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이, 이… 돌팔이 놈아!

by 부지깽이


“삐― 삐―”

규칙적으로 울리는 기계음이 유난히 차갑게 들렸습니다.

읍내에 하나뿐인 작은 병원 응급실 안은 새벽 공기만큼이나 싸늘했습니다.


“으윽… 아악!”

졸린 표정이 역력한 젊은 의사가 상순 씨의 배 이곳저곳을 누를 때마다, 그녀의 입에서 고통스런 신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내의 얼음장 같은 손을 꼭 잡고 발을 동동 구르는 정규 씨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의사가 정규 씨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언제부터 이러셨어요? 저녁에 뭐 드셨죠?”

“그게… 그러니까… 된장찌개 몇 번 떠먹었어. 한 달 전부터 배가 살살 아프다고는 했는데….”

정규 씨가 더듬거렸습니다.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청진기를 상순 씨 가슴 여기저기에 댔다가 뗐습니다.

“네? 한 달요? 체한 건 아니네요, 배가 너무 딱딱해요… 참기 힘드셨을 텐데… 일단 진통제 놔 드릴 테니, 날 밝는 대로 큰 병원 가서 정밀검사 받아 보세요.”


진통제가 혈관을 타고 흐르자, 고통에 몸부림치던 상순 씨의 호흡이 조금씩 잦아들고 잠시 후 잠에 빠졌습니다.

여전히 찡그린 상순 씨의 얼굴은 다 타버린 촛농처럼 창백했습니다.


링거 줄이 주렁주렁 매달린 침대 옆, 정규 씨는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밤을 새웠습니다.

아내의 거친 손을 잡고 그는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미안해 할멈! 진작에 병원을 왔어야 했는데… 내가, 내가 죽일 놈이여.


날이 밝자마자 병원 측에서 구급차를 불러주었습니다.

정규 씨가 월남전 참전 용사로 보훈 혜택을 받으며 자주 드나들던 곳이라, 의사와 간호사들이 사정을 알고 발 빠르게 움직여준 덕분이었습니다.


“이봐요, 우리 마누라 좀 살살 부탁해요.”

정규 씨는 구급대원들에게 몇 번이나 당부하며 구급차에 탔습니다.

시내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는 길,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깨어난 상순 씨는 약 기운이 떨어졌는지 다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정규 씨는 아내의 식은땀을 닦아주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가슴을 쳤습니다.

대학병원은 오일장처럼 북적거렸습니다.

내과 접수창구, 채혈실, 그리고 영상의학과….

낯선 기계들이 상순 씨를 삼켰다 뱉어내기를 반복했습니다.

CT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MRI가 쿵쿵 따다다닥 소리를 내며 돌아갈 때, 정규 씨는 검사실 밖 차가운 의자에 앉아 굳게 닫힌 문만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제발 큰 병 아니기를….

“맹장염이나 위경련이기를…”

정규 씨는 두 손을 모아 빌고 또 빌며 중얼거렸습니다.


모든 검사가 끝났을 때 임시 병실에 자리가 났습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상순 씨는 진통제와 영양제 링거를 팔에 꽂은 채 침대에 기대어 앉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그녀의 눈길은 남편에게 향했습니다.


“영감! 점심때 지났지? 나가서 요기라도 좀 하고 와요.”

“생각 없어. 당신이 이렇게 아픈데 밥이 넘어가겠어?”

정규 씨가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그러자 상순 씨가 눈을 부릅뜨며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발 말 좀 들어요! 어여 가서 뜨끈한 국밥이라도 한 그릇 먹고 와요!”

옆에서 링거 속도를 조절하던 간호사도 거들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제가 잘 보고 있을 테니 식사하고 오세요. 검사 결과 나오려면 아직 멀었어요.”

아내의 성화에 정규 씨는 못 이기는 척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알았어, 알았어. 금방 먹고 올게.”


병원 앞 순댓국집은 손님들로 붐볐습니다.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가 나왔지만, 정규 씨는 선뜻 숟가락을 들지 못했습니다.

밥을 반 공기 말아 뒤적이다가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지만, 모래를 씹는 것처럼 까끌까끌했습니다.

결국, 그는 그 좋아하던 순댓국을 몇 숟가락 뜨지도 못한 채 도망치듯 식당을 나왔습니다.

빈속이 계속 울렁거렸습니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담당 의사가 불렀습니다.

진료실 안,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의사는 격무에 시달린 듯 피곤에 절어 있었습니다.

모니터 속 흑백 사진들을 넘겨보는 그의 표정에는 감정이 없었습니다.

그 무미건조함이 정규 씨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정규 씨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상순 씨의 손을 꽉 잡았습니다.


“이상순 씨, 그리고 보호자분.”

의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덤덤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검사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간암 말기입니다.

“네? 뭐… 뭐라구요?”


정규 씨의 귀가 멍해졌습니다.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암이라니. 그것도 말기라니….’

상순 씨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습니다.

남편에게 잡힌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정규 씨가 아내의 손을 으스러져라 쥐었지만,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종양 크기가 너무 크고, 이미 복막과 폐까지 전이된 상태입니다. 수술은 불가능합니다.”

의사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노부부의 심장을 후벼 팠습니다.

멍하니 의사를 바라보던 정규 씨와 달리, 상순 씨는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의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어르신, 이 정도면 통증이 엄청났을 텐데… 어떻게 참으셨어요?”

상순 씨는 메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작게 웃었습니다.

씁쓸하고 쓸쓸한 미소였습니다.

“그냥… 배탈인 줄 알았지… 약 먹으면 낫겠거니 했고… 그래서, 선생님… 나 얼마나 살 수 있수?

“할멈! … 상순아!”

정규 씨가 아내의 이름을 불렀지만, 상순 씨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잠시 머뭇거리다 차트에서 눈을 떼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항암 치료를 한다 해도… 길어야 6개월입니다.

순간, 진료실 안에 정적이 흘렀습니다.

‘6개월… 고작 6개월이라니.’

정규 씨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정규 씨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이, 이… 돌팔이 놈아!

“보호자 분, 진정하세요.”

“뭐가 어쩌고 어째? 6개월? 내 마누라가 왜 죽어! 네놈이 뭘 안다고 지껄여! 다시 검사해! 당장 다시 하란 말야!”


정규 씨는 의사의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것은 의사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부정, 그리고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쏟아내는 절규였습니다.


상순 씨가 울부짖는 남편의 옷자락을 힘겹게 잡아끌었습니다.

“영감… 그만해… 제발….”

정규 씨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아이구! 이를 어째… 우리 할멈 불쌍해서… 어떡해!”


잔인하게도 창밖에는 아직…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정규 씨와 상순 씨에게… 이제 겨우 두 번의 계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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