.”
그 짧은 말에,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는 말없이 전화를 끊고, 에밀리에게 부고를 전하며 말했다.
“사흘만 쉴게요.”
에밀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카론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장례 절차는 빠르게 진행됐다.
각종 서류와 동의서, 영정사진과 화장까지, 모든 게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그의 손에 건네진 작은 유골함. 그 안에 아버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카론은 믿기지 않았다.
그날 밤, 카론은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버지의 유골함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불도 켜지 않은 채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다음 날, 카론은 작은 배낭에 조심스레 유골함을 넣고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윌로 릿지라는 마을에 있는 캠핑장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캠핑을 자주 다녔지만, 그곳은 가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낡은 중고차는 내비게이션에 찍은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달렸다.
그러다 갈림길을 지나친 직후, 차가 갑자기 덜컹거리더니 이내 멈춰 서 버렸다.
당황한 카론이 시동을 다시 걸어 봤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차를 밀어 길가에 세웠다. 그리고 보험사에 연락하려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다. 어젯밤 미처 충전을 못 하고 나온 게 떠올랐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었다.
카론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수풀에 반쯤 가려진 녹슨 표지판을 발견했다.
「윌로 릿지 2㎞」.
이 정도 거리면 걸어가면 되겠다 싶었다. 어차피 캠핑장에 가면 충전도 가능할 테고, 고장 신고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운이 좋으면 마을로 가는 차를 얻어 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한참을 걸었지만 차는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카론은 땀에 젖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 헐거워진 배낭끈을 조이면서 오르막길을 천천히 걸었다. 윌로 릿지 마을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평탄했던 2차선 도로가 어느새 구불구불한 산길로 변해 있었다. 바퀴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걸 보니 드문드문 차량이 다니는 듯했다.
오르막 커브길 모퉁이에 다다를 무렵 카론의 시야에 낯선 광경이 들어왔다.
길 건너편에서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가 도로를 건너오고 있었다.
‘이런 시골길에 웬 고양이지?’ 카론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들고양이인가? 아니면 마을이 가까이 있는 건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고양이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묵직하고 날카로운 엔진음이 덮쳐 왔다.
그가 고개를 돌린 순간, 커브길 모퉁이에서 갑자기 나타난 트럭이 굉음을 내며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운전자는 고양이들을 보지 못한 듯,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위험해! 비켜!”
카론의 다급한 외침이 숲속에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고함과 날카로운 엔진 소리에 놀란 고양이들이 화들짝 고개를 들었을 때 트럭은 이미 그들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카론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두 팔로 고양이들을 도로 밖으로 밀쳐낸 순간이었다.
쾅!
둔탁한 충격이 카론의 옆구리를 때렸다.
그의 몸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가 도로 옆 풀숲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순식간에 시야가 뒤집히면서 거친 숨을 토해내던 그의 몸이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고양이들이 카론을 향해 뛰어왔다.
검은 고양이는 카론의 옆에 앉아 앞발로 그의 팔을 두드렸고, 흰 고양이는 그의 주변을 맴돌며 울었다.
그리고, 끼이이익!
급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트럭이 멈춰 섰다. 곧이어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가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그의 입에선 쉴 새 없이 욕설이 쏟아져 나왔고, 진한 술 냄새와 함께 비릿한 악취가 섞여 나왔다.
“제기랄!”
쓰러진 카론에게 다가오던 남자가 고양이들을 발견하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붉게 번쩍였다. 사람의 눈이라기엔 너무 낯선 섬광이었다.
고양이들은 나무 위로 폴짝 뛰어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남자는 잠시 고양이들을 노려보다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쳇! 재수가 없으려니….”
그는 카론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몸을 흔들어 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남자는 갑자기 카론의 어깨를 들어 배낭을 벗겼다.
그리고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카론의 주머니를 뒤져 지갑, 휴대폰, 차 키를 꺼내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벗겨둔 배낭을 멨다.
트럭으로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 뒤로, 검붉은 기운이 흩날리듯 피어올랐다.
잠시 후 트럭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움직였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양이들은 나무에서 폴짝 뛰어내려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