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영감, 나 좀 살려줘!

by 부지깽이


해질녘, 세상이 온통 붉게 물들고 있었습니다.

폐지와 고철을 산더미처럼 실은 낡은 리어카 한 대가, 달동네 어귀에 있는 고물상을 향해 힘겹게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리어카를 끄는 남자는 박정규 씨, 일흔다섯 살입니다.

젊은 시절 월남의 정글을 누볐던 그의 다부진 어깨도 이제는 모진 세월 앞에 한껏 쪼그라들어 있었습니다.

총알이 박혔던 오른쪽 다리가 욱신거리는지, 정규 씨는 연신 절뚝이며 굵은 땀방울을 흘렸습니다.


뒤에서 리어카를 미는 아내, 이상순 씨는 예순아홉 살.

그녀의 창백한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습니다.

상순 씨는 리어카를 미는 손보다, 아픈 배를 부여잡은 손에 더 힘을 주고 있었습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입술을 꽉 깨물고 신음을 삼키는 그녀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영감! 헉, 헉… 조금만 천천히 가요. 숨이 너무 차.”

정규 씨는 땀에 젖은 얼굴로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내뱉었습니다.

“거참! 집에서 쉬라니까 왜 나와 갖고…”

“누가… 쉬기 싫어 안 쉬나. 영감 혼자 힘들까 봐 그러지.”

정규 씨는 더 말하지 않고 묵묵히 리어카를 끌었습니다.

낡은 리어카 바퀴가 "끼익, 끼익"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고단한 노부부의 신음처럼 달동네 어귀에 퍼졌습니다.


노부부는 고물상에 폐지와 고철을 내려놓고, 빈 리어카를 끌고 달동네를 올라왔습니다.

녹이 잔뜩 슬어 삐그덕대는 녹색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손바닥만 한 마당이 있는 허름한 집이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야아옹~!”

마루 밑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와 상순 씨의 다리에 몸을 비볐습니다.

검은 고양이 ‘깜숙이’였습니다.

녀석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상순 씨의 거친 손등을 까슬한 혀로 싹싹 핥아주었습니다.

마치 “할머니, 오늘도 고생했어요”라고 위로하는 듯했습니다.


깜숙이는 지난겨울, 상순 씨가 고물을 줍다가 발견한 고양이였습니다.

눈보라 치는 골목 끝에서 얼어 죽어가던 새끼 고양이를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품에 안고 온 것이었죠.

정규 씨는 처음엔 펄쩍 뛰었습니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고양이를 왜 키워!”


하지만 상순 씨는 왠지 모르게 녀석에게 마음이 갔습니다.

정규 씨도 건망증이 심한 상순 씨가 깜빡하면,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투덜대면서도 녀석의 밥을 꼬박꼬박 챙겨주었습니다.

꼬물거리면서 앞발을 폈다 오므렸다 하며 꾹꾹이를 하는 작은 생명이 불쌍해서였죠.

그러다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구 우리 깜숙이. 언제 커서 시집갈래?” 하고 실없는 농담을 건네곤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상순 씨는 깜숙이를 쓰다듬을 힘조차 없는 듯, 아픈 배를 움켜쥐고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 상순 씨가 방으로 힘겹게 들고 들어온 밥상에는 먹다 남은 된장찌개와 멸치볶음이 전부였습니다.


“입맛이 없네유… 내 밥까지 다 잡수셔.”

상순 씨는 숟가락으로 찌개를 몇 번 떠먹고는 아랫목에 새우처럼 웅크렸습니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복통이었습니다.

동네 보건소에서는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했지만, 상순 씨는 돈 걱정에 소화제와 배탈약으로 버텼습니다.

그마저도 유효기한이 한참이나 지난 것들이었습니다


상순 씨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계속 새어 나오자, 정규 씨가 숟가락을 탁 놓고 소리쳤습니다.

“고집 피우지 말고, 내일 당장 큰 병원 가자!”

상순 씨는 대꾸할 힘도 없어 돌아누웠습니다.


정규 씨는 괜히 씩씩대며 남은 밥을 물에 말아 후루룩 삼키고는 밥상을 들고 나갔습니다.

부엌에서 들려오는 탄식 같은 달그락달그락 소리와, 상순 씨의 끙끙 앓는 소리가 뒤섞여 노부부의 밤이 깊어갔습니다.



새벽 두 시.

“드르렁… 드르렁…”

“가르릉… 가르릉…”

정규 씨와 깜숙이의 평화로운 하모니를 깨고, 상순 씨의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으윽… 아흑… 아이고, 나 죽네!”

상순 씨가 온몸이 식은땀에 젖어 방바닥을 떼굴떼굴 굴렀습니다.

그녀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손톱으로 장판을 “그윽, 그윽…” 긁어댔습니다.


하지만 정규 씨는 세상모르고 잠만 잤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보청기를 빼놓은 탓에 상순 씨의 신음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여, 영감! 영감… 나 좀 살려줘…!”

상순 씨가 애타게 남편을 불렀지만, 정규 씨의 코 고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야옹! 냐옹!”

낯선 소리에 깬 깜숙이가 상순 씨를 보고 자지러지게 울다가, 정규 씨의 가슴 위로 폴짝 뛰어올라 정규 씨의 얼굴을 ‘탁탁’ 때렸습니다.


“으음… 뭐야… 깜숙이 이 녀석!”

그제야 부스스 눈을 뜬 정규 씨의 눈에, 방바닥을 구르며 몸부림치는 아내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할멈! 할멈!… 정신 차려! 여보! 상순아!”

아내의 몸을 흔드는 정규 씨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습니다.


그는 허둥지둥 보청기를 귀에 꽂고, 머리맡에 둔 낡은 폴더폰을 열어 119를 눌렀습니다.

“여보세요! 여기 사람 죽어요! 우리 마누라가! 우리 마누라가… 빨리 좀 와 주쇼! 여기 주소가….”


잠시 후, 잠든 달도 놀라서 깰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달려온 구급차 한 대가 대문 앞에 “끼이익” 멈췄습니다.

들것에 실려 나가는 상순 씨의 손을 꼭 잡고, 정규 씨는 짝짝이 슬리퍼를 신은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구급차에 올랐습니다.


"야옹~ 냐아옹!"

텅 빈 마당, 활짝 열린 대문 앞에 홀로 남은 깜숙이가 멀어져 가는 구급차 꽁무니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구슬프게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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